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예진 Aug 03. 2023

찌는듯한 더위에도 산책이 좋은 개.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겨울에, 여름이 더 낫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봄과 여름이 얼른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





 우리 개는 요즘 말을 잘 안 듣는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 생각이 강해지고, 고집이 늘어간다.

산책이 힘들어 마당이 있는 집으로 엄마가 개를 데리고 이사하셨지만, 하루 세 번 산책이 습관이 되어 있는 아이라서 최소 두 번 산책을 (평일엔 엄마와) 하고 있다.



 새벽 일찍 산책을 하고 더운 낮시간 동안 집에서 시원하게 에어컨 바람을 쐬며 뒹굴뒹굴하는 우리 개는 이른 저녁부터 계속 나가자는 시위를 한다.


 더워도 너무 더운 요즘, 저녁 8시는 되어야 더위가 조금 가시는데 피곤했던 주말 일찍 자기 위해 7시쯤 산책을 나갔다. 낮동안 꼼짝없이 집에 있느라고 지겨웠는지, 한 시간이 지나도 도무지 집에 들어갈 생각이 없다.

더워서 헥헥거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산책이 정말 좋아서 더위는 잊는가 보다.

풍산개는 추위에는 강해도 더위에는 약하다고 했는데,

우리 개는 분명 더운걸 힘들어하는데!?

그냥 정처 없이, 하염없이 걸으려고 한다.

이 개는 왔던 길을 다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집에 가자는 나의 성화에 왔던 길로 또다시 걸어가려고 용을 쓴다.


팽팽한 끈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며 생각했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 상황이 힘들어도 괜찮구나,

그리고 이 개의 머릿속에는 더위가 싫다는 생각이 반복되진 않는구나.'



일단 머릿속이 맑아서, '더운 게 너무 싫고, 더워서 어떤 일을 하기가 힘들다.'라는 생각이 없다.

이런저런 상황을 모두 다 세팅해 놓지 않아도 목표를 향해 갈 수 있어야 함을 가르쳐준 우리 개.

힘들다며 억지로 집에 끌고 왔지만, 모든 상황에 감사하면 그 상황은 결국 선이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오늘은 집에 누수된 곳을 공사하고 나서 정리할 때 환기를 시켜야 하는 상황인지라 잠시 에어컨을 껐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날씨인데, 움직일 때마다 땀이 줄줄 흘렀다. 분명 나는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보다 여름이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겨울엔 분명 그랬었는데!

따뜻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차라리 옷을 껴입을 수 있는 겨울이 낫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변덕스러운 존재인가 생각했다.


결국, 겨울에는 여름이 좋고, 여름이 되니 겨울이 낫다는 것은 모두 다 싫다는 결론이 나온다.

'내가 아직도 이런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땀을 흘리며 노폐물을 빼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었다.

오히려 더위 속 진정한(?) 요가 수행으로 이어졌다.



이번 주말엔 조카와 시간을 보내느라 몸은 두배로 힘들었고, (3일 연속 계곡에 다녀왔고, 밤에는 광란의 댄스타임을 가졌다. ㅎㅎㅎ) 주말 동안 엄마의 이런저런 잔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조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내가 좀 더 어른이 되는 시간이고, 엄마의 잔소리에도 감정의 중심을 잡는 법을 배울 수 있다.









털이 잔뜩 묻은 개 이불 위에서 조카와 파파.





 모든 것을 감사하게 바라보는 것은 힘들지만, 힘든 상황에서 내 힘을 빼고 여기서 신이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보면 결국은 다 좋은 것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은 더위를 피해 하루종일 시원한 곳에 누워있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시원함의 기쁨을 알기 위해 더위 따윈 상관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일 테니까.


신이 주시는 선물을 겉 포장만으로 판단하지 말자.

포장은 내 마음에 들지 않아도, 그 속에는 값진 보물이 들어 있다. 가난 뒤에는 물질에 대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진정한 부가 있고, 어둠이 있어야 빛이 빛임을 알 수 있으며, 갈증이 나면 물의 시원함은 맛있기까지 하다.



결국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고, 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