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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 Nov 10. 2024

내 꿈은 지구별 수행자


 지구별 수행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영락없는 지구별 여행자이다.

수행을 하고는 있는 걸까, 아예 안 하는 건 아닌데

잘 모르겠다..

 좋은데 다니고 좋은 거 먹으며 즐기는 여행자의 삶은

김하종 신부님처럼 세상의 아픔을 껴안기는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안나의 집 봉사 중에 신부님과 나란히 서서 가지를 썰고 있었는데, 신부님께서 식사준비 중인 봉사자들에게 크게 말씀하셨다.

 "오늘 아침 아흔이 넘어 보이는 작은 할머니께서,

자녀분의 차를 타고 오셔서 이 가지를 직접 농사지은 거라며 주셨어요. 아주 귀엽고 작은 할머니이셨는데

너무 감동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눈물이 날 정도인지에 공감이 되질 않았다.

옆에 계신 신부님은 눈물을 글썽이시며 이야기하시는데, 나는 덤덤했다.

할머니를 직접 못 뵈어서?

아니면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연세가 꽤 많으셨을 때에도 농사를 지으셨던걸 봤기 때문에?? 아.. 모르겠다.

 아무튼 눈물에는 공감을 못했고, 그저 신부님께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나와는 다르다고 느꼈다.

가슴이 사랑으로 가득 찬 분이고, 상상초월 따뜻한 분이시다.


 마지막 설거지까지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할머니 한 분이 급식소를 기웃거리시며 "다 끝났나 보네.."하고 말씀하셨다.

 이를 본 누군가가 "할머니 오늘은 끝났어요. 내일 일찍 오세요."라고 말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신부님이 나타나셔서, "할머니, 식사 못하셨어요? 얼른 들어오세요." 하신다.

마무리까지 깨끗하게 된 식당에서 신부님은 할머니께

무엇을 주실까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부님은 언제나 희생으로 수행자의 삶을 살고 계신다.

나는 그런 신부님을 주 1회 뵙는 것만으로도 좋다.


 나는 신부님 같은 수행은 꿈도 꾸지 않지만,

오전 수업이 꽉 찬 날에 아침식사를 조금 덜 하고

그 시간을 수업준비에 쓸 수 있다.

나를 가꿀 물건들을 생각하고 고르는 시간에, 기도가 필요한 곳에 기도를 보내줄 수 있다.

조금 덜 먹고, 물질을 덜어낼수록 조금 더 나눌 수 있다.


 밥을 한 끼 요리해서 먹으려면, 메뉴 정하고 장을 보고,

재료 준비하고 요리하고, 먹고 치우고 소화시키고 화장실도 가야 한다. 덜 먹으면 일상이 훨씬 심플해진다.

소화시키는데 쓰이는 에너지는 운동을 많이 했을 때 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 이젠 많이 먹었을 때 몸이 제일 힘들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연료를 채우는지, 연료가  한가득 채워지고 힘들어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내게 수행은, 내가 가진 사랑이 아닌 생각들을 지워가며, 사랑으로 행동하는 과정이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겸손으로 인내하려는 과정은,

많은 물질들로 나를 채웠던 나를 아주 조금씩 내려놓게 만들어준다.

자연스럽게 조금 덜 먹게 되고 덜 사게 된다.

행동은 모두 생각에서 나오는데, 생각을 통제하지 못하면 감정도 통제가 어렵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악마는 존재한다.'라는 책에서 우리는 선과 악의 치열한 영적 싸움 속에 살아가는 존재임을 명시하셨다.ㆍ

거대한 악의 존재는 늘 내가 선으로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흔들어놓으며, 나의 수행을 늘 방해하고 있다.

 이 악한 영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것과

그냥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사는 것과는 분명 다르다.

(세상은 우리가 보는 물질세계 이면의 훨씬 더 큰 영적세계이다.)


악은 착한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악한 사람은 꾀어 더 악하게 살도록 부추긴다. 우리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해 그 약점으로 우리를 무너뜨리기 원한다.

,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선하게 살아가고 싶어 하지만, 늘 이 거대한 영적싸움 속에 휘둘리는 나약한 존재들이므로 큰 선에 의지해야만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내 힘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생각은 교만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밤산책 시간.

 사장님은 퇴근하시고 동네 카센터에 혼자 묶여있는 멍멍이를 산책시키며, 함께 하는 삶이 좋은 것임을 다시금 느낀다.


        늘 짧은 줄여 묶여있는 측은한 아이.





 해가 거의 다 저문, 밤하늘이 아름답다.


하늘색이 어쩜 이리 오묘하고 예쁜지, 잠시 서서 바라봤다.

오늘도 나의 수행은 기대에 못 미쳤지만,

지금도 내일도 작디작은 나는 작은 사랑을 하기 위한 수행을 이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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