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재워야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영유아 시절
아이를 일찍 잘 재워야 한다는 지상 과제를 위해 나는 나름 규칙을 세웠던 것 같다.
1. 햇볕이 좋은 낮 동안은 충분히 햇볕에서 놀게 해 준다.
2. 에너지를 충분히 배출할 수 있게 가능한 한 신나게 놀린다.
3, 잠들기 전에 따뜻한 물에 행복한 목욕 타임
4. 은은한 조명을 켜고 개운한 이불 위에서 따뜻한 우유를 마시며 뒹굴뒹굴
5. 조용한 자장가 음악이나 엄마의 동화책 낭독
위 사항들을 모두 지킨 날은 아마 손에 꼽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워킹맘은 매일의 일상이 그리 녹녹지 않다. 하지만 가능한 한 저 일상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아이들이 비교적 잠을 잘 자는 편이었다. 낮 동안 충분히 지키지 못했더라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매일 하는 탕 목욕이었다. 아담한 나와는 달리 덩치 큰 남편 덕에 평균보다 큰 우리 아이들을 매일 탕 목욕을 시키는 건 특히 어릴수록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친정엄마의 지혜로 난 전쟁 같은 목욕이 아닌 목욕을 힐링 타임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의외로 목욕시키는 것을 힘들어하는 엄마들이 많다. 어쩌면 아이 목욕시키기 힘든 이유는 목욕을 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목욕을 시키지 말고 함께 하면 마법처럼 이 시간은 해피타임으로 변한다. 다시 말해 함께 엄마도 탕 속에서 함께 목욕하면 전혀 힘들지 않다. 돌이켜보면 애들이 어릴 적에 함께 하는 탕 목욕은 그 시절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부드럽고 순한 베이비 워시로 아이와 함께 씻는 시간은 그야말로 힐링이다. 아이와 스킨십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고단한 하루를 뒤로하고 느긋하게 아기와 탕 목욕을 하며 따뜻한 물속에서 함께 충분히 이완하면 잠잘 준비는 절반 이상 됐다고 본다.
목욕 후 나른해진 아이에게 따뜻한 우유를 먹이며 어두운 조명 속에 눕혀 자장가를 틀거나 동화책을 읽어주는 이 루틴은 꿈나라로 이르는 마법의 레시피이다.
사실 어서 아이를 재우고 내심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내 꾀에 내가 넘어가서 아이랑 함께 잠들어버리곤 하였다. 일어나 보면 아침이고 그러다 어느새 나는 정말 아침형 인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꿀잠은 보약 같았다. 일상의 큰 에너지는 꿀잠에서 얻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목욕이 내게 가르쳐 준 것들
골격도 작고 아담한 내가 튼튼한 두 아이를 키우며 아이들 목욕시키기를 전쟁이 아니라 힐링 타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에는 목욕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시간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사실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많은 인생의 지혜들이 있는 것 같다.
책을 읽히기보다는 함께 읽고 공부를 시키기보다는 함께 공부한다면? 아이들이 훨씬 더 바람직하게 모든 걸 받아들이지 않을까? 아이들에게 바라는 모습을 우리가 함께 한다면 말이다.
이따금 이른바 학군지의 카페에 가보면 엄마들끼리는 수다를 펼치며 미취학 어린아이는 숙제를 시키는 엄마들을 마주한다. 어쩌면 나도 과거 언젠가는 이런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제삼자의 모습으로 그런 장면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것은 일종의 아동학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따금 그 어린아이는 숙제하기 싫다고 울기도 했고 엄마는 엄한 모습으로 손가락을 펼쳐 들고 감정 조절을 요구하였다. 그 작은 아이가 나는 너무 안쓰러웠다.
아이가 공부 잘하기를 원한다면 엄마가 학위를 따라는 말이 있다. 가수 이적 어머니까지 언급할 것도 없이 이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다. 물론 모두에게 통하는 방법은 아니겠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학습하는 것 같다. 아이에게 원하는 것을 내가 먼저 삶으로 보여주는 것 그것이 먼저일 것이다. 물론 나는 이것을 얼마나 잘 해냈냐 하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며 직장 다니며 내가 나이고자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했던 시간들 속에서 그래도 내 아이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심하게 강요만 하는 모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아이들에게 원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함께 하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