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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Dec 14. 2023

선녀의 옷을 훔치는 나무꾼의 심정


 내가 쓴 글이 어떤 내용이었나 종종 들추어본다. 나는 당연히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이 글을 쓰는 시간보다 많기 때문에 가끔은 내가 어떤 글을 썼더라 잊어버리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시 읽다 보면, 아 나는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했지 하고 어느 정도 잊고 있던 내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의 지난 글은 개원에 대한 감당하기 어려운 불안에 멈춰있다. 내 모습이 이것만은 아닌데, 그래서 지금은 그래도 잘 살고 있다고 근황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압력을 조금 느끼기도 했다. 


  한동안 사진 찍을 생각을 좀처럼 못해왔다는 것을 새삼 알았다. 병원 내부를 꾸미고는 사진으로 담긴 했지만 그건 뭔가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이 드는 일은 아니다. 오래 안 쓴 필름 카메라가 어디 있는지.  이 동네에 택배를 보낼만한 가까운 장소가 어디 있는지, 꼭 잊고 있던 일들이 문득 떠오르는 것처럼 사진 찍을 생각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최근에 좋은 일이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병원 운영이 그래도 이제는 더 이상 불안한 정도에선 벗어났다는 점. 예약제 운영 특성상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기대할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비교적 하고 싶은 방식대로 진행하고 있는대서 오는 만족감이 상당하다. 이제는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부드럽게 운영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요즘의 고민이다. 감당하기 어려울 것만  같았던 회계나 향정의약품 관리도 매일 하면서는 익숙해졌고, 이 정도면 아직까지는 순항 중이라고 해도 되지 싶다. 


  다른 한 가지는 아내의 취업. 아내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경력이 단절된 것에 대해 많이 불안해했다. 하던 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하면 어떨지 걱정하는 아내가 한편에 있고,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이 한편에 있었다. 아내의 불안에 대해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지만 또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했다. 다행히 첫 3년은 내가 병무청에서 근무하느라 육아에 참여할 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웠고, 또 봉직의로 오산에서 근무하면서는 내가 평일에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작년 한 해 장모님의 도움으로 한 해를 보내기도 했다. 


  나는 아내의 커리어를 응원하면서도 한편으론 선녀의 옷을 훔치는 나무꾼의 심정이기도 했다. 다행히 올해 아내가 드디어 원하던 수련환경에 들어가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이제는 아이들도 어느 정도는 성장하기도 했다. 아내도 아내의 일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되어서 마음이 크게 놓였다. 


  마냥 길게만 느껴졌던 출퇴근길도 이제는 조금은 적응이 되었다. 처음엔 출근하기 전 이 먼먼 출근길을 어떻게 시간 보내야 하나 걱정이 앞섰는데 이제는 그런 고민은 크게 하지 않는다. 심심하면 책을 읽기도 하고, 유튜브도 보면서 출퇴근을 한다. 


  나는 지방에서 성장해서 처음엔 지하철이 마냥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내게 지하철은 서울에만 있는 것. 그래서 남들은 지하철이 지옥철이라고 해도 내게는 얼마나 새롭게 느껴지던지. 재수학원을 다니던 시기, 마음이 복잡한 날엔 2호선을 뱅뱅 돌며 앞사람 얼굴을 관찰했다.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무슨 생각을 할까. 다른 사람들은 나를 보고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생각하는 일이 마냥 재미있던 것이 떠오른다.


  요즘은 좀처럼 그런 상상을 하지 않게 되는데. 나이가 들었기 때문일지. 아니면, 매일 내 앞의 환자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묻는 일을 직업으로서 하고 있기 때문일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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