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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원 Jun 05. 2024

카메라 질량의 상대성


 최근엔 카메라를 알아보고 있다. 필름 카메라가 내가 사용하는 기능으로는 적당하니 딱 이만하면 되지 싶은데. 뭔가 작고 더 편하게 휴대가 가능한 카메라가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려는 카메라의 가격을 보고 있자니 고민이 많다. 카메라를 사면 행복해질까, 카메라를 사면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될까. 사실문제가 되는 건 어떤 카메라를 내가 갖고 있는지 하는 것보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왜 찍는지 인 것 같다. 내 마음속에 매일 다툼이 있는데, 이게 뭐라고 하는 마음 때문이다. 이게 뭐라고 하는 마음은 사진을 찍던 글을 쓰던 든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이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고 할까. 뭔가 떠올라서 일기장에 아님 메모장에 뭔가를 적는데, 그러고는 문득, 그런데 이게 뭐지. 무슨 의미지. 다른 사람이 이걸 좋아할까. 내가 좋다고 적거나 찍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마음속의 다툼. 대체 나는 이걸 왜 쓰고 있나. 대체 나는 이걸 왜 찍고 있을까. 카메라가 가벼워지고 그게 디지털이라 좀 덜 번잡스럽다면 내 마음이 달라질까.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새 카메라는 갖고 싶다.


 투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 혹은 좋아하는 부분에서 인정받기 위해, 가족을 그리고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노력해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아한 일이다. 떠오르는 장면 하나, 재수학원을 다니던 시기였는데 당시 어떤 온라인 강의 플랫폼에 올라온 진중권 씨의 현대미학 강의가 듣고 싶었다. 당연히 주변에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 하냐는 거냐고 했는데. 적당히 논술 준비의 일환이라고 둘러대며 열심히 메모까지 하며 들었던 기억이 있다. 부모님은 뭐 심각한 일탈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으니 그저 적당히 모른척해주시고 계셨는지 모르겠다.


 정형외과 동기와 이야기를 하다가, 저녁에 정신분석가 과정 면접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신분석을 더 공부하겠다고 하는 것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난감할 때가 있다. 최근 몇 가지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정신분석을 공부하면 경영상의 도움이 되는지? 아니오. 그렇다면 정신분석을 공부해야만 환자를 대상으로 그 치료를 할 자격이 주어지는지? 아니오. 두 가지 질문을 한 친구는 왠지 내 대답을 듣고 나를 이해할 수 없어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여튼 요즘은 그것이 분석이든 글이든 사진이든, 그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반대에 부딪혔을 때, 오히려 당시엔 내게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더 절박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성적에 대한 압박에 시달리던 대학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유지하는 것이 미덕처럼 생각되었고 내 마음 상태에도 그것이 영향을 끼쳤다. 그때엔 지금의 카메라, 아니면 오히려 더 큰 카메라가 조금도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당시엔 필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했지만 그래도 사진을 찍기 위해선 학생 신분에서 쓸 수 있는 상당 부분의 돈을 사진에 써야 했다. 그때의 내게는 사진을 찍거나 일기를 쓰는데 어떤 절박함이 있었다. 이걸 하지 않으면 내가 증발해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 지금은 그런 마음이 어떻게 사라지게 된 것인지. 내 주변 사람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보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카메라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던 학생 시절의 꿈이다. 스물다섯 즈음이었는지, 꿈에서 당시 좋아하던 키스 자렛의 내한공연엘 갔다. 엄청 큰 공연장에서, 늙은 그가 의자에 앉았다 일어났다 괴로운 탄성을 지르며 연주를 하는데 연주가 끝나고 공연장 한창 뒷열에 앉아있는 나를 쳐다봤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을 내려놓고, 몇 년을 따라다니며 옆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배울 수 있겠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꿈.


 오랜만에 효형이 나보고 넌 왜 점점 펭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는데. 마침 어떤 음악을 듣다 앨범 커버를 보고 나와 내 병원이 떠올랐다며 연락을 했다. 어쩌다 남색 옷을 입고 출근하는 날.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는 웬 펭귄이 있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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