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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강 Nov 15. 2020

조상님 땅이 너무 많을 때 생기는 일

 
법학과나 로스쿨에서 민법을 처음 배울 때 법학도들을 가장 먼저 좌절하게 만드는 관문이 있습니다. 그 관문은 바로 ‘종중’입니다.
 
법률용어사전은 ‘종중’을 ‘공동선조의 분묘의 보존, 제사의 이행, 종원 간의 친선 · 구조 및 복리증진을 도모하는 권리능력 없는 사단인 가족 단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난해하고 고루한 느낌을 주는 ‘종중’이라는 개념을 민법 공부 극초반에 만나게 되는 이유는 법률용어사전에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종중이 ‘권리능력 없는 사단’의 대표적인 예이고, 이와 법리적으로 관련이 있는 '법인'에 관한 규정이 민법 전체 조항 중 비교적 앞부분에 있기 때문이죠. 


처음에는 저도 종중에 대하여 민법 교과서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도 아닌 21세기에 종중이라니요. 장례방식으로 화장이 보편화되고, 사촌지간도 몇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이 바쁜 시대에 '묘지를 관리하고 제사를 주관하는 친족단체'가 그렇게나 중요할까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장래에 변호사가 되더라도 종중사건을 다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종중사건은 젊고 현대적인 본인의 마인드와는 어울리지 않고, 어린 변호사가 수임할 수 있는 영역의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리고  확신은 송변호사님을 만날 때까지는 유효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송변호사님은 제가 사무실에 합류하기 십수 년 전부터 경기도 모 지역에 상당한 부지의 토지를 재산으로 보유하고 있는 종중이 당사자로 개입되어 있는 사건을 수행하여 오셨습니다. 물론 하나의 소송이 10년이 넘게 이어진 것은 아니고, 여러 건의 큰 소송이 계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자잘한 파생사건도 함께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결과적으로 송변호사님이 오랜 기간 동안 종중사건의 굴레에 빠져계신 것이었죠. 


제가 사무실에 합류했을 때, 송변호사님이 저한테 종중사건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본 기억이 지금도 납니다. 당시 저는 신참 변호사로서 뭐든지 열심히 하고자 하는 열의가 있었기 때문에, 맡겨만 주시면 열심히 리서치도 해보고 준비서면도 써보겠다고 대답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있지 않아 송변호사님이 종중사건 중 하나를 맡아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하셨습니다. 소송 수행방향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지침을 주고 준비서면 작성도 코치를 해줄 테니 실력 향상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같이 사건을  진행해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저는 망설임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경험도 없는 제게 사무실을 흔쾌히 빌려주신 송변호사님께 보답도 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해서 종중사건 중 하나에 소송대리인으로 제 이름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종중사건이 담당 변호사를 미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는 분쟁이 워낙 오래된 관계로 관련자가 사망하거나 기억이 불분명하여  법률분쟁의 근원 자체를 알 수 없거나, 부동산 처분 등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관련된 제3자가 많은 분쟁이 많고, 종중 내부에도 다양한 파벌이 존재하여 사실관계의 정리나 분쟁에 대한 원만한 협의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종중의 경우에는 법률분쟁이 다수 발생할 수 밖에 없는 내재적인 요인도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종중이 '총유'라는 형태로 재산을 관리하기 때문입니다. 총유는 구성원 총회를 통해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방식인데, 종중이나 교회와 같은 단체(권리능력 없는 사단)이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총유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이 재산을 함께 향유하고 단체의 소속이 아닌 경우에는 재산에 대한 권리를 상실한다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총회결의가 가능한 다수파를 누가 구성하느냐'에 따라 재산관리에 관한 권한을 누가 독점할 수 있는지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내부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 본질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수행하게 된 종중사건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을 모두 충족시키는 종중을 당사자로 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오랜 기간 동안 종중재산의 관리권을 다투어 온 파벌이 2개로 나뉘어 있었고, 각 파벌의 중심부에 위치한 인물들은 친족이 아니라 사실상 원수보다 못한 사이로서 협의의 여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이미 오래전에 발생한 종중의 부동산 처분행위와 관련하여 법률관계가 명확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동산 개발업자, 건설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제3자가 법률분쟁에 수시로 개입하면서 사건이 엄청나게 꼬여버린 상태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송변호사님은 파벌 중 한쪽 당사자를 오랫동안 대리하여 오셨는데, 제가 옆에서 지켜보기도 하고 함께 소송을 진행하기도 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 종중사건은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종중사건이 명쾌하게 해결이 되려면 분쟁 당사자들이 서로 양보하여 합의안을 수용하여야 하는데, 송변호사님이 다루는 종중사건의 경우에는 어느 한쪽이 총회결의를 진행하면 상대방이 총회결의 무효를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하고, 여러 개의 소송이 제기되는 와중에 다른 파생사건이 발생하고, 각자가 진행하는 총회결의에 대해 법원판결이 엇가리는 경우가 다반사이기 때문에 당사자 어느 한쪽이라도 수용할 수 있는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종중사건을 진행하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점은 원고와 피고의 주장 모두에 친족공동체라는 종중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가능하면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다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판결을 내려야 하는 지위에 있는 판사님,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고 싶은 변호사, 무엇보다도 후손들에게 많은 땅을 물려주면서 후손들이  번영하면서 화목하게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조상님 모두가 원하는 결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법 시간이 흐른 후에 송변호사님 사무실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기일표를 적어놓는 칠판에 당사자명이 익숙한 종중사건들이 빼곡히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 종중사건이 아직도 이렇게 많이 돌아가나요?"라고 물어보게 되었습니다. 사무장님은 빨리 끝나지도 않고 지긋지긋하다고 말씀하시는 반면에  송변호사님이 그저 넉살 좋게 웃으셨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어쩌면 지금도 열심히 종중사건을 진행하시고 계실 송변호사님에게 "파이팅"이라고 외쳐드리고 싶습니다. 종중사건의 정말 막바지에는 저도 꼭 다시 합류하고 싶다는 말씀에 덧붙여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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