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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나 Mar 11. 2024

차차선의 삶도 괜찮아

"It's ok not to be perfect."

누구나 어릴 땐 '최선의 삶'을 꿈꿉니다. 20대 초반의 저는 서른 이전에 박사학위를 따고, 본교에서 강의하는 교수가 되는 꿈을 꿨습니다. 키가 크고 외모가 출중하며 똑똑한 남자와의 행복한 결혼 생활도요. 안타깝게도 제 유학생활의 실상은 20대 박사가 될 '최고'의 학생이 아닌 오늘 하루 잘 선방함에 뿌듯해하는 '하루살이' 인생의 연속이었습니다. 매일매일 읽어가야 하는 책과 자료는 산더미였고 매주 발표와 과제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모든 수업은 다 영어로 진행됐고, 사실 한국말로도 잘 이해가 안 되는 내용도 꽤 있었어요. TA (강의 조교)로 일하면서 수험료와 생활비를 충당해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았다는 점 말고는 그리 내세울 것 없는 유학생활이었습니다. 제 장점 중 하나가 '자기 객관화'가 잘 된다거든요. 제 능력과 노력이 박사 되기는 부족하다고 판단됐고, 석사학위만 따고 유학생활을 정리했습니다. 


아마 이때가 '인생 내 맘대로 안된다'는 진리를 깨달은 첫 계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도 직장 생활을 하며, 결혼해서 아이 둘 낳아 키우며 '인생 내 맘대로 안된다'의 깨달음은 계속됐어요어릴 때는 목표했던 바가 이뤄지지 않을 때 크게 낙담하며,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인생 자체가 완벽하지 않고, 일이 어그러진다고 세상이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요. 욕심을 부리고, 남을 부러워할수록 제 행복지수는 급락하더군요. 제 구직활동에는 전혀 진전이 없는데, 한 지인이 최종 인터뷰 4개를 봤다는 글을 소셜 미디어에 올렸더라고요. 예전 같으면 제 무능력을 탓하며 몇 날 며칠을 괴로워했을 텐데, 요즘은 자기 객관화를 통해 성장의 기회로 삼으려로 합니다. '그 친구는 전공자고, 5년 경력이 있어. 노력하며 쌓아온 그 친구의 10년 세월을 비전공자에 경력 2년 차인 내가 따라잡기는 어렵지. 나도 10년 정도 하다 보면 분명히 실력이 올라갈 거야'라고요. 


이런 내공이 쌓인 건 다 그동안 수십만 원을 들여 사 읽은 자기 계발서들 덕분이지 싶습니다. 저는 이해력도 떨어지고 학습능력도 부족해 딱히 똑똑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입력된 게 없는데 어떻게 출력이 되겠어요. 그래서 저는 책을 맹신합니다. 제가 가진 지식은 없지만, 똑똑한 저자들이 나눠주는 지식을 양식으로 삼고 그들의 이야기에 위로를 받습니다. 두 달 전 정리해고 되고 나서 제가 좋아하는 책들을 다시 읽어봤어요. 그중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 2권 있습니다. 정신분석 전문의 김혜남 작가가 쓴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과 가수 이적 엄마로도 유명한 여성학자 박혜란 박사가 쓴 '다시, 나이 듦에 대하여'입니다. 제가 두 책에서 배운 한 가지 교훈은 '인생은 경주가 아니라 여정이다 (Life is not a race, it's a journey)'입니다. 


저는 박사 학위도 따지 못했고, 교수도 못됐지만 결혼도 했고 두 아들도 있습니다. 제 남편과 관련해서는 다음 편에 이야기해드릴게요. 궁금해하실 것 같아 살짝만 말씀드리자면, 저는 '키가 크고 외모가 출중하며 똑똑한 남자'에 약 33% 부합되는 남자와 결혼했습니다. '차차선의 삶'도 나쁘지 않아요. 교수는 아니지만 엔지니어가 돼 전 세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속에 살며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엄마의 욕심으로는 제 아이들은 꼭 '최선의 삶'을 살면 좋겠어요. 하지만, 만약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모두의 여정은 다르고 그 나름의 의미가 있으니까요.



오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번 편이 벌써 여덟 번째 글이네요. 오늘 글은 좀 짧았지요? 눈치 채신 독자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목요일, 금요일에 글을 올리곤 했는데, 점점 늦어지더니 이번 글은 미국 시간으로 일요일에 올립니다. 어쭙잖게 저도 작가라고 작가의 벽 (writer's block)을 겪었어요. 최근 슬럼프 겪고 완전히 회복 못한 것도 있었고요. 오늘도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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