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단편소설-오늘따라

김명구 습작

오늘따라 야외주차장은 너무도 뜨거웠고, 차 앞 유리를 뚫고 내리쬐는 햇빛은 너무도 강렬했다. 주차장 한 바퀴를 다 돌았을 즈음 주차장이 만차라는 것을 알게 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짜증을 삭히는 일뿐이었다. 두 바퀴쯤 더 돌았을 때, 나가는 차가 있어 가까스로 주차를 마칠 수 있었다.

조수석에 앉아있는 민아에게 오늘따라 차가 너무 많다고 뒤늦게 투정을 부려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민아의 무미건조한 대답뿐이었다. 짜증이 났나 싶어 슬쩍 고갤 돌려 민아를 보았는데, 민아의 눈빛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향해있었다. 몇 년을 봐왔던 민아지만, 오늘따라 민아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민아의 눈빛이 가는 곳을 지긋이 바라보다 그녀의 손을 살포시 잡으며 말했다.​


“다 왔다. 내리자.”


“일찍 도착했네.”


“늦는 것 보다야 낫지.”​


나는 민아의 안전벨트를 풀어주고는 차에서 내려 트렁크를 열었다. 꽉 찬 트렁크, 민아는 어물쩍거리며 내리더니 내 쪽으로 다가와 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려다가 무거운지 낑낑거리며 다시 트렁크에 내려놓고는 말했다.​


“짐도 참 많다.”


“난 없다고 생각했는데.”


“가지고 가기 무겁잖아.”


“내가 들지 뭐. 요즘 헬스 해서 거뜬해.”

나의 힘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한 손으로 캐리어를 들어보았지만, 캐리어는 사람이라도 들어있는지 너무도 무거웠다. 민아는 부들부들 떨리는 내 팔뚝이 웃기는지 운동한 것이 맞냐며 나를 놀려대었다. 민아의 한껏 올라간 입꼬리, 오늘따라 민아가 더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민아의 이마에선 주르륵 땀이 흘렀다. 민아에게 물었다.

“가기 전에 시원하게 커피나 한잔할까?”


“티켓부터 뽑고.”


“뽑고 와, 내가 사둘게.”​


나는 민아와 갈라져 카페로 향했다. 도착한 카페에는 다행히 창가 쪽에 한 자리가 남아있었고 나는 서둘러 테이블에 핸드폰을 둔 뒤 주문대로 가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켰다. 등이 축축해질 정도로 더운 날씨엔 역시 아아 만한 게 없다.

민아를 처음 만났을 때도 아마 이렇게 더웠던 여름이었었다. 아이스아메리카노가 쓰다며 표정을 찡그리지만, 꾸역꾸역 먹는 민아의 모습이 너무 귀엽게만 보였고, 민아는 그런 내가 자신을 너무 빤히 쳐다본다며 꿀밤을 먹였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민아가 좋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마 민아를 이길 그 어떤 누구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티켓을 뽑은 민아는 저 멀리서 나를 찾는지 두리번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민아를 큰 소리로 부르며 손을 번쩍 흔들었다. 민아는 창피하다며 손사래 치더니 와서는 내게 꿀밤을 먹였다. 나는 민아에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건네며 말했다.​


“자, 거기서는 못 먹을 마지막 아아.”​


그 말을 들은 민아는 한껏 인상을 쓰고는 말했다.​


“마지막이란 말 금지.”

나도 인상을 한껏 쓰고는 민아에게 말했다.

“그럼 최후의 아아?”

아뿔싸, 웃자고 한 말에 민아가 울상이 되었다. 나는 서둘러 커피를 민아의 입에 갖다 대었다. 다행히 민아의 울상은 아메리카노 한 모금에 찡그림으로 바뀌었다. 더웠는지 아메리카노를 냉수 먹듯 들이키는 민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번에는 왠지 내가 울컥하는 듯했다. 민아는 말없이 휴지를 건넸다. 나는 언제 흘렸는지 모를 눈물을 닦으며 민아에게 말했다.

“거기도 좋을 거야.”


“모르겠어.”


“가자마자 딴 남자 만나는 거 아니야?


“미쳤냐?”

어떻게든 민아를 웃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늘따라 내 개그는 민아에게 먹히지 않았다. 얼마 안 가 민아는 핸드폰 속 시계를 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내게 말했다.

“이제 가야 해.”


“30분이나 남았는데?”


“비행기 안 타봤냐?”


“아쉬워서 그러지.”

나는 애써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민아는 웃지 않았다. 우리는 먹던 커피를 내려놓고는 서둘러 출발장으로 향했다.

공항의 천장은 높고 환했다. 천장에서 내려오는 빛은 뜨겁게 우리를 비췄다. 한 손에는 민아의 캐리어를 끌고, 나머지 한 손은 민아의 손을 잡고 공항을 걸었다. 늘 하던 평범한 데이트 같은데, 민아를 보내기 위해 가는 길이라는게 참 아이러니한 기분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캐리어 끄는 소리가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민아를 보았다. 어디를 보는지 모를 초점없는 민아의 눈빛, 그 모습을 보니 꼭 웃으며 보내주리라는 다짐이 들었다.

걷다 보니 어느덧 둘이서는 걸을 수 없는 곳까지 와버렸다. 우리는 한참을 서로의 얼굴을 아무 말 없이 쳐다보았다. 민아는 여전히 사랑스러웠다.

얼마나 지났을까, 민아는 나를 보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다녀올게.”

민아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조금이라도 민아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 다짐처럼 웃으며 손을 흔들며 민아에게 말했다.

“잘 다녀와.”

민아가 나를 바라보았다. 민아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민아가 나를 꽉 껴안았다. 나도 꽉 안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민아의 품은 포근했다. 어깨에 느껴지는 민아의 숨결은 따듯했고, 내 어깨는 축축해졌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지만, 오늘따라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이제는 정말 민아가 들어가야 할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민아는 한 발짝 물러서서 내 얼굴을 한참을 보았다. 퉁퉁 부어버린 민아의 두 눈을 보니 나도 그만 참았던 눈물이 나왔다. 민아는 자신의 옷소매로 내 눈물을 닦아주고는 뒤돌아서며 내게 말했다.

“갈게.”

나도 열리지 않는 입을 억지로 열고는 애써 웃어 보이며 민아에게 말했다.

“잘 가.”

결국 민아는 출국길로 향했다. 나는 가만히 서서 민아를 바라보았다. 어떤 영화처럼 달려가 민아를 끌어안고 가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그것은 뒷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영화일 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곳에서 멍하니 멀어지는 민아를 조금이라도 더 바라보는 것뿐이다. 점점 멀어지는 민아를 보며 그녀 또한 뒤돌아보지 않고 걸어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결국 우리는 다가왔던 우리의 멀어짐에 어떤 해결책도 내놓지 못하고 끝을 냈다. 그리고, 민아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나는 오늘 민아가 내 곁에서 떠나는 것을 도왔다. 그리고 민아는 오늘 내 곁을 떠났다.

민아는 이제 내게 오지 않을 것이다. 언제쯤 한 번 민아가 돌아온다고 해도 그 이유는 내가 아닐 것이다. 그래도 한 번쯤은 민아도 나를 향하기를 바래본다. 한 번쯤은 우리가 다시 이곳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나의 눈빛은 어딘지 모를 곳으로 향하는 저 비행기에 향했다. 오늘따라 민아가 더 보고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