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놀 Mar 01. 2022

데코룸한 삶?

<키케로의 의무론>, 키케로, 서광사, 2006 

데코룸 decorum

키케로(106~43 B.C)의 의무론에 나왔던 말이다.

이 책은 키케로가 아들이 정치가로 성공하기를 바라며 교육지침을 편지로 쓴 내용이다. 아들이 정치가로서 현실적으로 실천해야 할 윤리를 조언하는 아버지의 염원이다. 그의 아들은 당시 유학 중이었고 “나의 사랑하는 아들 마르쿠스 야!”로 시작한다. 이 책은 서양인이 가장 많이 읽은 책 중 하나라고 하는데 르네상스 휴머니스트들, 근대 정치 사상가 존 로크, 몽테스키외, 볼테르, 루소, 토마스 제퍼슨 등이 영향을 받는 대가들로 꼽힌다. 여기서 의무는 현대적인 권리와 의무도 포함되며 더불어 인간이 인간으로서 해야 할 도리, 참되게 사는 실천윤리강령으로도 해석된다. 3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권의 주제는 ‘도덕적 선’으로 여기에 속하는 4가지 기본적인 덕 지식과 지혜, 정의, 용기, 인내에 대해 말하고 있다. 2권은 유익함이라는 주제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편리하고 유리한 것들을 논하며 3권에서는 도덕적 선과 유익함의 비교에 관해, 일상생활에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데코룸한 삶이란 무엇인가

데코룸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repon’을 번역한 라틴어로 ‘고유하다, 혹은 적절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영어로 데코룸은 ‘proper(적합한)’이라고 한다. 여기서 ‘적합함’은 상황에 맞게 처신해야 한다는 의미로 폭넓게 말하면 ‘교양’ 정도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데코룸에 앞서 ‘호네스툼(honestum)’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호테스툼은 도덕적 선을 뜻한다. 테코룸, 사물을 적합함으로 올바르게 인식하고 상황에 맞게 처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덕적으로 선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키케로는 의무론에서 ‘데코룸’의 의미를 어떻게 구분했을까?     


이성과 웅변을 사려 깊게 이용하는 것과 행동을 신중히 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물 중에서 어떤 것이 참됨인가를 직시하여 유의하는 것은 데코룸한 것이지만,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나 오류를 범하여 기만당하는 것은 미쳐 날뛰고 정신 나간 것만큼이나 데코룸 하지 않은 것이다.   
  

키케로가 말한 데코룸한 삶은 이성과 웅변을 사려 깊게, 행동은 신중하게. 어떤 것이 참됨인가를 직시하여 유의하는 것이 데코룸한 삶이다. 반대로 데코룸하지 않은 것은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나 오류를 범해 기만당하는 것이다. 데코룸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데코룸하지 않은 것과 멀어져야 한다. 


무엇이 데코룸한 삶을 방해할까?

아마도 그 중심에는 ‘욕망’이 있지 않을까 한다. 제어하기 힘든 것이 욕망인지라 넘치기 쉽고, 넘치는 줄 모르고 넘는 것이 욕망이다, 키케로는 늘 데코룸하게 살아야 호네스툼에 이른다고 했다. 하지만 그 또한 데코룸한 삶을 살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가 정치를 하지 않고 철학자, 문필가로 살았더라면 가능했을지 모르겠다. 그가 살던 시대가 그를 정치가로 만들었고, 정치의 희생양이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여기서 궁금해진다. 정치가에게 ‘도덕적 선’은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일까. 

최근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며 데코룸한 삶은 정치적 영향력을 벗어나야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벗어날 수 없는 정치적 영향권 안에서 데코룸한 삶은 어떻게 실천할까. 선택하고 판단하는 지혜만이 내가 가진 카드인가. 그런 것 같다. 이 모든 일의 근원은 ‘욕망’이며 과도한 욕망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삶에서 누구든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욕망이다. 하지만 조절은 가능해야 하고 조절하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곧 ‘데코룸한 삶’ 일 것이다. 데코룸한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데코룸한 뉴스'를 듣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