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도 없는 하루였다.
달력에 표시할 만한 일정도 없었고,
사진으로 남길 만큼 특별한 장면도 없었다.
그저 평소처럼 눈을 뜨고, 아이를 안고, 밥을 먹고,
하루가 하루답게 흘러간 날이었다.
예전의 나는 이런 날을 쉽게 넘겼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말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루는 뭔가를 해내야 비로소 하루가 된다고 믿었고,
남길 이야기가 없으면 괜히 허전해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그 기준을 천천히 바꿔 놓는다.
아이가 낮잠에서 깼을 때 잠결에 나를 찾는 눈빛,
밥을 먹다 말고 이유 없이 웃는 얼굴,
내 손가락을 꼭 붙잡고 놓지 않던 작은 손.
그 모든 순간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 마음 어딘가를 채워준다.
오늘도 우리는 별일 없이 하루를 보냈다.
서두를 일도, 급하게 결정할 일도 없었다.
창밖의 날씨를 한 번 더 바라보고,
아이의 숨소리를 조금 더 오래 듣고,
괜히 시간을 천천히 쓰게 되는 하루였다.
이상하게도 그런 날은
지나고 나면 더 또렷해진다.
큰 사건이 없어서 흐릿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무 일도 없었기에
그날의 감정이 방해받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는 이 하루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런 날들이 쌓여
우리 사이의 온도가 만들어진다는 걸.
소리 없이 지나간 시간들이
가장 단단하게 남는다는 걸.
기억에 남는 하루는
꼭 특별한 날이 아니라,
마음이 평온했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