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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희랑 Mar 17. 2024

내 희귀병, 유전될 수도 있을까?

마음이 무너지더라도, 정확히 알아야 하기에


지난 금요일, 진단검사의학과에 다녀왔습니다. 


의대 증원과 그에 따른 사직 이슈로 병원 안은 평소보다 한산했어요. 


암 병원에 들어가 희귀질환클리닉에 도착하니 주변엔 온통 어르신들이셨습니다. 


왠지 모를 씁쓸한 마음을 뒤로하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이날 진료는 희귀질환의 유전 가능성을 알아보려는 목적이었어요. 


물론 첫 질환인 궤양성 대장염은 유전병이 아닙니다. 


가족력이 있다면 크론병과 궤양성 대장염 같은 염증성 장질환 유병확률이 1~5% 높아진다고 하지만요. 





두 번째 질환이자 더 오랜 시간 함께 해왔지만 이름은 근래에야 알게 된 질환,


돌발성 운동유발 이상운동(증)의 원인과 유전 가능성을 알아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영문명은 Paroxysmal kinesigenic dyskinesia이며 약자 [PKD]로 주로 지칭합니다.)




먼저 알아본 가족력을 바탕으로 담당 간호사 선생님과 가계도를 그렸습니다. 


PKD의 경우 유전적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경우와 그외 원인인 경우로 나뉩니다. 


친가와 외가 양측 모두에 저와 유사한 증상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전적 원인은 아닐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뒤이어 마주한 진단검사의학과 선생님은 제 경우를 유전적 원인으로 짚어 설명하셨습니다. 


가족성과 산발성으로 나뉘는 PKD에서 제 경우는 가족성에 해당하고 


PRRT2 유전자에서의 유전자 돌연변이로 인해 PKD가 발병했다고 말이에요. 




더 구체적으로는 상염색체 우성유전에 해당한다는 설명에 의문이 들었습니다. 



염색체 한 쌍은 부모에게서 나눠 받는데, 

'우성' 유전이라면 부모님 중 한 분에라도 동일 증상이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개인 참고용으로 검사 결과 및 유관 보고서를 첨부합니다.>


유전자 검사 결과지, 개인정보 제거



https://www.annchildneurol.org/upload/pdf/JKCNS-25-4-221.pdf

발작성 운동 이상증 한국인 환자의 임상 및 PRRT2 유전자 분석, 대한신경소아학회, 2017




"


생명과학 이론 상으로는 그것이 맞습니다. 


우성 유전이니 '중복' 변이가 나타난 염색체를 물려준 부모 중 한 분에게서도 증상이 있어야겠죠. 


다만 이번 경우는 '드 노보'(de novo : 라틴어 약어로 '신규의'라는 의미)라 하여 


가족들에게 특이한 병력이 없더라도 발단자에게서 처음으로 유전 질환이 나타나는 경우에 속해요. 


"






잠시 생각이 멈췄습니다. 


부모님은 이상이 없으시니 그나마 다행인걸까요. 


다른 형제자매들에게서도 유전 과정에 이상이 있었을 수 있으니 


유전자 검사를 권장한다는 설명이 물흐르듯 지나갔습니다. 




"오늘 진료의 핵심 주제죠, 유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상염색체에 일어난 돌연변이이니 50% 확률로 자녀 분께 유전될 수 있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착상 전 유전검사를 시행하고 있는데 해당 검사를 하는 병원이 전국에 세 곳입니다.


단일 유전자 질환을 가진 환자 분이시라 PGT-M 검사를 하게 될테고, 


이 경우는 법률로 규정하고 있는 질환만 검사가 가능합니다. 


PKD는 여기 속해 있지 않지만 해당 방식의 검사를 요하는 경우가 희귀하기에 


국민신문고나 유관 기관에 청원하면 심사를 거쳐 경우에 따라 등재하는 편이니 


자녀 계획에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




차 여성의학연구소의 착상 전 유전검사 설명




해당 검사를 통해서 유전자 돌연변이 없이 정상적으로 수정된 배아를 선별해 착상시킨다는겁니다.


단일 유전자 질환에 대해 법률로 허가하는 이유는 유전자 조작으로 남용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겠죠.


PGT-M 이외에 다른 방식들의 경우 40대 이상에 임신하는 산모에게 필수적으로 권장하는 검사였어요.


특수한 경우긴 하지만, 근미래에 보편화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며 병원을 나왔습니다. 




솔직히 속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전부터 마음관리에 각별히 신경 써오긴 했지만 


두 질환 모두 관리형 질환이고 함께 해온 시간이 오래되다보니 


이전만큼 '원인불명, 중증난치, 극희귀, 완치불가' 등의 용어가 타격이 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이날의 진단은 저 하나에 국한되는게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만날지 모르는 미래의 아이. 


그 아이에게 태어나기 이전부터 저런 시련을 선사한다니. 




물론 오늘자 기사처럼 결혼도 안하고 아이는 그 중에도 일부만 가진다고 하는 사회입니다. 



하지만 낳을 수 있는데 안하는 것과 낳기 전부터 50%라는 위험이 실존하는건 이야기가 다르죠. 


참 머리 속에 복잡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답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겠죠. 


할 수 없는 것들에 신경을 쓰다보면 삶은 어느새 엉망이 되곤 합니다. 


다음 달에는 어제를 포함해 극희귀질환을 마주하며 무너졌던 마음을 회복해온 과정을 적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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