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희연 Aug 20. 2021

부암동, 사랑, 김환기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필립스컬렉션, 워싱턴 DC

J에게


부암동은 내가 참 좋아하는 동네야. 게으름을 덜어내지 못해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옛날부터 부암동에는 개성 넘치는 주택이 많았어.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에서 이런 불편한 곳을 거주지로 선택했다면 분명 멋과 여유를 즐기는 분들이겠지? 실제로 부암동에는 화가나 작가와 같은 예술계 종사자가 많이 산다고 들었어. 그런 부암동에 내가 처음 가게 된 것은 꽤 어릴 때의 일이야. 엄마의 대학 동기 중 이담과 김근희라는 꽤 유명한 부부 일러스트레이터 분들이 계셔. 두 분은 함께 책을 집필하고 그림을 그리신다고 해. 대학교에 들어오셨을 때 이미 두 분은 연인이셨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누가 보아도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잉꼬부부시라고 들었어. 그렇게 따뜻한 두 분의 작업실을 가기 위해 부모님과 들렀던 부암동은 그래서 내게는 사랑과 행복 그리고 아름다움의 공간으로 가슴속에 아로새겨져 있어.


환기미술관에서 보이는 부암동의 정경


내가 부암동을 다시 찾은 것은 한참 후인 대학교 3학년 때의 일이야. 지금으로부터 벌써 11년 전의 일이네. 그때부터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부암동이 조금씩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 다행히도 경리단길 같은 곳에 비하면 접근성이 나쁘기도 하고, 터줏대감처럼 살던 곳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멋과 여유를 즐기는 분들이 많이 살기 때문인지, 부암동은 젠트리피케이션이 극심한 서울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여전히 처음의 모습을 비교적 잘 지키고 있는 게 아닌가 해.




그때 나는 환기미술관을 가기 위해 부암동을 찾았어. 환기미술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현대화가인 김환기(1913-1974)를 기념하는 미술관이야. 김환기의 그림은 보통 서양화로 분류되지만 한국적인 면도 적지 않다고 나는 생각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현대미술을 썩 좋아하지 않는 내가 처음 좋아하게 된 모더니즘 작품이 바로 김환기의 전면 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이야.


나는 2014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된 전시 《앵그르에서 칸딘스키까지》에서 처음 그의 전면 점화를 보았지. 피카소를 비롯한 서양의 수많은 화가들의 작품이 포진한 이 전시에서 내 기억에 가장 선명히 남은 작품은 엉뚱하게도 우리나라의 화가인 김환기였어. 나는 잘 모르는 그림, 처음 접하는 그림이라도 가급적 작품 설명을 먼저 보지 않으려고 해. 설명부터 읽고 나면 그 설명에 적힌 내용만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그때도 나는 작가도, 제목도 모르는 채로 용감무쌍하게 그림 앞에 섰지.


김환기, <27-II-70>, 1970, 캔버스에 오일, 213.36 ×147.32cm, 필립스컬렉션, 워싱턴 DC


순간, 엄청난 고독감이 밀려오는 기분이었어. 그림과 내 몸이 가장 가깝게 이어진 나의 코끝에서부터 온몸 구석구석을 향해 커다란 캔버스로부터 깊은 외로움이 전해져 오는 그런 느낌이었지. 커다란 캔버스 앞에서 나는 무언가에 압도되는 것만 같았어. 알 수 없는 그 신비한 감정에 한참 젖은 후에야 간신히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어. 그제야 비로소 작품 설명을 읽어보았지. 당시 전시회장에 붙어있던 설명에 의하면 이 작품은 김환기가 뉴욕에서 모더니즘을 처음 소화해 제작한 전면 점화 중 하나라고 해. 이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연작이 탄생하는 데 가장 직접적인 영감을 준 것은 시인 김광섭(1905-1977)의 시 <저녁에>라고도 적혀있었어. 김환기는 대회에 그림을 낼 때 그림 뒷면에 이 시를 적기도 했고, 작품 제목도 시의 마지막 구절에서 따 왔대. 예술의 전당 어느 구석의 벽에도 김환기의 그림 옆으로 <저녁에>의 한 구절이 적혀있었지.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광섭, <저녁에> 중


<저녁에>의 내용을 김환기가 작품을 제작했던 시기의 상황과 함께 생각해보면, 뉴욕에서 무명작가이자 이방인으로 혼자 어렵게 지내며 느꼈던 김환기의 외로움이 작품 창작의 동기가 아닐까 해.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작품에서 그토록 깊은 고독을 느낄 수 있었던 거지. 김환기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처음 보았던 2014년 가을, 나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의 미래라고 생각하며 몸 담았던 법조계와, 그 속의 사람들을 뒤로한 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방황하고 있었어. 그런 방황 속에서 만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이 그림을 통해 김환기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런 기묘한 공감은 당시의 내게 정말 큰 위안이 되었지.




바로 이런 감정이 내가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사를 공부하게 된 이유 중 하나야. 옛날의 일들을 알고자 하는 나는 옛사람들의 글도 물론 좋아해. 하지만 그림에는 글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어. 글보다 더 직접적으로 그림을 만든 사람을 느낄 수가 있잖아. 그래서 때로는 최종적으로 완성된 작품보다 아직 작업 중인 채로 영원히 끝나버린 스케치에 더 끌릴 때도 있어. 물감에 가려지지 않은 채, 다듬어지지 않은 채, 거칠게 남겨진 스케치선에서 작가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거든. 오래된 그림이 좋은 이유도 비슷해. 쉽게 불타거나 벌레에 좀먹힐 수 있는 비단이나 종이 따위가 수백, 수천 년의 시간을 견디고 살아남았다는 건 그 자체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아? 세월을 견뎌낸 그림은 그래서인지 그 자체로 엄청난 힘이 느껴져. 색이 바랜 종이와 비단, 그 위에 함께 빛깔이 변해버린 물감 속에서 나는 그것을 그린 사람들, 그것을 즐긴 사람들을 느껴.


마법사도 과학자도 될 수 없는 내게 그림은, 시공간을 넘어서 다른 세계의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장소야. 그래서 나는 그림을 볼 때 지식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 사실 연구자들도 정확히 모르는 게 많거든. 어쩌면 화가 본인은 별생각 없이 무심하게 그은 선 하나, 도형 하나에 우리가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어.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야. 오히려 그게 내가 그림을 볼 때 중요하시는 부분이지. 감상하는 사람이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낄 수 있는 가능성과 다양성이 그림에는 무한히 열려있다는 뜻이니까. 바로 그게 그림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미덕이라고 나는 믿어. 아직 '미술사학도'라고조차 부를 수 없었던 시절 어렴풋이 가져왔던 이런 생각을 난 6년 전 김환기의 그림 앞에 서서 온 몸으로 느꼈고 그 덕분에 지금 하고 있는 공부를 해야겠다고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어.


J를 기다리며 환기미술관에서 찍은 사진


오늘 오랜만에 환기미술관에서 너를 기다리며 한참 동안 잊고 있던 그때의 일이 생생히 떠오르는 건, 대체 왜일까? 입구에 비치된 브로슈에서 본 전면 점화 때문일까? 아니면 얼마 전까지 내가 다시 그때와 같은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너를 만난 후 비로소 방황을 멈출 수 있었기 때문일까, 마치 김환기의 그림이 내게 그렇게 해주었던 것처럼.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변해버리는 대한민국, 그중에서도 그 속도와 진폭이 가장 큰 도시 서울. 드물게 시간의 힘을 초월해 사랑과 아름다움을 지켜나가는 부암동이라는 요새에서 여름날 예쁘고 행복하게 두 사람만의 추억을 만들 수 있기를.


오늘 부암동에서 함께 할 시간을 기대할게.



2020. 7. 15.

환기미술관에서

희연


매거진의 이전글 벚꽃동산에 열린 여섯 개의 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