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젊은이들의 존엄을 위하여.
지난 글, 삶의 격을 읽어보시길 권한다. 비록 내가 적은 글이지만, 살면서 우연히, 그러니까 자격이 안 됨에도 불고하고 얻게 된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존엄함에 대한 통찰이 녹아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 존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보험사에 사기를 당하면서도 식구들 입은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다닌다. 면접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마다않고 면접을 보러 다닌다.
오늘 간 회사는 기괴했다. 부산 제일의 번화가 복판의 건물, 주차장 지원도 안 되고 중소기업 뭐시기 간판은 붙어 있는데 이 방식이라는 것이 의아하다. 면접장소에 면접자들 네 명을 우르르 몰아놓고, 화이트보드로 칸막이를 한다. 건너편에서 사람들이 회식인지 식사인지를 하는데 시간이 오후 네 시다. 규율이 없는 것이 느껴진달까. 열악한 환경에서 가열찬 학대의지가 느껴진달까. 오분 전에 도착 했으니, 십분을 기다려 면접 예정시간에서 오분이 지났다. 웃기는 것은 하루 전, 당일, 줄기차게 면접을 올 것이냐는 독촉 아닌 독촉 전화가 왔다는 것이 아닐까? 그래, 자기들 기다리는 것은 중요하고, 자기네 대표 바람 안 맞히는 것은 중요한데, 와서 기다리는 놈들 차 한잔, 물 한 잔 떠다줄 생각은 못한다는 그 고약함. 역한 냄새가 난다.
같이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의 차림새를 스캔한다. 정장을 제대로 못 갖춘 인원이 두 명, 그나마 정장은 제대로 입은 사람이 나까지 두 명. 주변을 두르고, 화이트보드에 엉망으로 갈겨진 것들을 본다. 예상되는 근로에 대한 밑그림이 그려지고, 자기네들이 유튜브에 올리는 동영상에 대한 댓글 및 좋아요를 달았는지에 대한 점검표가 따로 있다.
내가 반골인 걸까? 만드는 사람이 내 의견을 반영하거나, 직접적 논의를 바탕으로 만든 창작물에는 ‘예의상’ 좋아요나 피드백을 주긴 한다만, 기본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강제하면, 뭘 얻겠는가. 무슨 부귀와 영화를 누리려고 그러겠는가. 팔이 안으로 굽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더 냉철한 시각도 필요하지 않을까? 식구들의 마음을 얻는다는 것은, 굳이 좋아요를 눌러라, 댓글을 달아라 강제하지 않아도 자부심으로 그렇게 할 양질의 컨텐츠를 만드는 것, 스스로 우러나는 마음, 감화된 마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이 아름답지 않은가.
물론 미에 대한, 미학에 대한, 진, 선, 미에 관한 여러 관점을 보더라도 다양한 의견차가 있을 수 있다는 부분은 원 헌드렏 퍼센트 인정한다. 그래, 애초에 그런 것들을 잘 견뎠다면 여태 그만둔 회사들을 왜 그만뒀겠는가. 그럴리가. 그래, 말이 안 되지. 여튼, 사내에서 전산을 다루시는 분들은 대부분 여성분들이셨고, 양복 비슷한 것들을 입은 소위 영업사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어울려 네 시에, 칸막이조차 없는 사무실에서 밥을 먹고 담배를 피러 13층 화단에 왁자지껄 가는데 복장 자체도 마음에 안 들고, 무슨 배가 그렇게 튀어나왔는지…. 벨트를 했는가를 보려는데, 그것도 8초 정도 추적해가야 보이더라. 못볼 풍경에 눈을 고정시키다 못해 추적하며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은 서글프다.
면접시간에서 정확히 오 분이 지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면접을 기다린답시고 대기하는 사람들도 가여웠다. 아무리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시절이고, 경제가 그마만치 어렵다지만 이런 곳에서 일하는 것이 경력이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나을텐데, 안쓰럽고 가엽다. 시대가 가혹하다. 노인과 바다라는 별명을 가진 도시에서, 참치를 낚는 늙은 어부만큼의 존엄도 찾아보기 힘든 것은 슬퍼할 일이다. 웃긴 것은, 그렇게 면접장을 박차고 집에 도착해 정장을 벗고 빈백에 털썩 눕자 전화기가 울린다.
-여보세요
-네, 혹시 정재훈님 맞으신가요?
-네, 맞습니다.
-혹시 오늘 면접오신 중소기업….입니다.
-네
-혹시 추가로 면접보실 생각 있으실까요?
-죄송합니다 저와 결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요.
-네, 감사합니다.
-네, 수고하세요.
세상이 혼란하다고 말하려는 것을 보니 나도 어느덧 꼰대의 영역에 들었는가보다. 그러나 실제로 세상이 혼란하고 기본적인 것들에 동의하며 대화를 나누어야 할 상대는 적이 아니라 생각이 다른 사람이다. 어찌하려고 이렇게 되는가. 흘러가는 것들이 추억이고 노력과 땀이고 좋은 미래에 대한 갈망이나 확신이어야 할진대, 고름과 피, 눈물로 뒤덮어서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들조차 앞을 보지 못하고 위를 바라보게 하는가. 앞을 보지 못하니 내가 잡아채는 뒤통수가 친지의 것인지, 가족의 것인지, 친구의 것인지도 모르고 매몰차게 당겨 짓밟는 것은 아닌가.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악취에 쫓겨 하늘만 바라보며, 정작 태양, 구름, 별 하나 살피지 못하는 시대에도 도로가에 꽃은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