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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매거진 Jul 15. 2020

진짜 사랑을 위해서.「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다른 관점으로 보는 여성 서사



 영화와 책은 대중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역시나 작품의 중심은 남성에게로 치우쳐있다. 여성은 사랑받거나, 예쁘거나, 어머니거나, 섹시해야만 작품에 등장할 수 있다. 주체적인 존재가 아닌 남성과의 관계 속의 존재다. 우리는 작품에 등장할 수 있는 어떤 요건도 충족시킬 마음이 없고,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싶다. 그렇다고 남성에 억지로 감정이입해 몰입하기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성서사는 많은 여성들의 보편적 문화생활을 위해 절실하다. 더 많은 여성서사를 함께 즐기고, 여성 창작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이 코너를 마련했다. 언제나 중심에서 한 발 밀려난 여성에게 포커스 맞춘다. 현실에서든, 작품에서든 우리는 언제나 여성을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movie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2020.01 개봉
Celine Sciamma 감독



1:1의 관계


 영화는 그림을 소재로, 화가와 뮤즈라는 두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다. 보통, 이 두 가지의 직업이 영화에 등장할 때는 기존 관념에 따라, 화가/그림 그리는 사람/보는 사람/능동적/남성과 뮤즈/그림 당하는 사람/보여지는 사람/수동적/여성으로 이분법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념을 부순다. 그것은 ①행위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기존 남성에게서 여성으로 흘러가는 위압적이고 일방적인 시선이 아니어서 가능한 것이며, ②피행위자가 본인이 수동적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수동적 역할의 거부는 나도 행위자가 될 수 있고, 당신도 피행위자가 될 수 있다는 ‘역할 바꿈’으로서 가능하다. 역할 바꿈이 가능해지면 행위자에게서 피행위자로 흘러가는 일방적인 관계의 의미가 사라지고 비로소 1:1의 관계가 된다. 영화에서는 이를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의 혼재로 설명한다. 엘로이즈는 “당신이 날 볼 때, 난 누구를 보겠어요?”라는 대사를 통해 보여지는 사람에서 보는 사람으로, 마리안느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감독은 두 가지 영화기법을 사용한다.


 먼저, 오버 더 숄더 숏[1]의 부재다. 두 인물이 대화하고 있는 투 숏[2] 장면에서는 그들이 대화 상황에 있다는 것과 인물 간의 연계성에 대해 전달하기 위해 오버 더 숄더 숏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오버 더 숄더 숏이 없다. 따라서 두 인물이 한 그룹으로 느껴지기보다는, 각각 한 인물로 지각된다. 즉, 두 사람 사이의 관계 자체에 집중되기보다, 각 인물의 감정이 오로지 전달된다. 이때, 우리는 직접 그 인물의 상대가 되어 관계에 참여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관조적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당사자로 참여하여 영화를 더 직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 간의 사랑을 관객과 떨어뜨려 놓지 않으려는 감독의 의도가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을 관찰하게 두지 않고, 직접 공감하며 나와 가까운 일이라고 느끼도록, 나아가 내가 직접 참여하며 나의 일이라고 생각하도록 한다.


▲ 오버 더 숄더 숏.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을 서로의 어깨너머로 찍는다. [출처: 영화 <독전>]
▲ 오버 더 숄더 숏의 부재. 각자의 단독 숏. [출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두 번째는 시점 편집[3]의 파괴다. 보통 어떤 사람이 액션(대사)을 하면 그에 대한 리액션(대답)을 보여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연스럽게 관객은 컷의 변화에 따라 시선을 이동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고집스러울 만큼 상대방에게 앵글이 넘어가지 않는다. 한 사람이 대사를 하고, ‘이쯤이면 상대의 표정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의문이 들고, 괜히 조바심이 생길 때까지도 카메라는 넘어가지 않는다. 이는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의 경계를 무너트린다. 리액션이 나와야 할 타이밍에 계속해서 액션을 한 사람의 얼굴을 보여줌으로써, 그 사람이 액션과 리액션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대화는 명확한 흐름이나 방향이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발화가 상대의 발화에 대한 반응일 수도, 상대의 리액션이 그에게는 또 다른 액션일 수도 있다. 상대의 입장에서는 내가 ‘상대’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 시점 편집. 휴대폰을 보는 인물의 숏이 제시된 후, 인물의 시점 숏인 휴대폰의 숏이 이어진다. [출처: 영화 <독전>]
▲ 시점 편집의 파괴. 질문을 던진 후, 상대의 대답이 이어지지만 샷은 넘어가지 않는다. [출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영화는 1:1이라는 큰 주제를 이끌어 가며, 이는 엔딩 장면에서도 이어진다. 두 사람은 같은 미술관에 들른다. 역시나 오버 더 숄더 숏없이 각각의 단독 컷으로 이어지며, 마리안느는 엘로이즈를 쳐다보고 엘로이즈는 다른 쪽을 쳐다보는 컷이 제시된다. 마리안느는 자신이 엘로이즈를 ‘봤고’ 그는 자신을 ‘못 봤다’고 생각한다. 또다시 보는 사람과 보여지는 사람의 역할을 이분법한 것이다. 자신의 보는 행위 안에서만 시선의 방향을 판단한 결과다. 하지만 그는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본인도 그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물과 이동성

 

 영화에는 계속해서 물이 등장한다. 물은 장애물이라 말할 수 있다. 같은 장애물이지만 두 여성이 물을 만났을 때 다른 결과가 도출된다.


 먼저, 마리안느는 배를 타고 엘로이즈가 사는 섬으로 이동한다. 이때 높은 파도에 따라 카메라도 휘청거린다. 사각 앵글[4]을 사용해서 인물이 위기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흔들리는 앵글이 지속되면서 관객의 마음은 점점 더 불안해진다. 그때, 마리안느의 물건이 바다에 빠짐으로써, 물이 장애물 역할을 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마리안느는 수영을 해서 물건을 건져오는데, 이것을 통해 마리안느가 원하는 것(빠진 물건)을 위해 겪어야 할 장애물(물)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수영)을 갖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엘로이즈의 경우 본인이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즉, 무언가를 얻기 위해 가져야 하는 능력을 갖췄는지 모른다는 의미다.  


▲ 사각 앵글. 파도에 따라 실제로 카메라가 흔들린다. [출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그들이 머무는 공간은 섬으로,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는 특징을 가진다. 따라서 바다를 건널 수 있어야만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 즉, 바다를 건널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동성의 확보가 판단된다. 먼저, 마리안느는 배를 타고 수영도 하며 그 섬으로 도착했고, 외부인인 만큼 언제든 떠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이동성을 확보한 인물이다. 하지만 엘로이즈의 경우 본인이 수영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모른다. 즉, 이동성을 가졌는지에 대해 스스로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어머니에 의해 그의 이동이 불가하다 결론 내려지기도 한다. 그의 결혼 이유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고 싶은 거지.”라고 말하는 대사에서, 여성은 결혼에 의해서만 이동할 수 있으며 자립적으로는 이동할 수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이는 개인의 주장이라기보다는 현실이 반영된 생각일 것이라 추측된다.


 엘로이즈가 달리기를 “평생 꿈꿔왔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영같이 감히 넘보지도 못하는 거대한 열망 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의 이동이 달리기였을 것이다. 달리기의 경우, 능력(뛸 수 있다.)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은 물이라는 장애물보다는 훨씬 적은 강도의 장애물(외출 금지와 같은)이 있다. 따라서 그가 달리기하는 것은 이동성에 대해 그가 가지는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갈망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연대의 의미


 영화는 여성들 간의 연대를 생각해보게 한다. 극 중 인물들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연대한다. 연인이나 가족 간의 유대감은 기존 영화에서도 많이 살펴볼 수 있지만, 이 영화가 특이한 점은 두 인물을 중심으로 그다지 특별한 관계를 맺지 않은 주변 인물과도 전부 연대한다는 점이다.


 엘로이즈와 그의 엄마는 결혼이라는 사건을 두고 기본적으로는 대립하는 인물이지만, 서로를 바라보는 태도에 애정이 묻어있다. 그를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 먼 길을 떠나는 엄마에게 어렸을 때처럼 애정을 담아 손 키스로 인사하는 모습 등으로 알 수 있다. 마리안느 또한 그의 엄마를 웃게 하는 사람이다. 짧은 대화 속에서 곁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외로운 삶을 보내는 그의 엄마에게는 위로가 된다. 나아가 두 인물은 집의 하녀와도 연대한다. 하녀가 임신 중절을 시도할 때 그들은 하녀를 위해 약초를 캐고, 먼 길을 동행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는다. 마리안느와 엘로이즈, 하녀가 한 앵글에 잡힐 때는 보통 X축 배치[5]를 활용한다. X축에 배치된 그들은 신분이나 계급을 떠나 아주 평등해 보인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생각해보니, 그들이 전부 여성이어서 가능한 것이었다. 여성이기 때문에 엄마가 미우면서도 공감할 수 있고, 임신 중절이 남 일 같지 않다. 이 사회에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여성은 기본적으로 여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하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고 그래서 연대할 수 있다. 누군가 한 명이라도 남성이었다면 남성이 여성에게 향하는 마음이 그 아무리 선한 것이어도 연대가 아닌 호의나 동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기 때문이다.


▲ 어릴 때처럼 엄마에게 인사하는 엘로이즈.  / ▲ X축 배치. 가로축에 배치된 세 인물이 평등하게 느껴진다. [출처: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연대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여성이 하는 여성에게로의 연대. 1:1의 관계에서 이뤄지는 평등한 연대. 평등한 관계에서는 서로 어떠한 감정들을 공유한다고 해도, 더 큰 감정이 다른 감정을 먹어버리거나, 무시하거나, 오해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과 소유를 헷갈릴 정도로 누군가 힘이 세지도 않으니, 나누는 감정은 분명 오로지 사랑일 것이다. 사랑을 하려는 페미니스트들의 사랑이 순리처럼 여성에게로 향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다름 아닌, 진짜 사랑을 위해서.

 




[각주]


[1] 두 사람이 대화할 때 마주보고 말하는 특성으로 인해 변형된 투 숏. 한 사람의 어깨를 걸치고 그너머로 상대의 얼굴을 잡는 숏이다.

[2] 화면 안에 두 명이 나오는 숏.

[3] 등장인물이 무언가를 바라보는 숏 다음에 그가 바라보는 대상(등장인물의 시점 숏)을 연결해주는 것. [출처: 최현주, 영상문법기초(한울아카데미,2018)]

[4] 카메라를 기울여 촬영한 앵글. 불안한 심리나 위기 상황을 표현할 때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5] 기하학 상의 가로축에 배치하는 것으로, 화면의 깊이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면적인 배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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