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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리매거진 Jul 17. 2020

우리 생각; 페미니스트와 힙찔이

심장이 뛰는 걸 어떡해



 나는 참 안타깝게도(?) 힙합을 좋아한다. 힙합 특유의 둥둥거리는 비트나, 노래 선율과는 달리 글자가 이리저리 붙어 리듬감 있게 들리는 랩이나, 다 때려 부수는 가사를 들으면 어쩔 수 없이 심장이 뛴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내가 좋아하는 힙합은 ‘감성 힙합’을 포함하지 않는다. 차트 상위권에 있는 R&B 힙합 노래들은 30초 이상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걸 들을 때 나는 억지로 느끼한 크림파스타를 먹는 기분을 느낀다. 하여튼,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라 정체화한 후, 힙합에 대한 나의 사랑을 몇 번이나 부정하려 했었지만 결국 무용지물 되었다. ‘나는 힙찔이(?)다.’ 그걸 인정하기는 참 힘든 것이었지만, 이제는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페미니스트와 힙찔이의 자아를 동시에 수행하는 과정에는 꽤 많은 문제가 있다. 그… 그 치욕스러운 가사들… 다 어찌할 것인가. 툭하면 여자 어쩌구 하는 그… 쓰레기 놈들, 어찌할 것인가. 그럴 때는 한국어를 못 알아듣고 싶은 심정이 된다. 비트가 좋아 몸을 좀 들썩여보려 하면, 리듬감이 좋아 훅(HOOK) 좀 흥얼거려보려 하면, 어김없이 나오는 여혐가사들. 그래서 힙합을 좋아하는 데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없고, 그건 나에게 꽤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 글은 여자들에게 힙합 좀 하라는 독려의 글이 되겠다. 들을 음악이 없으니 여자 래퍼들이 좀 많이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도 정말 참여하고 싶었지만, 이미 검증을 끝냈다. 난 재능이 없다.)) 랩과 힙합이 여성들의 음악이 아닐리 없다. 여성들이 잘할 수 있는, 여성들이 해야 하는 음악이다. 왜냐고?


 힙합이라 하면, 옛날 할렘가에서 흑인들이 만들어낸 문화를 말하며 랩, 디제잉, 그라비티, 댄스 브레이크의 네 가지로 분류된다. 그중 랩은 그들이 자신의 사회적 박탈감과 인종차별에 대해 불평하던 것이 멜로디가 붙어 하나의 음악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이다. 따라서 보통 랩 가사는 자신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그 과정에서 나는 무슨 감정을 느꼈고 어떤 대단한 일들을 해냈는지, 얼마나 많은 야망을 이룰 건지 등 자신의 인생에 관해 쓴다. ((얼마나 많은 야망 부분에 여자가 소유물처럼 들어가 있다는 게 문제지만….)) 이때, 거쳐온 인생이 험난하면 험난할수록 듣는 사람에게 더 짜릿함을 선사한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역경을 딛고 성공하는 과정에서, 그 과정이 힘들수록 주인공을 더 열렬히 응원하게 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래서 힙합을 들으면 대부분의 래퍼가 본인의 인생이 얼마나 험난했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잠깐, 그 험난한 인생이란 거, 여성들이 매일 겪는 것 아닌가. 태어날 때부터 여자라고 구박받고, 그러면서 자기 앞가림은 잘하래, 성범죄를 당해도 다 내 탓이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채용도 안돼(실제로 대한석탄공사를 비롯해 여러 기업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합격자를 탈락시킨 사례가 수차례 공론화되었다.), 겨우 회사 들어가도 임금격차는 여전하고(OECD 임금격차 1위.), 애 낳으라고 동네방네 재촉하는데 회사는 육아휴직 쓴다고 눈치 줘, 그러면서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에 맞춰 각종 코르셋은 조여야 해, 애 열심히 키워보려고 하면 민폐고 전문가한테 맡기면 엄마 노릇 못하는 거고, 맘충에 된장녀에 무슨... 하여튼 여성들은 사회의 쓴맛을 모를 수가 없다.


 나는 래퍼가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겪은 것과 느낀 것에 대해 전부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그래서 가끔 도를 넘고 여자 엉덩이 어쩌구 하는 것이다. 그게 본인의 솔직함이니까. 개인의 자유가 타인의 인권을 침해해선 안 되는 것인 줄 모르고. 아니, 어쩌면 아는데도 본인이 하는 게 여성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생각을 못 하거나.)) 그리고 그 솔직함이야말로 이제는 여성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힙합이란 음악은 (여태 래퍼들이 해놓은 것들로 인해) 꼭 행실이 불건전할 것만 같은… 편견 아래 숨어있었지만, 힙합만큼 좋은 음악 장르가 또 없다. 느낀 점을 그대로 온전히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 솔직함을 무기로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장르가 힙합이다. 세상이 거지 같으면 거지 같다고 말하고, 돈이 좋으면 돈이 좋다고 말하는. 그리고 힙합이란 장르가 가진 온갖 좋은 점들은 여성들이 세상에 빼앗겼던 ‘특권’과 일치한다. 솔직함. 자유. 돈. 욕. 뭐 그런 것 전부.


 따라서 나는 여성들이 랩을 통해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해주길 기대한다. 어떤 핍박과 억압 아래에서 어떻게 살아내 왔는지, 어떤 대단한 것들을 이뤄냈는지, 얼마나 많은 야망을 이뤄낼 건지 그들의 삶에 대해 전부 다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여성은 본인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너무나 부족했다. 그들의 삶 하나하나가 가치 있는 것임에도 여성들의 삶은 항상 무시당해왔다. 남성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돈을 수억 원대로 벌 동안에도, 여성들은 그저 입 다물고 있어야 했다. ‘조신하게.’


 최근 림 킴과 씨엘의 활동으로 꽤 많은 여성이 힙합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이제까지 세상에 존재하지만 알려질 수 없었다. 세상의 시선 때문일 수도, 분명한 특정 남성에 의한 억압 때문일 수도 있다. ‘안 해.’라고 명확히 말하고, ‘나는 남자의 나머지’가 아니라 ‘나는 나라고’ 말하는 여성들. 존재했겠지만 보지 못했기에 그리워했다. 그리고 잊고 있었다.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있었는지. 여성들은 이 노래들을 들으며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거부하고, 싫어하고, 화내고, 야망을 품은 나의 모습, 여성의 모습을.


 여성은 이렇게 힙합을 통해 또 한 번 여성을 배운다. 배웠으면 나도 할 수 있다. 내가 누군지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거다. 당연히, 랩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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