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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03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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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Apr 23. 2022

황망한 마음이 들 땐 이불 빨래를 하러 갑니다

편지 일기 05.



나는 안녕하고, 애쓰지 않는 하루들을 보내려고 . 그런데 가끔 얼음땡 놀이를 하다가 술래가 다가오는 바람에 얼음! 하게 되는 순간이 있어.


회사 사람들과 월요일 점심을 먹으며 나누는 - 이야기 있잖아. “주말에 뭐했어요?”라는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럴 때마다 나는 입안에서 단어들을 굴려 대곤 .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어려워하느냐고? 어렵지는 않아. 단지,  진부한 질문들이 뻔하고 싫은 거야.


나는 일요일이면 매주 이불 빨래를 하러 가니까.  이야기를 매주 월요일마다 ‘이불 빨래를 하러 코인 세탁소에 갔습니다.’라고   없지 않겠어? 왠지  말에 너는 속으로 ‘그냥 하면 되지  그렇게 어렵게 사냐.’라고 말했을  같아.


이쯤 되면 왜 이렇게 이불 빨래에 집착하는지 너도 궁금하겠지? 사실 집착,  그런  아니야. 처음엔 그저 자취생의 로망 실현 같은 거였달까.  그런  있잖아. 빨래 돌리면서 만화책 보고, 음악 듣고, 가끔 오는 손님들과 대화 나누는 그러는 사람들. 살짝 그런 로망이라는  있었는데 사실 내가 가는 코인 세탁소에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아.


그래서 작은 소망을 실현하기엔 턱도 없지. 일주일 동안 얼굴 부비고,  부비고, 그리고 우리 집 강아지가 이불에 뒹굴 거리고. 7일이라는 시간의 먼지, 나의 온갖 스트레스가 이불에 모두 들러붙어 있을 텐데 그걸 빨아내고, 건조기가 탈탈 털어내는  쾌감은 내게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해.


빨래가 돌아가는 시간에 나는 가끔 일기를 쓰고, 음악을 듣고, 그렇지 않을  돌아가는 세탁기 소음에  생각을 묻히게 만들 때도 있어. 쉽게 말해 아무 생각도  하는 거지. 생각보다  소음과 덜덜 거리는 좁은 7평짜리 코인 세탁소에서 나는  이불뿐 아니라 온갖 더러운 말들과 찐득거려서 떨어지지 않는  스트레스를 같이 돌려내고 있어.


건조기로 마무리된 이불을 꺼내면 시트형 섬유 유연제에서 옮겨  포근한  라벤더 향기를 잔뜩 들이마셔. 그러면 징글징글했던  일주일이 리셋되는  같아.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시간이 내게는 너무 소중해.


잠잘  빼고 우린 매일을 생각 속에 파묻힌  살아가잖아.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는 건지, 살아가는 대로 생각을 하는 건지도 모를 만큼. 세상의 모두 옹졸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소음보다도  세탁기가 탈탈 거리며 돌아가는  소음이 어쩌면  나은  같아. 가끔 나도  세탁기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세탁소에 가는 사람 말고, 세탁기에 들어가는 빨래가 되고 싶어. 찌든 냄새를 없애고  향기를 뒤집어쓸  있으니까. 머지않아 다가오는 주말에 나는 다시 이불 빨래를 하러 세탁소에  거야. 이번엔 그곳에서  생각을 열렬히 하려고 . 이런 취미를 가진 내가 궁금할 리 없겠지만 나는 네가 많이 알고 싶거든.





2020년 글쓰기 프로젝트 ‘블라인드 라이팅’ 책 <당신이라는 우주>에 실은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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