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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403호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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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쪼바다에 누워 Jun 22. 2022

시간은 우리를 증명해 줄 거예요

편지 일기 08.



내가 요즘 얼마나 제정신이 아니냐면 섬유유연제가 들어가야 할 통에 세제를 넣고, 세제를 넣어야 할 통에 섬유유연제를 넣었다. 아이 리무버인 줄 알았는데 네일 리무버로 눈을 벅벅 닦는 바람에 두 눈을 잃는 줄 알았다. 응급실을 가야 할까 했지만 찬물로 닦아내니 눈이 벌겋기만 하고 이내 괜찮아졌다. 샴푸를 하고 트리트먼트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나 트리트먼트만 두어 번 하기도 했고, 택배를 받아놓고 재활용 상자를 내다 버려야 하는데 상자를 놓고 물건을 내다 버리기도 했다. 집 비밀번호가 생각이 안 나 친구들 단톡방에 (고독사 할지도 모를 때를 대비해서) 올려두었던 비밀번호를 찾아서 누르기도 했다.


물론 저렇게 어이없는 순간이 자주 있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딱 두 번째다. 전 전 직장에 다닐 때 주말마다 있던 지방 사인회, 지방 특판, 평일 회식에 정신 못 차리고 이렇게 달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저런 비슷한 증상이 있었다.


혹시 건망증 같은 건가, 아니면 치매 같은 건가 하고 수면제를 타러 정신과에 간 김에 곁들여 의사 선생님께 여쭤보니 스트레스가 (극)심해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도 걱정된다면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기억력이 정말 좋은 편이라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나는 늙으면 기억력부터 퇴화하고 치매로 자살할 거다 라는 얘기를 종종 했다. 그런데 그게 가까운 시일 내에 진짜로 벌어지면 어쩌지 싶었다. 아직 못 해본 게 너무 많은데??


‘그래도 오늘을 잘 버텼다’ 요즘은 그런 마음으로 자위한다. 오늘을 무사히 잘 넘겼다, 내일이 주어지는 게 오늘처럼 당연한 것은 아니니 적어도 오늘 하루 중 단 1분 만이라도 행복하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사실 이런 마인드 컨트롤을 하기까지 긴긴 인고의 시간을 견뎠…아니, 견뎠다고 하지 말아야지 이건 아직 현재 진행형이니까. (언제 또 마음 뒤집어질지 모름)


최근의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일과 나의 거리다. 본업도 하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는데 (다행인 건 멀티가 가능한 인간 비슷한 걸로 태어났음) 불행한 건 그 두 가지 일 모두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완벽’의 기준은 절대적인 나의 기준치이지만 결국 내가 생각한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해 느끼는 자괴감이 가장 컸다. 잠들 수 없는 이유는 내가 일로 만난 이 사람들에게, 나를 믿고 나와 손을 잡고 가는 이 사람들에게 민폐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 자괴감과 부정 회로가 지독하고 조악한 이유는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극단적으로 내릴 수 있는 결론으로 치닫게 한다는 거다.


“나만 못하는 거네, 난 여기서 도움이 하나도 안 돼. 나만 빠지면 저 팀은 완벽해질 거야.”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내 자존감이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90퍼센트 인정했다. 그럼에도 남은 10퍼센트를 부정할 수 있는 건 나는 지독하게 이타적인 마음으로 만들어진 인간이기 때문이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을 뿌리부터 줄기까지 타고 올라가면 자존감과 연결된 문제겠지만.


폐를 끼친다는 건, 특히 내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사람들이 무조건 달려 나가야 할 시기에 느려 터진 나 때문에 더딘 걸음을 해야 한다는 건 죽어도 싫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일들에 있어서 욕심을 내고, 숨 막힐 듯 해왔지만 불행하게도 이렇다 할 성과 하나 없이 아직 제자리걸음 중이다.


나는 내 일을 사랑하는데, 해왔던 일들이 심지어 즐겁고 신나기까지 했는데 요즘은 그 차원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카피와 만드는 콘텐츠를 볼 때마다 내 발에 걸려 넘어지는 기분이고, 아카이빙해 둔 폴더를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이건 숙제가 아닌데. 이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해낸, 혹은 해낼 일들인데도.


번아웃 일까?라는 생각도 했다. 그럴 수는 있는데 지금 그래선 안 된다는 생각이 더 크다.(뭔 개똥고집인지) 주저하고 멈춰 있을 시간이 내게는 그렇게 많지 않다. 함께 달릴 수 있을 때 두 손 꼭 잡고, 손을 놓지 않고 달리고 싶다.


요즘 가장 의지를 많이 하는 사회 친구이자, 이제 곧 엄마가 될 인생 선배 수인이가 그랬다.


“너는 이 더럽고 치사한 출판계에서 10년을 버텼어. 나는 그것만으로도 네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 20대 중반 1년차 때 너와 30대 중반 10년차 때 너는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얻은 거야. 너를 롤모델로 삼은 후배들이 지금 얼마나 많냐? 그러니까 이제 너 행복한 거 하자. 핍박받고, 남 눈치 보는 거 이제 그만하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랑 네가 더 더 사랑하는 거 하자.”


사랑할 게 많다. 그 마음이 과업 같은 건 아니다. 사랑해야 할 것들이 많아 행복하다는 뜻이다.


발갛게  볼에 오른 홍조 같은 올해  능소화를 보고 느꼈다. 지금은 비록 ‘아직 성장할 시기다’ 라는 합리화로 서툼에 있어 면죄부 같은 것을 받고 있지만 이 아픈 시간들은 결국 나를, 우리를 증명해  거다라고.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것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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