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공대 방문에서 우연히 시작한 여가활동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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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2년차 여름,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에서 실험을 진행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전공의 시절 거의 병원 밖을 잘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포항에 잠시 다녀온 것만 해도 큰 기분전환이 되는 일이었습니다. 돌아오는 길 포항시내 도로 표지판에 적힌 ‘스틸야드’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프로축구팀 포항스틸러스의 홈구장이었습니다. 스틸야드는 국내 최초의 축구전용구장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문득 학창 시절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네이트 포털에 정기적으로 국내축구 관련 칼럼을 연재하던 영국인 존 듀어든의 글이 제 기억에서 오랜만에 소환되었습니다. 그는 포항 기차역에 열차가 도착할 때 안내방송으로 “아시아 챔피언 포항스틸러스의 도시”라고 홍보하자고 아이디어를 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포항이 아시아 프로축구 무대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때였습니다. 포항스틸러스는 프로축구 원년멤버이자 전통의 강호로, 멋진 축구전용구장을 가진 좋은 팀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국내, 해외축구를 가리지 않고 축구 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축구경기장에 직접 관람 (직관)한 경험은 많지 않았습니다. 갑자기,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상식으로는 축구장에는 늘 육상트랙이 함께 있는 것이 정석인 줄 알았습니다. 어린 시절 TV시청으로 기억나는 가장 오래 전의 축구경기는 94년 미국월드컵 본선과,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즈음입니다. 당시 아시아지역 예선 홈경기는 잠실주경기장에서 개최했기 때문에 모든 축구장이 다 그런 줄 알았습니다.
저의 첫 축구경기 직관은 월드컵 직전 대구스타디움에서 열린 2001년 대륙간컵 (컨페더레이션스컵) 대한민국-프랑스 경기였고, 그다음 현장관람은 2002년 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대한민국-미국 경기였습니다.
이 대구스타디움은 축구를 보기에는 썩 좋지 않은 육상트랙이 축구장을 감싸고 있어서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없었습니다. (사진 1) 이후에 의과대학 학창 시절 대구스타디움에 대구FC의 경기를 보러 한 두 번 간 적이 있지만, 선수들이 누가 누구인지 잘 식별이 되지 않아서, 관람할 때 흥미가 상대적으로 떨어졌었습니다.
요즘은 점점 축구전용 경기장이 많이 생기는 추세입니다. 축구전용경기장이라 함은 육상트랙이 없이 축구장만 존재하여, 관중석과 가깝게 디자인된 경기장을 말합니다. 육상 트랙이 없는 만큼, 관중이 선수들에 더 가까이 갈 수가 있게 됩니다. 훨씬 더 경기에 몰입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에 다녀온 직후, 전공의 2년차의 첫 여름휴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인수인계를 끝내고 드디어 일주일간 해방을 맞이하는 짜릿한 순간이었습니다. 일단 당장 휴가를 맞이한 토요일 오후에 무엇을 할지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포항 스틸야드에서 K리그 경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틸야드 방문을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고, 그래서 혼자라도 방문해 볼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계획을 하고 말한 것은 아니었는데, 인수인계가 끝나고 옆에 앉아있던 4년차 안효세 선배에게 혹시 오늘 포항에 축구를 같이 보러 갈 생각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안 선배와는 대학원 실험을 위해 포항공대 가속기연구소에 며칠 전에 함께 다녀온 상황이었습니다. 안 선배는 뜻밖의 제안에 잠시 망설였지만, 기꺼이 동행을 수락했습니다. 바로 며칠 전에 포항가속기연구소에 실험을 위해서 같이 다녀온 터라, 그 지역에 다시 같이 가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았습니다. 안 선배는 아랫 년차가 병원 외 사적인 시간을 선배에게 같이 보내자고 이야기하기가 정말 힘든데 좀 놀랬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전공의들 간의 관계는 정말 복잡합니다. 특히 제가 수련받던 영남대학교 병원은 대체로 같은 모교를 졸업한 의사들이 대체로 전공의 수련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일을 함께하는 동료이자, 같은 대학을 졸업한 선후배, 동기, 친구일 수도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국방의 의무 때문에 대학은 선배이면서 전공의는 후배인 복잡한 관계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일반적인 직장 동료의 관계보다는 조금 더 복잡할 수도 있습니다.
대체로 같은 년차 동기들끼리는 둘 사이에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대체로 잘 지내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면서 전우애가 생깁니다. 가끔 다른 의국을 보면 전공의 동기 사이에 인간적인 관계가 멀어져서 남보다 못한 관계로 지내는 경우를 보기도 했었으나, 저는 전공의 동기끼리 사이가 좋았던 편이라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배 전공의들과의 관계는 편한 관계는 아닙니다. 주로 업무를 지시를 받는 평가를 받는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전공의라는 직업이 특별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직장에서도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 겪는 관계와 유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갑자기 전공의 후배가 같이 여가시간을 보내자고 이야기하는 것이 저희 당시 의국 분위기에서는 흔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놀랬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고년차 전공의도 주말에는 의국 밖에서, 본인의 사적인 시간을 보내고 싶습니다.
안 선배의 차를 타고 대구에서 포항으로 출발하였습니다. 포항제철소 입구에 차를 대고 드디어 스틸야드에 입장하였습니다. 휴가의 첫날이라 신나기도 하였고, 이곳의 열기가 너무 뜨거워 더 흥분되기도 하였습니다. 관중석 맞은편에 굴뚝 위로 화염이 계속 올라오는 것이 이곳의 경기장의 용광로와 같은 열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아름다운 경기장이었습니다. 맞은편에 해병대 장병들이 응원하는 모습도 정말 특색이 있었습니다.
가장 놀라웠던 점은 선수들과 관중석의 거리가 매우 가깝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진 2) 관중들의 응원이 선수들에게 너무 잘 전달이 되는 거리였습니다. 동행한 안 선배는 평소 축구에 큰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여기는 한번 와볼 만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축구선수들에 대해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포항감독인 황선홍 감독과 상대팀으로 방문했던 수원삼성 팀의 서정원 감독과 정대세, 염기훈 이런 유명한 선수들은 알고 있었고, 이런 축구인들을 실제로 보는 것이 신기했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정대세 선수는 당시에 북한국가대표팀에서 뛰고 있어서 더욱더 유명하였고, 이 경기를 끝으로, 일주일 뒤에 일본 프로축구 J리그로 이적을 해서, 그의 K리그 마지막 경기를 우리는 같이 보게 된 것이었습니다.
축구전용경기장에서 축구를 처음 본 저의 소감으로는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선수들이 커 보였습니다. 그리고 경합상황에서 선수들끼리 바디체크가 TV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격렬하고, 심지어 관중석에 소리가 들릴 정도였습니다. 선수들이 매 순간 공을 정성스럽게 다루며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였고, 상대와 경합상황에서는 절대 물러서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프로페셔널한 직업 축구인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저의 업무상황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휴가의 첫날을 포항 스틸야드에서 보내고, 마지막 날은 고민 끝에 울산 문수축구경기장에서 보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울산 문수구장도 축구 전용구장이었고, 방문하게 된다면 생애 두 번째 전용구장 방문이 될 것이었습니다. 울산이 대구에서 방문하기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것도 고려할 점이었습니다. 울산현대도 프로축구 원년멤버로, 예나 지금이나 잘하는 팀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일주일간 전공의의 삶에서 벗어나 푹 쉬다가 곧 복귀할 생각에 우울한 생각이 들었는데, 자유로운 시간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다시 한번 축구장에서 보내고 싶었습니다. 휴가의 시작과 끝을 축구와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사진 3)
어떤 팀을 응원해서 방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경기장에 방문한다면 홈팀을 응원합니다. 홈팀이 승리하면 경기장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관중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공의 시절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은 축구전용경기장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이었습니다. (사진 4) 2012년 개장 당시에, 우리나라 경기장 중 그라운드와 관중석이 가장 가까운 경기장으로 알려졌습니다. 특정 팀을 응원해서 방문한다기보다는, 그냥 그 경기장이 보고 싶었습니다. 저는 축구경기장이 하나의 관광지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대구에서 인천을 방문할 일은 인천공항을 이용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습니다.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서 인천을 다녀오기에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대구에서 인천까지 가는 체감상 거리는, 차로 갈 수 있는 곳 중에서 심리적으로 가장 먼 곳으로 가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2016년도 봄에 우연히 학술대회 출장을 이유로 인천에 방문할 일이 있었습니다. 매해 개최되는 대한정형외과 춘계학술대회는 여러 지방을 순회하여 개최되는데, 2016 춘계학술대회는 마침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서, 학회 일정이 끝난 후 그토록 방문하고 싶었던 인천 축구전용경기장에 방문하였습니다. 학술대회 등의 출장이라는 합당한 이유로 그 지역의 축구경기장도 방문하는 것은 이후의 저의 삶에 저의 소소한 행복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경기장이었습니다. 축구의 중심인 유럽에서 축구를 직관한 적은 없지만, 유럽에 있는 축구장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하였습니다. 선수단이 앉는 벤치가 관중 쪽으로 올라온 것이 특이했고, 관중석과 경기장이 정말 가깝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축구경기 관람과 같은 여가활동이 전공의 또는 대학원 생활에 어떤 영향을 줄까요? 첫째, 축구장에 있는 초록색의 잔디가 주는 눈의 상쾌함은 눈의 피로에 도움이 되고, 정신적인 건강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장기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짧은 두 시간 동안이라도 눈과 정신건강에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행복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특정 팀에 너무 몰입해서 응원하다 보면 결과가 좋지 않을 때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스포츠 여가활동은 적당한 선에서 즐기는 것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K리그 1과 2 팀들의 연고지들은 대부분 큰 도시이고 관광지이기도 합니다. 모르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인 제주도에도 제주유나이티드라는 프로팀이 있습니다. 그리고 축구 경기는 대체로 주말에 경기가 열립니다. 다시 말해서, 쉬는 날에 경기가 열립니다. 주말에 K리그 경기를 관람하고, 그 도시를 즐기고 오는 것은 건강한 여가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덧붙여서, 지역경제 발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도, 기회만 된다면 K리그 경기를 관람하고 그 도시를 즐기고 돌아오곤 합니다. 힘든 전공의 생활과 대학원생활 중간중간에 본인만의 여가활동을 만드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직도 못해봤지만, 꼭 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는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관람해 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습니다.
“포항공대 방문에서 우연히 시작한 K리그 여행기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