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에서 첨단 연구자로, 가슴 두근두근한 대학원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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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 어느 수준의 연구를 해야 할까요? 정답은 '정해진 것이 없다'입니다. 제가 우리나라 모든 대학원의 박사학위 논문 심사절차를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두 번의 박사학위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것은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원생이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먼저 대학원 학칙대로 졸업요건을 먼저 수료해야 합니다. 학칙 기준대로 전공 및 비전공 학점을 이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대학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영어능력을 사설 시험이나 수업을 통해 입증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칙이 정해놓은 수준의 SCI (Science Citation Index)급 저널에 몇 편 이상 논문을 출판해야 합니다.
이런 졸업요건들을 다 채운 사람을 대학원 ‘수료’했다고 합니다. 대학원을 수료한 사람은 아직 학위를 취득한 것이 아닙니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졸업’ 해야 합니다. 졸업하기 위해서는 학위청구논문 심사를 신청하여 통과해야 합니다. 심사는 대체로 2차례 이상 진행되며, 박사학위가 있는 심사위원 5인이 심사를 하여 합격 불합격 판정을 내립니다. 심사위원들께서 전부 합격 판정을 하게 된다면 드디어 박사가 됩니다.
그렇다면 “심사위원들이 그냥 합격판정만 내리면 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닌가?”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간단한 문제이지만, 심사위원 분들이 본인의 이름을 걸고 학위청구논문이 박사학위를 취득할 정도 수준의 연구인가를 판정을 하기 때문에 심사위원의 명예가 달려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간단한 합격판정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석사학위청구논문 심사도 크게 다르지 않고, 절차만 박사학위과정보다 조금 더 간소화되어 있습니다.
전공의 시절, 영남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중에서는 총 4명이 대학원과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학위를 취득하는 목적은 각자의 다 달랐습니다. 어떤 분은 교직에는 뜻이 없지만 학위 취득 자체가 목적인 분이 있었고, 어떤 분은 교직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 학위과정에 있는 분도 있었습니다.
다른 대학의 대학원생 분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학원에 입학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전문의가 되고 나서 느낀 점 입니다만, 군대체복무와 다른 대학원 진학을 통해 전공의 시절보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대학원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대학원 생활이 얼마나 다채롭고 각양각색의 경로로 펼쳐지는지 깨달았습니다.
먼저 대학원 학생이 주도적으로 연구주제 설정, 실험 수행, 논문작성까지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졸업이 쉽지는 않겠지만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를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이라 가장 열정적으로 학위과정을 보낼 수 있는 경우입니다.
반대로 지도교수님의 주도하에 같은 과정을 수행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본인이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는 없겠지만, 경험 많으신 지도교수님의 주도하에 진행이 되는 것이기에 졸업은 꼭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지고 조금 마음 편하게 대학원 생활을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학생도, 지도교수님도 커리큘럼에 별 관심이 없어서 학위과정이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주위에 실제로도 있었고, 졸업하지 못하고 수료만 하고 나오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에 따라 연구를 대하는 태도도 다를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두 가지 목적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첫 번째로 저는 전문의 취득 후, 교직에 한번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대학원에 진학했고, 두 번째는 제대로 된 연구를 한번 내 손으로 시작해서 내손으로 끝내보자는 생각으로 이 과정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시절, 영남대병원 정형외과에서는 척추를 담당하시던 안면환 교수님께서 대학원 학생들의 실험과 논문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당시의 저는 연구에 대한 개념도 잘 없었을 때였습니다. 안 교수님께서 의지를 가지고 이끄셨기에, 대학원 학생들이 학위과정을 무사히 진행할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저도 누군가를 지도하는 입장이 되고 나서야, 누군가를 지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안 교수님께 정말 감사합니다.
대학원 연구의 일환으로, 가끔 영남대병원 정형외과 의국 회의실에서 저명한 연구자의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당시 정형외과 전공의 2년차였던 저는 막내로서 다과 준비를 맡았습니다. 바쁜 일정 중에 행사를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았지만, 이날의 경험은 제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이날의 연사는 포항공대 교수님이셨습니다. 교수님은 포항 가속기연구소의 Synchrotron radiation CT (SRCT) 활용에 대해 발표하셨습니다. (사진 1) 처음에는 이 세미나가 우리 대학원생들의 연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몇 달 후, 이 세미나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지도교수님이신 안 교수님께서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업하며 우리 대학원생들을 위한 연구 계획을 세우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 날의 경험은 제게 특별했습니다. 중학생 시절 포항 가속기연구소를 견학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 거대한 건축물을 보며 느꼈던 경외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중학생의 시선에서는 지구에서 가장 큰 건축물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진 2) 그때 막연히 꿈꾸었던 연구의 세계를 이제는 대학원생으로서 직접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래서 어릴 때 견학을 많이 다녀야 하나 봅니다.
세미나를 통해 실제 연구자들의 설명을 들으며 제 가슴은 다시 한번 뛰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 이곳에서 직접 연구를 수행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이런 최첨단 연구 시설과 기회들을 접하면서, 연구자로서의 꿈과 열정이 더욱 커져갔습니다.
영상학적인 실험에 대한 세팅은 끝났고, 그다음은 동물실험에 쓰일 골대체 물질에 관한 미팅이 있었습니다. 평소 안 교수님과 연구로 친분이 두터우신 영남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김석영 교수님의 도움으로 골대체물질에 관한 실험을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김 교수님께서 만들어 주신 물질들을 이용하여 생체 외 (in vitro) 실험과 생체 내 (in vivo) 실험을 진행하여 결과를 비교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교수님들의 또 다른 인연으로 치과 임플란트 업체인 (주)메가젠임플란트와도 인연이 되었습니다. 임플란트 회사에서는 새로운 임플란트를 개발하면, 대체로 동물실험을 그중에서도 토끼 실험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토끼뼈에 골대체 물질을 이식하여 어떤 반응이 있는지를 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업체에서 실험을 할 때, 대학원생들이 가서 동물 실험 방법론에 대해서 배울 수 있도록 인연을 이어주셨습니다.
안 교수님 지도하에 모든 실험 세팅은 끝났고, 이제 실험을 시작하면 되었습니다. 일단 전공의 대학원생들이 수 명 있었기 때문에, 각자 한 주제를 택해서 논문을 작성해야 하지만, 서로가 서로의 실험을 도와주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동물 실험을 할 때 혼자 수술을 전부 다 할 수도 없고, 이후에 분석을 검체들의 영상분석도 혼자서 다 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협업이 필수였습니다.
당시 대학원생 전공의 중 제가 막내였기에, 주로 가장 단순한 작업들을 맡았습니다. 사실 첫 번째 실험은 졸업 시기를 고려해 보았을 때, 저의 박사논문이 될 수 없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대학원에 입학한 학생이 이 연구를 통해 박사 학위청구논문을 작성해 볼 계획이었습니다. 비록 제 논문을 위한 실험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경험이 향후 제 박사학위 실험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실험에 임했습니다.
첫 실험은 토끼의 두개골에 골대체물질을 이식하는 실험이었습니다. 실험군과 대조군으로 나누어 동그란 구멍에 물질을 이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식 후 계획한 기간이 지나면, 토끼를 안락사하여 포항 가속기연구소의 한 빔을 잠시 빌려서 SRCT를 촬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절개한 조직을 가지고 포항으로 갔습니다. 중학교 이후에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곳의 규모에 놀라서 다시 한번 가슴이 두근두근하였습니다. (사진 3과 4)
시간이 지나고 이 SRCT를 활용한 분석은 저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쓰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최첨단 연구소를 방문하여 우리 팀의 연구를 위한 실험을 수행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저의 가슴은 설렘으로 가득 찼습니다.
정형외과 전공의로서 환자를 돌보고 수술에 참여하는 것도 매우 흥미롭고 배울 점이 많지만, 임상 외적인 연구를 접하는 것도 연구자로서 가슴 뛰는 일이었습니다. 다양한 전문 연구자들과 협업하며 논문 작성과 기술 개발이라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학창 시절 이후, 대학원생이 되어 다시 방문한 이곳에서 저는 연구자로서의 꿈을 키우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제가 학문적으로 궁금해하는 것들을 연구 가설로 세우고,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해 낼 수 있는 독립된 연구자로 성장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훌륭하신 지도교수님 덕분에 이런 멋진 곳에 방문하여 느낀 점들이었습니다.
“의사에서 첨단 연구자로, 가슴 두근두근한 대학원 여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