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부터 시작하는 임상논문 작성 입문기
#대학병원 #전공의 #전공의논문 #의학논문 #임상연구 #논문작성법 #주저자 #제1저자 #교신저자 #공저자 #레지던트 #정형외과전공 #대학병원 #임상연구주제 #의학저널 #전공의논문작성 #SCI논문 #전문의시험
전공의 시절, 논문 작성은 늘 멀게만 느껴지는 고된 작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와 돌아보니, 그 과정들 덕분에 의사과학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가 되기 위해 최소 논문 1편 이상을 출판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림 1) 정형외과뿐만 아니라 여러 임상과에서도 비슷한 규정이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초고의 작성과 원고의 투고가 절대로 끝이 아니라, 원고가 채택 또는 출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글을 쓰는 게 끝이 아니라 그 글이 저널 에디터와 리뷰어의 블라인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전공의들은 학회 규정을 충족하여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 논문을 작성하고 투고하고 출판합니다. 사실은, 논문작성은 전공의들의 주된 업무가 아니라 대체로 교직에 계신 교수님들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직 임용, 승진 및 지도전문의 자격 유지 등에 논문실적이 각 대학 또는 학회의 규정에 맞게 필요합니다.
저는 저년차 전공의 시절에 고년차 전공의 선생님들의 논문 작업을 옆에서 많이 도와드렸습니다. 고년차 선생님이 특정 교수님과 논문 작업을 하고 있으면, 예를 들면 저는 곁에서 표를 만들거나 그림을 만들거나 하는 등의 잡무 등을 도와드렸습니다. 그리고 환자 데이터 자료 정리, 그리고 연구진행을 위해 기관생명윤리위원회에 허가를 받는 서류 작업들도 도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마치 소림사에서 무술을 배우더라도 시작은 마당쓸기이고, 유명한 식당에서 요리를 배우더라도 시작은 설거지와 청소인 것과 유사한 이치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런 실무적인 작업을 허드렛일부터 배우면서 임상 논문은 어떻게 쓰는 것인지 배워나갔습니다. (그림 2)
논문의 저자 또는 저자권 (authorship)은 크게 주저자와 공저자로 나누어집니다. 여기서 주저자는 다시 한번 제1저자 (The First author)와 교신저자 (통신저자, Corresponding author)로 나누어집니다. 제1저자는 말 그대로 출판된 논문의 저자리스트 중 가장 첫 번째에 이름을 올린 사람입니다. 그리고 교신저자는 일반적으로는 저자리스트의 가장 끝에 위치하지만, 위치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교신저자란 뜻은 교신한다는 뜻으로, 저널 에디터나 독자와 교신 또는 통신하는 역할을 합니다. 출판한 논문을 독자가 읽고 질문이 있거나 협업을 하고 싶을 때 저자를 대표하여 교신저자의 이메일을 통해 연락을 합니다.
교직, 대학원 또는 학술상에 지원하는 경우에 지원자의 연구업적을 평가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제1저자와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린 논문만을 인정해 줍니다. 다시 말해서 공저자로 참여한 경우에는 그 역할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실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여러 대학, 연구소, 병원 등에서 소속 연구자에게 논문게재 장려금을 지급할 때도 이런 규정은 비슷합니다. 제1저자와 교신저자에게는 장려금을 지급을 해주지만 공저자에게는 지급하지 않거나 상대적으로 적은 금액만 지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 저자권 (authorship)을 명확히 정해야 합니다.
소속 병원별로 차이는 있으나, 대체로 수련병원에서는 전공의가 논문을 주저자로 출판하든, 공저자로 출판하든 논문게재 장려금은 없습니다. 지급되더라도 그 금액은 미미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논문에 주저자로 참여하든, 공저자로 참여하든 전공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덧 힘든 전공의 수련과정의 절반이 지났습니다. 고년차가 되어가면서 이미 전문의 시험을 치기 위한 정형외과 학회의 자격조건은 충족하였으나, 이제는 공저자를 넘어 제1저자로서 논문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구글스칼라 (Google Scholar, 학술검색 엔진)에 제 이름이 맨 처음 나오면 멋질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출판된 논문의 저자 중에서 제 이름이 이름이 맨 앞에 나온다고 하더라도, 제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갑자기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도 제 이름을 어딘가에 맨 앞에 한번 남겨보고 싶었습니다.
의과대학 학생 때 발로 뛰는 설문 논문을 한번 써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시작만 한다면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수련을 받는 전공의가 논문을 쓴다면 어떤 것부터 써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수술을 직접 하는 ‘대가’가 아닌 이상 뭔가 새로운 치료법이나 수술법을 연구 논문으로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주제로 연구를 시작해봐야 할지 탐색하기 위해, 좋은 저널에는 어떤 주제들이 출판되는지를 분석해 보았습니다.
직접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전문의가 아니더라도 전공의가 쓸 수 있는 주제는 아래와 같은 것들이 있었습니다. 가장 쉽게는 지도교수님이 생각하는 연구주제를 받아서 교수님의 생각한 가설대로 연구를 수행해 보는 것입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신 가설대로, 후향적으로 환자 데이터를 모아서 통계적인 방법론으로 분석하여 결론을 내리는 것입니다.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결론을 내릴 수만 있다고 하더라도 아주 훌륭한 전공의입니다.
그렇다면, 지도교수님 주도적 연구가 아닌 전공의 주도적인 연구를 하려면 어떤 주제를 대상으로 연구 수행해 볼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정답은 없습니다만, 제가 전공의 때 생각해서 논문을 출판했던 방법론을 기준으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먼저, 병원에 축적되어 있는 자료들을 대상으로 후향적 연구 분석을 해보는 것입니다. 이미 병원에는 특정 질병에 대해 임상결과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축적된 임상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것입니다. 단, 이런 경우에는 한 가지 병에 대해 여러 치료법이 있는 논쟁적인 상황이면 더 좋습니다. 왜냐하면, 논쟁적인 이슈는 여러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때문입니다. 또한, 소속 병원의 특성화된 진료 분야와 관련된 환자군을 분석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관찰과 측정의 연구입니다. 임상결과가 아닌 관찰과 측정 연구는 수련받는 전공의의 시각에서 진행하여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합니다. 경험이 부족한 연구자와 경험이 많은 연구자의 관찰과 측정이 일치할지 일치하지 않을지 이런 주제들에 대한 연구입니다.
세 번째는, 병원에 새롭게 도입된 고가의 장비에 대한 연구입니다. 가끔 대학병원에 새로운 장비가 도입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 새로운 장비와 기존 장비를 비교 평가하는 연구가 가능합니다. 새로운 장비는 임상의사의 관점에서 기존 장비보다 우수하거나, 비슷하거나, 혹은 미흡할 것입니다. 이를 객관적인 사실로 입증하는 것이 연구의 핵심입니다.
네 번째는, 다른 분야에서 적용되어 있는 새로운 통계적인 방법론을 우리 분야에 적용해 보는 것입니다. 여기서 통계적인 방법론은 단순히 통계적인 방법론뿐만 아니라, 새로운 분석적인 기법을 말합니다. 당시에는 대중화되지 않았지만, 요즘에 많이 대중화되어 있고 제가 전공을 했던 머신러닝이나 딥러닝과 같은 방법론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지나치기 쉬운 수술 하나라도 전공의의 시각에서 특별한 수술이라고 판단되면 증례보고 (case report)를 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비록 원저 (original article)는 아니지만, 논문으로 인정을 해줍니다. 물론 인정되는 점수가 적긴 하지만, 그래도 단 한 사람의 독자에게라도 학문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이 있다면 작성해서 발표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거지부터 시작하는 임상논문 작성 입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