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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사과학자 류박사 Nov 14. 2024

전공의도 할 수 있다: 주저자 논문 쓰기, 심화편(2)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가 SCI학술지 논문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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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을 살리는 정형외과의 핵심의료 】


의료계에는 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처럼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 분야가 있습니다. 정형외과는 비록 필수의료과는 아니지만, 외상, 종양, 감염 분야에서 생명을 살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살리는 핵심적인 의료를, 아직 분류체계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어떤 분들은 핵심의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형외과에서 핵심의료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약간의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정형외과 내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핵심적인 분과를 꼽자면 외상, 종양, 감염 이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팔다리와 척추에 생기는 외상과 감염은 이국종 교수님과 같은 외과에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정형외과에서 치료합니다. 또한, 골육종과 같은 팔다리에 생기는 종양도 피부과나 다른 외과에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정형외과에서 치료합니다.



【 지역의료의 든든한 버팀목: 외상치료 】


영남대학교병원은 지역 응급의료의 한 축을 담당하는 병원으로, 많은 외상환자들이 응급실을 통해 내원했습니다. 정형외과 ‘질환’ 환자는 수개월에 걸쳐서 병이 악화되기 때문에 요즘은 고속철도 개통과 더불어 수도권 대형병원 쏠림이 심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외상’ 환자는 다릅니다. ‘외상’ 환자는 다른 지역으로 전원을 가는 것도 힘들 뿐만 아니라 이송하다가 환자의 상태가 악화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역에서 치료가 완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병원이 특히 지방소재 대학병원외상환자들을 많이 받아서 책임져 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지역사회의 보석과 같은 존재입니다. 외상환자를 책임지는 전문의들은 대체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응급 상황이면 즉시 수술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수술에 참여하는 모든 의료 인력들이 C-arm이라고 하는 방사능에 노출되며 수술을 진행합니다. 보호장비 (납복)를 착용하긴 하지만 납복의 방사능 차폐율이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병원 입장에서는 외상환자를 수용하는 것이 힘들 수도 있습니다. 응급실을 운영하는 것이 병원 경영 측면에서도 힘들 수도 있고, 의료인력 수급의 측면에서도 힘들 수도 있습니다. 요즘은 의사가 최선을 다해서 치료하더라도 결과가 나빴을 때 의사의 사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외상을 담당하겠다고 하는 전문의들도 점점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런 병원들과 의료인력들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소속기관 특성화 질환 】


제가 수련받던 영남대학교 병원에 슬관절 (무릎)과 하지 외상을 담당하시던 손욱진 교수님은 수술을 정말 많이 하시는 교수님이셨습니다. 전공의가 수련 파트를 순환하다가 슬관절 팀에 오게 되면, 거의 99% 해뜨기 전에 수술방에 들어가서 해가 지고 나오게 됩니다. 해가 지고 나오게 되면 일이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본인의 원래 해야 하는 일 (입원환자 병동인계, 수술 준비 등)들을 시작하는 일과였습니다. 그만큼 수술이 많았고, 전공의는 집에 가기가 힘들었습니다. 


전공의 입장에서 바라본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로, 손 교수님의 여러 수술 중에 가장 잘하시는 수술은 경골 고원부 골절 수술이었습니다. 골절 수술 중에서도 난이도가 꽤 되는 수술이었고, 제한된 시간 내에 훌륭히 뼈를 다시 정복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소속병원에 특성화된 진료분야 또는 질병이 있다면 그것은 논문을 위한 좋은 주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경골 고원부 수술에 수십 번 참여하면서, 이 진단을 주제로 연구를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주제가 있을지, 수술 중에 계속 고민했습니다.



【 경골 고원부 골절의 초기치료 】


응급실로 경골 고원부 골절 환자가 내원을 했다면, 정형외과 전공의가 먼저 해야 하는 일은 X-ray를 확인한 다음, 골절의 형태를 파악하기 위해서 CT (전산화 단층촬영, computed tomography) 촬영을 진행해야 합니다. CT는 뼈의 3차원적인 모양을 파악하기에 좋은 검사이기 때문에, 수술을 위해서 필수적입니다.


초기 치료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관혈적 정복술 및 금속 내고정술 (뼈를 맞추는 수술)을 바로 하는 경우가 있고, 다음은 무릎 주위의 연부조직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일시적으로 부기를 빼기 위해서 외고정술을 임시로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때 연부조직에 대한 처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형외과적 초응급 상황인 구획증후군 (compartment syndrome)으로 악화될 수도 있습니다. 응급실에서 최초로 환자의 상태를 평가하는 교수님께 연락을 드리는 전공의의 판단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손 교수님이 가끔 전공의들에게 불같이 화를 내실 때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경골 고원부 골절에 관한 처치였습니다. 만약 외고정술을 하기로 결정이 났다면, CT촬영을 외고정술을 하고 난 뒤에 진행하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외고정술을 하고 무릎 주위 위아래로 약간 견인을 하면 뼈에 붙어 있는 인대와 같은 연부조직들이 원래 위치로 가려하기 때문에 뼛조각들이 원래 상태에 가깝게 정복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개념이 전문 용어로는 ligamentotaxis라고 합니다. (사진 1)


사진 1. 외고정장치 적용 전(위) 후(아래) CT 영상 비교: 견인을 통한 정복을 보여주는 증례입니다.

                                                 


【 교수님 그 말씀에 근거가 있습니까? 】


몇 번 교수님께 혼나면서 배운 지식이고, 외고정장치로 견인을 하면 일시적으로 뼛조각이 맞추어지는 것을 저도 직관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게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였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았는데, 외고정장치를 적용하고 견인했을 때 뼛조각이 정렬된다는 원리는 잘 알려져 있었지만 ‘얼마나’ 좋아진다는 말이 없었습니다. (사진 2)


저는 이 연구 이후로 임상 논문의 주제를 찾을 때, ‘얼마나’라는 단어를 늘 생각합니다. 좋아진다는 것은 이해했으나 얼마나 좋아졌는지를 입증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그 말씀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떻게 입증할지 방법론을 고민해 보았습니다. 견인을 하면 얼마나 더 좋아지는지를 뼛조각의 ‘얼마나’ 정복되는지를 거리로 입증하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정확히 비교를 하려면 두 그룹으로 나누어서 비교를 하여야 하지만, 외고정장치 및 견인 전 후 CT를 두 번 촬영하지는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간접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은 고민해 보았고, 결론적으로 관찰자 일치도 연구를 계획하였습니다. 제가 독창적으로 방법론을 고안한 것이 아니라, 여러 문헌을 읽어보고 비슷한 방법론을 찾아서 이 연구에 적용해 보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사진 2. 생명을 살리는 도구: 하지 외고정장치. 외상 치료의 첫걸음이자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 관찰자 일치도 연구의 시작 】



외고정술을 하지 않은 CT와 외고정술을 하고 난 뒤에 CT 두 그룹으로 나누어, 골절의 평가를 관찰자 일치도 연구를 통해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해보고 싶었습니다. 이 연구는 동료 전공의들과 임상강사 선배님들이 참여하여 두 그룹의 골절 평가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먼저 영상자료들을 익명화하고 어느 그룹에 속해 있는지 알 수 없게 처리를 한 다음, 참가자 분들께 본인이 생각하는 골절 분류 (AO 분류)를 작성해서 회신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고 난 뒤, 순서를 무작위로 섞어서, 다시 한번 골절 분류를 작성해서 회신 달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관찰자 간, 관찰자 내 일치도에 관한 연구였습니다. 


이 연구가 "Computed tomography of bicondylar tibial plateau fractures after distraction with a bridging external fixation"라는 제목의 연구였습니다. 정형외과 저널 중에서 외상을 주제로 많이 출판을 하는 International Orthopaedics라는 SCI저널에 투고하였고, 채택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습니다. 제가 그때까지 채택된 저널 중 가장 높은 인용지수를 가진 저널이었기에 감격스러웠습니다. 


전공의가 궁금증으로 시작하여 아이디어를 얻고 영상 편집, 관찰자 모집, 원고 작성을 진행하여 출판까지 진행을 한 것이었습니다. 여러 관찰자들의 참여를 이끌어내어 진행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첫 협업 연구 프로젝트였습니다. 아울러 이런 관찰자 일치도라는 주제를 가지고도 좋은 저널에 논문을 출판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었고, 훗날의 저의 딥러닝 연구에도 큰 영향을 준 논문이었습니다.



【 연구의 확장: '얼마나'를 찾아서 】



앞선 연구에서 모집하였던 자료들을 활용하여 관찰자 일치도 연구를 진행해 보았다면 이제는 임상 연구도 진행해보고 싶었습니다. 영상자료 외에도 외래 기록에 어떤 임상결과를 보였는지를 자료를 검토해 보았습니다. 이 연구가 “Staged Treatment of Bicondylar Tibial Plateau Fracture (Schatzker Type V or VI) Using Temporary External Fixator: Correlation between Clinical and Radiological Outcomes”라는 제목의 연구였습니다.


수술을 잘해서 뼈를 잘 맞추면 임상결과가 당연히 좋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얼마나’ 잘 맞추면 ‘얼마나’ 좋아지는 가에 집중하였습니다. 손 교수님과 결론을 상의하면서 수술 시 건측 (반대쪽) 다리의 각도를 참고해서 최대한 비슷하게 맞출수록 또한 경골의 후방 경사각을 건측과 비슷하게 맞출수록 더 좋은 임상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진 3) 정형외과 임상연구는 ‘얼마나’라는 단어에 집중하면 연구주제가 떠오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완성된 논문을 어디에 투고할지 고민을 하였고 ‘Knee Surgery and Related Research’ 즉, 대한슬관절학회에서 발간하는 저널에 투고하기로 하였습니다. 현재는 SCI급 저널의 바로 이전 단계인 ESCI급 저널입니다. 감사히도 채택해 주셔서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사진 3. 수술의 정밀함을 찾아서: 정확한 각도 복원이 환자의 예후를 좌우합니다.



【 마지막 연구: 합병증 치료의 순서도 】



한번 더 이전 연구에서 모집하였던 자료들을 계속 바라보면서 또 다른 주제의 연구를 진행해 볼 수는 없을까 고민해 보았습니다. 다른 병원에서 경골 고원부 골절 수술 후 합병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찾아오시는 환자분들을 보며, 이런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었습니다. 이런 골절은 수술하기가 힘든 골절이고, 손 교수님이 이 분야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가이기 때문에 다양한 케이스들을 분석하여 연구를 진행해 볼 수가 있었습니다.


3차 의료기관 또는 상급종합병원에서는 현재 우리나라 의료에서는 최후의 치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3차 의료기관의 데이터를 모아서, 치료하기 힘든 골절의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독자에게 교훈을 줄 수 있는 연구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손 교수님과 주제를 상의하면서, 교수님께서 치료의 순서도 (flow chart)를 만드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셨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여 자료를 모아서 초고를 작성해 보았습니다. (사진 4) 이 연구가 "Causes and treatment outcomes of revision surgery after open reduction and internal fixation of tibial plateau fractures"라는 제목의 연구였습니다.


논문의 원고 작성이 완료되고, 어디에 투고할지 고민하다가, 관찰자 일치도 연구를 채택해 주었던 International Orthopaedics라는 SCI저널에 투고하였고, 감사히도 채택되었습니다. 인용지수가 꽤 높은 좋은 저널에 두 번 연속으로 출판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고 자신감도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SCI저널에 출판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노력을 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가치 있는 주제를 채택해야 할지에 대한 감이 생겼습니다.


사진 4. 경골 고원부 골절 수술 후 합병증을 치료하기 위한 순서도. 파워포인트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 소중한 임상 데이터, 연구의 씨앗이 되다 】


소중한 환자 데이터를 그냥 병원에 쌓아만 두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독자에게 의미 있는 글로 작성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고 오래 고민하여서 이 시리즈로 3편의 논문을 작성할 수가 있었습니다. 손 교수님께서 수술을 훌륭하게 잘하셨기에, 연구데이터를 분석하여 좋은 저널에 논문을 3편 출판할 수가 있었습니다. 교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연구를 하는 것이 내가 즐거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한다면, 그 연구만 마무리하고 교수님께 ‘저 이 정도 했습니다’고 보여드리고 거기서 멈추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연구가 마무리 되지 않더라도 전공의 팀이 순환하거나 수련이 끝나서 중간에 도망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가 즐거워서 했기 때문에 모아놓은 자료를 소중히 하여 여러 편의 논문을 작성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연구자는 끊임없이 연구주제를 고민하여야 양질의 연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단순히 논문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외래에서 환자분들께 수술 방법을 설명드릴 때, 이 분야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각 치료법의 장단점을 설명해 드릴 수 있었습니다.



【 연구자의 창작활동, 그리고 새로운 시작 】


제가 작성했던 논문들을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당시에 어떤 계기로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어떤 일화들이 있었고, 당시에 저는 어떤 개인사들이 있었는지가 시간이 지나도 생생합니다. 


제가 예술분야의 아티스트들처럼 사람의 희로애락을 주제로 글을 쓰지는 않지만, 논문 작업을 하면서 그 당시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연구활동을 하고 글을 썼는지는 제 기억 속에는 남아있습니다. 다른 연구자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전공의 시절에 참여한 연구들로 총 24편의 논문을 출판하였고, 그중 15편에 주저자 (제1 저자와 교신저자)로 9편은 공저자로 참여하였습니다. 제가 만든 창작물들은 저의 작은 업적이 되어 전문의로서의 저의 커리어를 은은하게 밝혀주고 있습니다.


전공의 시절의 이러한 연구 경험들은 제게 의학이 단순한 술기의 습득이 아닌, 끊임없는 탐구와 혁신의 과정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지금도 임상 현장에서 마주치는 새로운 도전들을 연구의 기회로 삼고 있으며 저의 의료와 제 연구를 읽는 독자의 의료를 같이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호기심에서 시작된 연구가 SCI학술지 논문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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