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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사과학자 류박사 Nov 28. 2024

연구자의 작업실: 파일 정리부터 논문 출판까지

전공의가 들려주는 실전 연구 관리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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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연구 여정의 시작: 체계적인 접근 】


전공의 시절 처음 연구를 시작할 때면 누구나 막막함을 느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정신없이 임상 업무를 하다가 일과가 끝나면 그제서야 연구 작업을 시작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임상논문과 의공학논문을 모두 작성해 본 경험이 있지만, 그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연구의 근본적인 과정은 생각보다 근본적으로 반복 작업이 많았습니다.


자료를 수집하고, 실험 또는 분석을 하고, 논문을 쓰고, 학술대회에 가서 발표를 하는 과정은 거의 유사합니다. 학술대회에 가서 발표를 하는 것은 물론 선택사항이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나와 나의 연구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연구작업들은 일과가 끝나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없다 보니 어제 했던 연구작업들을 잘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파일들을 미리미리 정리해놓지 않으면 시간낭비가 많이 발생합니다. 먼저, 폴더를 만들고 폴더명은 연구주제의 키워드로 합니다. 예를 들면 이전 글에서 소개한 경골 고원부 골절의 CT 진단 일치도에 관한 주제였다면 ‘Plateau CT’라는 폴더를 만듭니다. 이 주제에 관한 모든 파일들은 이 폴더 안에 저장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연구주제 폴더 안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하위 폴더는 거의 비슷합니다. 


연구자들은 보통 여러 연구를 동시에 진행하기 때문에 갑자기 어떤 파일을 찾으려면 정리를 잘해놓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생각하는 효율적인 폴더 관리법에 대해서 소개하겠습니다. (사진 1) 납득이 가는 부분만 취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진 1. 연구 프로젝트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필수 폴더 구조. 효율적인 파일 관리는 성공적인 연구의 기본이 됩니다.



【 1. IRB: 연구의 첫걸음 】


모든 임상 또는 동물연구를 진행하려면 연구자가 속한 기관의 기관윤리심의위원회 (Institutional Review Board, IRB)의 승인을 먼저 받아야 합니다. 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기존 임상자료를 분석하는 후향적 연구는 승인이 비교적 쉽습니다. 반면 새로운 데이터를 수집하는 전향적 연구는 승인 과정이 더 까다롭습니다. 제가 느끼기로는 연구를 많이 하는 병원일수록 IRB 승인을 받는 과정이 더 까다로웠습니다. 그런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대체로 ‘연구지원팀’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 연구를 지원하지는 않고 연구를 감시하는 곳입니다. 대체로 승인을 받는데 후향적 연구는 2~4주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고, 전향적 연구는 그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소속기관에 기관윤리심의위원회가 없는 경우도 가끔 있습니다. 군대체복무할 때 평발의 유병률에 관해 연구를 진행했을 때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공공기관은 연구를 주로 하는 기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 (공용 IRB)에서 승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용 IRB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1항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관 또는 연구자가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지정한 위원회를 말합니다. 공용 IRB는 개별 기관에 윤리위원회가 없는 경우를 위한 대안입니다. 인간대상 연구나 인체유래물 연구 등을 수행할 때, 연구대상자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심의를 제공합니다.


연구자가 연구활동을 하는데 IRB승인과정은 왜 필요할까요? 제가 생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연구대상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연구자의 연구가 윤리적으로 문제없음을 기관이 보장해 주는 절차입니다. 


보통 대학병원에서는 교수님이 이런 과정을 직접 하는 경우는 잘 없고, 임상강사, 전공의, 연구간호사 등이 이런 작업을 수행합니다. 대체로는 한 번만에 승인되는 경우가 잘 없고, 여러 번의 수정작업을 거치기 때문에 나영석 PD님의 예능에서 보는 것처럼 “틀리면 저어기 맨뒤로 가세요”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사진 2) 신진 연구자는 본인 연구를 도와주는 보조인력이 거의 없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이런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모든 연구의 시작은 IRB 승인을 받는 것입니다. 어떤 서류를 어떻게 작성하면 되는지는 담당분께 질문하면 친절하게 알려주긴 하지만, 이 분들도 업무가 바쁘셔서 자세하게 물어보는 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승인을 받으면, 승인서 파일을 해당 폴더에 저장해놓아야 합니다. 이 과정이 시작이지만, 마지막으로 논문을 투고할 때 다시 필요합니다. 


사진 2. “틀리면 저어기 맨뒤로 가세요.” 연구자의 성장통: IRB 심사 과정의 반복.



【 2. 데이터 관리: 연구의 심장 】


임상 연구를 수행 중이면 이 연구에 모집된 환자명단을 MS Excel 파일로 정리를 해 놓아야 합니다. 만약 동물실험 또는 재료를 이용한 실험의 경우에도 각 실험별로 Excel 파일들로 정리를 해 놓아야 합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자료 정리 시에 MS Excel 외의 더 강력한 툴을 아직은 찾지 못하였습니다. Excel과 같은 표 형식의 파일로 자료를 정리해 놓으면, 나중에 통계분석을 하기가 용이합니다. 


예를 들면, 두 가지 치료를 받은 환자군을 후향적으로 분석한다면, Excel의 세로줄(열, column)에는 치료법(H 또는 U)과 같은 조작변인과 임상점수와 같은 종속변인을 기록합니다. 반대로 가로 (행, row)) 한 줄에는 한 케이스 (환자)의 정보가 다 담겨 있어야 합니다. 케이스가 추가되면 그 아래 가로줄에 하나씩 추가를 하면 됩니다. (사진 3) 이 모든 자료들을 ‘자료’라는 폴더에 저장을 해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사진 3. H와 U라는 치료를 받은 그룹 간 정보를 정리한 엑셀 시트. 체계적인 데이터 관리는 성공적인 연구의 시작점입니다.



【 3. 통계분석: 숫자로 말하기 】


처음에는 통계가 정말 무서웠습니다. 의예과 때 배운 의학통계학이 머릿속에서 희미해진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정형외과 연구에 필요한 통계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몇 개의 책을 사서 공부를 했습니다. '닥터 배의 술술 보건의학통계'라는 책이 저에게는 가장 쉽게 설명해 주는 책이었고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간단합니다. 서로 다른 치료법의 효과 차이를 수치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자료 분석은 두 단계로 진행합니다. 먼저 데이터가 정규분포를 따르는지 확인합니다. 그다음 자료들이 서로 독립적인지, 아니면 짝을 이루는지 파악합니다. 짝을 이루었다는 말은 같은 사람의 치료 전후 비교 또는 좌우 다리 비교 이런 개념이고, 독립적이란 말은 서로 다른 사람 사이의 비교라는 말입니다. 대체로는 평균을 비교하는 작업을 많이 합니다.


MS Excel로 정리한 자료들은 통계 분석하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그래서, 통계를 분석하기 위한 자료들과 통계분석의 결과물 모두 Excel로 정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최종적으로 논문에 쓰일 표를 만들 때에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통계에 관한 모든 파일들도 ‘통계’라는 하나의 폴더에 정리를 해놓는 것이 나중에 다시 파일을 열어볼 때 수고를 줄여줄 수 있습니다. 



【 4. 참고문헌: 연구의 뿌리 찾기 】


모든 연구는 갑자기 새로운 것이 거의 없습니다. 연구는 기본적으로 선행 연구를 발전시켜서 약간의 독창성을 추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행 연구들을 잘 찾아서 정리를 해야 합니다. 


연구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가장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선행연구 검색입니다. 비슷한 연구가 이미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된 주제라면, 포기하거나 낮은 인용지수 (Impact factor, IF)의 저널을 목표로 진행을 해보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비록 이미 많은 연구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내 아이디어가 새로운 치료법이거나, 새로운 컨셉을 제시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의미 있는 연구일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찾아보았던 모든 자료들을 하나의 ‘참고문헌’이라는 폴더에 저장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 나아가, 선행연구와 나의 연구와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도 이곳에 정리를 해놓아야 나중에 논문 작업을 할 때, 다시 선행 연구들을 찾는 수고를 줄여줄 수 있습니다.



【 5. 논문 작성: 연구의 결실 】


자료에 대한 통계적 분석이 끝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본문 작성을 시작합니다. 저는 처음 초고를 작성할 때는 MS Excel을 먼저 이용했습니다. 그 이유는 한 줄에 한 문장을 작성하기 때문에 읽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사진 4)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MS word를 최종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논문 투고를 받는 웹페이지들은 대체로 MS word 파일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이 파일로 작성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파일은 덮어쓰기도 좋지만, 많은 변화가 있을 때는 파일명에 날짜를 업데이트하면서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논문을 계속 써가면서 이전에 썼던 문장이 갑자기 필요할 때도 가끔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파일들을 하나의 ‘본문’ 폴더에 저장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후에 영문교정을 진행한다면 그 파일도 이 폴더에 저장하는 것이 논문 작업에 용이합니다. 


사진 4. 연구의 첫 발걸음: 엑셀로 시작하는 논문 작성. 한 줄 한 줄 쌓아가는 연구자의 글짓기가 시작됩니다.



【 6. 시각화: 그림으로 말하기 】


연구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적절한 사진과 그림의 활용입니다. 의학 사진은 몇 가지 기본 원칙이 있습니다. 배경은 깨끗해야 하고, 정면과 측면 사진을 모두 준비해야 합니다. 


그림을 만들 때는 이 연구를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의미가 잘 전달이 될 수 있도록 직관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대체로 MS Powerpoint에 있는 그림 툴을 많이 이용하였습니다. (사진 5) 고차원적인 이미지툴을 이용할 수도 있겠지만, 의학적 의미를 담담하게 전달하는데 그 이상의 툴은 필수적이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툴을 이용하더라도 논문에 쓸 만한 훌륭한 이미지들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된 모든 파일들을 ‘그림’이라는 폴더에 저장해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발표자료를 만들거나 논문을 작성할 때 그림이 필요할 때마다 이 폴더에 와서 찾게 됩니다.



사진 5. 평발 논문에 이용한 파워포인트로 만든 의학 그래프. 단순하지만 강력한 도구로 만드는 연구의 시각화 과정입니다.



【 7. 학술발표: 연구 공유의 장 】


본인 연구의 가치는 본인이 가장 잘 압니다. 본인과 본인의 연구를 알리려면 학술대회에 초록을 제출하여 채택된 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구연 발표나 포스터 발표를 해야 합니다. 학술대회 발표는 연구가 최종적으로 논문으로 출판된 뒤에 발표를 해도 되고, 논문으로 출판되지 않더라도, 자료 분석이 끝났다면 발표자료를 정리하여 발표를 해도 됩니다. 


학술대회에서는 대체로 발표자료를 MS powerpoint로 받습니다. 그래서 위의 챕터에 언급한 대로 그림과 사진을 미리 잘 만들어 놓으면 근사한 발표자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학술대회 발표자료는 단순할수록 좋습니다. 한 슬라이드에는 6~8줄 이하의 텍스트만 넣습니다. 글자 색도 3가지를 넘지 않도록 합니다. 화려한 애니메이션이나 과도한 디자인은 오히려 메시지 전달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발표 관련 자료들은 '발표자료' 폴더에 저장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한번 만들어 놓은 발표자료를 학술대회에 가서 발표를 할 수도 있고, 다른 심포지엄에서 발표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곳에 모아놓는 것이 좋습니다.



【 8. 저널 투고: 마지막 관문 】

 

이제 논문 투고 단계입니다. 저널 투고에 필요한 파일들을 한 곳에 저장합니다. 처음에는 보통 영향력 지수(IF)가 높은 저널에 도전합니다. 비록 채택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차시와 저널명으로 하위 폴더를 순서대로 하나씩 만들어가면서 투고 진행을 합니다. 


저는 하나의 연구를 출판하기 위해 11번 투고 후 거절을 당한 뒤, 12번째에 성공한 경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하위 폴더가 12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사진 6) 많은 연구자 분들이 이런 경우를 비유하기를 "구천을 떠돈다"는 표현을 씁니다. 세상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여러 저널에서 차례대로 심사를 받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런 시간이 많이 걸리는 지루한 심사과정을 겪다 보면, 동시에 여러 저널에 투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저널에 투고하여 심사를 받는 데 대체로 1달 이상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빨리 출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연구 윤리 상으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특정 저널에 투고하여 심사중일 때는 다른 저널에 동시에 투고하면 안 된다는 것은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룰입니다. 물론 이런 룰을 깨뜨린다고 하여 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로 저널 편집자는 채택하지 않을 주제라면 최대한 빨리 거부의사를 밝히고 연구자가 다른 저널에 투고를 할 수 있도록 풀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수 번의 투고 작업을 거치면서, 저널 편집자 중에서 누군가는 저의 연구의 가치를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계속 투고를 진행합니다. 이런 과정들도 하나의 폴더에 담아놓으면 정리하기가 수월합니다. 이런 긴 여정을 거쳐 하나의 완성된 논문이 출판됩니다.


사진 6. 연구자의 인내: 열두 번의 도전 끝에 맺은 결실. 하나의 연구가 빛을 보기까지의 긴 여정을 보여주는 투고 기록들.




“전공의가 들려주는 실전 연구 관리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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