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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사과학자 류박사 Dec 05. 2024

실험동물실에서 만난 작은 생명들에게

전공의 의사과학자가 들려주는 실험동물을 향한 애도와 감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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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좋아하는 연구자 】


어렸을 적, 이웃집 강아지가 낳은 새끼 중 한 마리를 분양받아 키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강아지를 돌본 것은 부모님이셨고, 저는 가끔 산책을 시키거나 귀여워하는 정도만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성인이 된 지금에서야 한 생명을 평생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경험 때문인지,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물에 대한 애정이 큽니다. 혼자서 유튜브를 볼 때도 주로 동물 관련 콘텐츠를 찾게 되고, 고양이와 강아지 관련 채널을 여럿 구독하고 있습니다. 동물을 향한 이러한 마음은 진심입니다.



【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 】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자 하는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진학했습니다. 정형외과 의사가 된 지금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살리는 일보다는, 환자들의 뼈와 근육 건강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처음 꿈꾸었던 것처럼 극적으로 생명을 구하는 일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환자들의 건강한 근골격을 지키는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대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떠올리게 됩니다. (사진 1)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특히 이 부분을 가장 사랑합니다. 이 부분에서 느껴지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사랑이 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참 시가 아름답지 않나요?


사진 1.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 윤동주 시인의 육필원고가 담고 있는 생명에 대한 경외 ⓒ연세대학교 윤동주기념사업회



【 토끼는 무슨 생각을 할까? 】


저는 박사학위논문을 위해 약 20마리의 토끼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in vivo)을 진행했습니다. 골대체 물질의 생체 외(in vitro)와 생체 내 실험이 주제였으며, 특히 골대체 물질이 생체 내에서 어떻게 골 형성을 유도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관련된 실험과 분석을 통해 SCI논문 2편을 출판하고 박사학위논문도 작성할 수 있었습니다.


바쁜 전공의 수련 중에도 매주 시간을 내어 영남대학교병원 실험동물실을 방문하여 토끼들의 몸무게를 측정하고 상처를 소독했습니다. (사진 2) 철창 안의 토끼들을 볼 때마다, 그들은 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했습니다. 8주 후면 생을 마감할 것을 이 친구들은 알고 있을까요? 좁은 철창 안에서 끝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매주 토끼들을 보며 두 가지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매주 잘 생존해주어서 고맙다는 마음과, 8주까지만 버텨준다면 궁극적으로는 안락사를 해야 한다마음이 동시에 들어 복잡했습니다. 이 토끼들은 분명 나를 미워할 텐데... 하지만 이런 생각에 깊이 빠지면 실험을 진행할 수 없었기에, 애써 외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진 2. 학위논문 연구에 참여한 실험동물과의 8주간의 동행. 매주 소독을 하러 가면서 만났었습니다.



【 실험동물을 위한 기도 】


영남대학교병원 실험동물실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실험을 무사히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선생님들께서 동물들의 건강을 세심하게 관리해 주신 덕분이었습니다. 한 번은 살아있는 토끼들을 이동해야 할 일이 있어 그중 한 선생님의 차를 함께 탄 적이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선생님께서는 실험동물실에서 겪으신 여러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중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종교는 없지만, 가끔 종교시설을 찾아가 인간의 실험을 위해 안락사된 동물들을 위해 기도를 드린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종교는 없었지만, 토끼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하면서 비슷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절에 들렀을 때, 저도 실험에 참여했던 토끼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동물실험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애도의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 동물실험에 대한 연구자의 책임과 성찰 】


저는 현대 의학의 발전을 위해 동물실험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적극 동의합니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다만 동물실험을 직접 수행하는 연구자들은 모두 실험동물들에 대한 애도와 감사의 마음을 함께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연구자들은 통계적 방법론을 활용하여 실험에 필요한 동물의 수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는 기관의 동물실험 생명윤리위원회에서도 검토하는 사항이지만, 연구자 스스로가 이러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실험에 임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동물실험에서 '희생'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안락사'라는 표현을 더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 동물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안락사되는 존재들입니다. 인류의 의학 발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동물이 스스로 생명을 바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대 의학의 발전을 위해 동물을 '안락사' 시켰다는 표현이 더 정직하다는 주장에 저 역시 동의합니다



【 토끼들을 보내며 한 약속 】


저는 박사학위 취득을 위해 여러 차례의 실험을 수행하면서 꽤 많은 토끼들을 안락사해야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너무 마음이 불편하여 실험을 중단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늘 무겁고 진지한 마음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 동물들 덕분에 의학박사학위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 토끼들에 대한 고마움과 애도의 마음을 함께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스스로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어 연구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연구책임자가 된다면,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것과 같은 매우 중대한 실험이 아니라면 동물실험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진행했던 실험들은 골대체 물질의 뼈 생성 효과를 연구하는 것이었고, 이는 뼈의 건강을 위한 실험이었습니다. 비록 작지만 인류의 의학 발전에 약간의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수준의 거창한 연구는 아니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 나는 어떤 연구를 할 것인가 】


오랜 고민과 사색 끝에, 저는 동물실험이 필요한 재료공학 연구를 마무리하고 다른 공학적 연구 주제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고민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치열하게 노력한 결과, 어느덧 저는 의료인공지능 분야의 공학박사가 되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의학박사학위도 취득하였습니다.


의학박사과정에서의 동물실험 경험은 제게 깊은 성찰의 기회가 되었고, 이를 통해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연구와 그렇지 않은 연구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전문의로서 독립적인 연구를 진행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동물실험을 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겠지만, 저는 여전히 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동물실험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전공의 의사과학자가 들려주는 실험동물을 향한 애도와 감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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