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과학자를 꿈꾸는 젊은 의사의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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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시절, 저의 설레는 연구활동은 주로 저녁에 시작되었습니다. 정형외과 전공의로서 수술과 병동 업무를 마치고 나면 어김없이 깊은 밤이 찾아왔습니다. 전공의 업무가 피곤함을 견디며 수행해야 하는 수동적인 일이었다면, 연구활동은 능동적인 창작의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밤을 창작의 시간으로 선택하듯, 저의 연구활동 역시 고요한 밤을 벗 삼아 이어져 갔습니다.
당직이 있는 날에는 병원에 머물며 당직 업무와 연구를 병행했고, 당직이 아닌 날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연구활동에 몰두하다 병원 당직실에서 잠이 들곤 했습니다. 집이 차로 20분 거리였지만, 새벽 6시에 시작되는 아침 일과를 놓칠까 두려워 집으로 향하지 못한 날도 많았습니다. 직장에서 자면 누군가 깨워줄 것이라는 안도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과시간 이후의 정형외과 외래 진료실에서 연구하는 시간을 특별히 좋아했습니다. 병원에서는 전공의들에게 개인 연구실이나 업무용 컴퓨터를 따로 제공하지 않았기에, 공용공간인 의국이 아니라면 조용한 외래 진료실이 유일한 대안이었습니다. 연구활동을 위해서는 듀얼 모니터가 필수였는데, 다행히도 외래 진료실에는 이러한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병원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1층과 2층에는 외래 진료실이, 3층에는 수술실이 있으며, 그 위층에는 입원실과 당직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업무시간이 끝나면 1층 외래 진료실은 완전히 비어있는 공간이 됩니다. 매일 밤 연구를 위해 진료실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드리던 저 때문에 병원 경비 담당자분들이 불편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늦은 밤, 텅 빈 병원 로비 한 켠의 정형외과 외래진료실에서 저만의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논문을 읽고, 책을 탐독하며, 음악을 들으면서 생산적인 시간을 보냈습니다. 때로는 연구에 지쳐 당직실까지 갈 기력이 없을 때면 진료 침대에서 잠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가 만든 특별한 '개인 연구실'에서 미래의 진로를 고민하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주체적인 연구를 시도해보자는 마음으로 외래 연구실에서 논문 작성을 시작했습니다. 전공의 신분임에도 SCI 논문에 여러 차례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점차 연구를 취미가 아닌 진지한 진로로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의 수련 과정이 막바지에 접어들수록 미래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져 갔습니다.
저는 의무사관후보생 신분으로서, 수련이 끝나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미필 전공의들은 대체로 수련이 끝남과 동시에 군의관, 공보의 또는 병역판정전담의사 등의 형태로 약 3년 2개월 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합니다. 가끔, 한국계 외국국적자들도 대한민국 수련병원에서 수련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분들은 제외입니다.
2017년 당시에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의사들, 특히 정형외과 전문의들은 거의 대부분 군의관으로 선발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어떤 형태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게 되더라도, 그 3년 2개월의 복무 기간 동안에도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사이버대학을 통한 학위 취득이 될 수도 있고, 야간대학원 진학이 될 수도 있으며, 혹은 학위과정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논문 작업만이라도 지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미래에 대한 고민과 탐색을 이어가던 중, 전문연구요원 (전문연)이라는 특별한 제도가 제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전문연 제도는 국가산업의 육성과 발전, 그리고 경쟁력 향상을 위해 일부 병역자원을 연구인력으로 활용하는 국가적 지원 제도입니다. 이는 물론 군 필요인원 충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시행되며, 당시 제가 지원할 수 있는 기관으로는 KAIST 의과학대학원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문의의 국방의무 수행기간이 3년 2개월인데 반해, 전문연으로서의 복무기간은 학력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학사학위 소지자는 최소 5년,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는 최소 4년이 소요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석사박사통합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였고, 의학박사 학위 취득이 예정되어 있었기에 최소 4년의 복무기간으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 제도에 합격하여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의과대학 입학 이후 공학계열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찾아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과 출신으로서 저에게 KAIST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KAIST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 중심대학이었고, 어린 시절 '카이스트' 드라마를 보며 자란 세대로서 이곳에서 진지하게 연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은 저를 설레게 했습니다.
KAIST 의과학대학원 홈페이지를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열정적으로 연구하시는 훌륭한 교수님들의 면면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의사면허를 소지하신 교수님들의 존재는 저에게 큰 희망을 주었습니다. 정형외과를 전공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특히 제 전공과 연관된 연구분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습니다.
의과학대학원의 많은 연구분야들 중 상당수는 기초의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습니다. 정형외과가 근골격학을 기반으로 하는 학문이기에 근육과 골격에 관한 기초의학 연구도 가능했지만, 저는 동역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정형외과학과 접목시키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었습니다.
다행히도 저와 같은 꿈을 먼저 실현하신 분들이 계셨습니다. KAIST 의과학대학원에서 전문연으로 학위과정을 밟고 계신 의사 선생님들 중에는 정형외과 전문의 선생님도 계셨는데, 그분은 특히 기계공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진행하고 계셨습니다. 정형외과학과 기계공학의 만남이라는 발상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었습니다. 지인의 소개로 그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연구실 지원에 대한 뜻을 전하고 소중한 조언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지원서의 자기소개서와 면학계획서에는 저의 진심을 담았습니다. 전공의 신분으로 이룬 정형외과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이제는 새로운 학문과의 융합에 도전하고 싶다는 열정을 표현했습니다. 연구실적 목록을 정리하면서 그동안 출판했던 24편의 논문들을 하나하나 돌아보았습니다. 각각의 논문에 쏟았던 정성과 노력이 떠올라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전공의 수준에서 이룬 이러한 연구 성과가 합격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며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저의 새로운 도전은 앞으로 어떤 결실을 맺게 될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의사과학자를 꿈꾸는 젊은 의사의 새로운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