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은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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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겨울이 시작될 무렵, 서류전형에 합격하여 드디어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면접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KTX 대전역에 도착한 후 지하철을 타고 월평역에서 내렸습니다. 월평역에서 갑천을 따라 걸으며 마주한 갈대밭이 저를 반겨주었습니다. (사진 1, 좌) 이 길을 앞으로 자주 걷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으며 갈대밭을 지나갔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카이스트교를 지나 대학 정문으로 들어섰습니다. 다리를 건너는 동안 대한민국의 위대한 과학자들의 흉상들과 맨 마지막에 놓인 빈 흉상을 보았습니다. (사진 1, 우) 그 빈자리에는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 과학분야 수상자를 위해 비워두었다는 안내문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이 대학이 노벨 과학분야 수상자 배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카이스트라면 그 목표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내려다본 갈대밭의 모습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고, 이곳 기숙사에 살게 된다면 매일 이곳을 산책할 수 있겠다는 행복한 상상을 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갑천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면서 걸었습니다. 앞으로 최소 4년간 대전시민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면접장소에 도착하기 직전까지 제가 가장 집중했던 준비는 '왜 이곳에 지원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면접이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자신이 누구이며, 해당 기관에 지원한 명확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후의 추가적인 질문들에 대해서는 제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에 맞게 즉흥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기소개와 지원 동기를 말씀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저는 5분 분량의 답변을 다음과 같이 준비했습니다. 현재 정형외과 전문의이자 의학박사 예정자라는 점, 그동안 수행했던 연구들의 내용, 그리고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입학하게 된다면 앞으로 진행하고 싶은 연구 계획들을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전공의 신분으로서 다른 전공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은 연구 성과를 쌓아왔다는 점을 부각하려 했습니다.
면접장이 있는 건물에 도착하여 대기실에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잠시 후 제 이름이 불렸고, 면접장으로 들어섰습니다. 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저는 홀로 한쪽에 앉았고, 맞은편에는 면접관이신 교수님들께서 자리하고 계셨습니다. 그날의 긴장된 분위기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처음 느낀 감정은 의외로 설렘 섞인 반가움이었습니다. 그동안 홈페이지를 통해 연구 업적과 논문들을 꾸준히 살펴보며 존경해왔던 교수님들을 실제로 뵙게 되어 무척 반가웠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들께는 수많은 지원자 중 한 명일 뿐이었겠지만, 저에게는 학문적 귀감이 되어주신 분들이었기에 저만의 특별한 친근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설렘도 잠시, 자기소개와 지원동기를 말씀드린 후부터는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가장 큰 쟁점은 제가 지원한 전공과목인 기계공학 전공과목이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개설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저는 정형외과 의사로서 기계공학을 접목하는 것이 제 학문적 발전은 물론 대한민국 의료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이런 융합연구를 하는 전문가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원을 결심했던 결정적인 계기는 이미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서 학위과정을 밟고 계신 선배님의 존재였습니다. 그분의 도전적인 행보를 보며 저 역시 그러한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선배 의사 선생님께서 이미 전문연구요원으로서 제가 희망하는 과정에 계셨기에, 저는 제 지원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제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매우 비 전형적인 방식으로 지원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대학원생을 선발할 때는 국가나 대학 차원의 장학금 지원이 의과학대학원으로 배정됩니다. 하지만 제가 기계공학을 전공하게 될 경우, 한 학생에 대한 지원금을 의과학대학원과 무관한 단과대학에 할당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더욱이 의과학대학원에서 선발한 학생을 다시 기계공학과로 위탁하는 복잡한 행정적 절차도 필요했습니다. 이는 후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재학생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라 정확성을 보장할 수는 없으나, 분명한 것은 제 지원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개설되지 않은 전공과목에 지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면접 과정에서 제가 쌓아온 연구 업적과 열정을 눈빛으로나마 교수님들께 전달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현재 기계공학과에서 학위과정을 밟고 계신 선생님은 학부에서 이미 공학을 전공하셨다는 점에서 저와는 다른 상황이었습니다. 면접관이신 교수님들께서는 제가 학사가 아닌 박사과정으로 진학하는 만큼, 기본적인 공학적 배경 없이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우려하셨습니다. 저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과학적이고 논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저의 열정과 도전 정신을 보여드리는 데 집중했습니다.
면접을 마친 후, 카이스트에서 전문연구요원으로 근무하고 계시는 대학 선배님들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구로 돌아가는 기차에 오르기 전, 선배님들께서 따뜻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군대체 복무인 전문연구요원은 복무기간이 길어 의사 출신 지원자가 많지 않다는 점을 들어, 큰 이변이 없는 한 합격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저 역시 그 말씀에 힘을 얻어 내년부터의 대전 생활을 꿈꾸며 희망에 부풀어 대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예상을 완전히 빗나간 결과를 받아들게 되었습니다. (사진 2) 불합격 통보를 받은 첫 순간, 저는 '오타인가?'라는 생각으로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습니다. 확신이 서지 않아 제가 지원했던 연구실의 관계자분께 결과를 문의드렸고, 불합격이 사실임을 확인받았습니다. 공학 기초가 없는 상태에서 곧바로 공학 박사과정에 지원한 것이 원인이었으리라 스스로 짐작해 보았습니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큰 충격을 받아 이틀 동안은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항상 원하는 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면 실망감이 크게 찾아옵니다. 이제 저에게 남은 것은 국방부의 선택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군의관, 공중보건의사, 병역판정전담의사라는 세 가지 군 복무 역종분류 중 하나를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정형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면 90% 이상이 군의관으로 선발되는 당시의 추세를 고려하여, 저는 이 시기부터 차선책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군 복무 중에도 병행할 수 있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학위과정 프로그램들을 찾아보았고, 선배님들의 조언대로 대학원 병행을 위해 지역 배치에 유리한 체력 평가 점수를 얻기 위해 적극적으로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대학원 불합격 소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면접관들께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지 못했고, 면접관들의 입장에서는 지원자의 열정만으로는 합격을 결정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탈락을 통해 저는 결정적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모든 지원서에는 납득할 만한 스토리가 담겨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임상연구 실적을 가진 사람이라도, 갑자기 전혀 다른 학문 분야에 도전장을 내밀면 심사하는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저는 연구지원사업 지원서를 작성할 때마다 자신의 배경 학문과 연구 경험이 어떻게 새로운 도전과 연결되는지, 그 서사를 중요하게 다루게 되었습니다. 모든 도전에는 기승전결이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앞으로 저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떤 상황에 처해지더라도 융합의학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을 것입니다. 카이스트에 입학할 수 있는 티켓은 받지 못했지만, 제 의지만큼은 결코 꺾이지 않았습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며, 그 과정에는 실패와 성공이 공존하기 마련입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5년 후, 다른 대학에서 의료인공지능 분야의 공학박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진정으로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릴 것입니다.
"거절은 새로운 기회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