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사과학자 류박사 Dec 26. 2024

나도 박사가 될 수 있을까? 디펜스의 설렘과 두려움

전공의 의학박사가 들려주는 진짜 논문심사 이야기

#박사학위논문 #의학박사 #박사디펜스 #학위논문심사 #박사논문심사 #학위논문 #박사과정 #의대대학원 #의학박사과정 #대학원생활 #디펜스준비 #의학연구자 #의사과학자 #전문연구의사 #연구자성장기 #논문심사후기 #의학연구여정 #융합의학 #논문작성법 #학술연구 #일원배치분산분석 #의사커리어 #의과학자의길



【 의학 박사학위의 마지막 관문 ‘디펜스’ 】


영남대학교 일반대학원 석박사통합과정 6학기 째인 2017년 겨울, 저는 의학박사학위 논문심사 '디펜스'를 신청했습니다. 처음 접한 '디펜스'라는 용어가 너무 생소해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문헌에 따르면 디펜스, 즉 '방어'라는 용어는 지적 명제를 방어하는 역사적·학문적 전통에서 유래했습니다. 이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제를 일반적인 의견이나 기존의 철학적 견해에 도전하는 "제시된 것"으로 보았고, 그렇기에 그 새로운 제시를 방어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디펜스'라는 용어의 기원입니다.


당시 저는 전공의 마지막 년차였으며, 전문의 시험 준비와 함께 며칠 전 다녀온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바람대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정형외과 전문의가 된 후,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최소 4년간의 군 대체복무를 마치고 의사과학자의 길로 나아가고 싶었습니다.



【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디펜스 준비 과정 】


각 대학마다 세부 일정은 다르지만, 박사학위 논문심사(디펜스)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공통적인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우선 박사과정의 여정은 마치 퍼즐을 맞추는 것과 같습니다. 필수 학점 이수, 영어능력 증명, 논문 점수 등 각각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채워나가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학생 본인이 직접 챙겨야 합니다.


박사 수료 후에는 지도교수님과 상의하여 박사학위에 걸맞은 충분한 연구활동을 수행했다는 공감대를 형성해야 합니다. 박사가 되기에 연구가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추가 연구를 진행해야 하므로, 원하는 시기에 졸업하기 위해서는 지도교수님과 수시로 상담하며 연구 진행 상황을 점검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도교수님과 협의하여 학위논문 심사위원을 선정해야 합니다. 심사위원은 박사학위를 소지한 연구자(주로 대학교수)로 구성되며, 같은 의국 교수님 외에 타과 또는 타교 교수님을 최소 한 분 이상 포함해야 합니다. 심사위원 선정과 일정 조율은 학생이 직접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며, 바쁜 일정을 보내시는 다섯 분의 교수님들과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두 차례 이상의 심사 일정을 확정할 수 있었습니다.



【 학위논문 심사의 따뜻한 기억 】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진행하는 심사위원들은 박사과정생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심사위원들은 바쁜 일과 중에도 시간을 내어 심사를 진행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학위논문 첫 장에 서명하고 본인의 이름을 걸어야 하는 만큼 매우 엄격한 심사가 될 수도 있지만, 다행히도 저의 심사위원분들은 긍정적인 태도로 건설적인 심사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대학원 시절 동안 실험과 논문 작성에 최선을 다했기에 무사히 졸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졸업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심사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심사위원들께서는 졸업 전까지 수정 가능한 부분들을 중심으로 개선사항을 제시해 주셨고, 저는 이러한 조언들을 충실히 반영하여 다음 심사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최종 심사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 작은 표본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찾아서 】


심사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지적사항이 있습니다. 실험 초기에 8마리의 토끼로 시작했으나, 계획했던 8주에 도달하기 전 2마리가 사망하여 실험 표본 수가 적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실험동물 모두가 계획했던 기간까지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문제를 피할 수 있었겠지만, 이는 연구자가 제어할 수 없는 변수였습니다. 또한, 골대체 물질을 담았던 실린더가 8주 동안 토끼뼈에 있으면서 부분적으로 부러진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저는 각 토끼의 양쪽 대퇴골과 경골에 골대체 물질을 삽입하여 한 개체당 4개의 실험군으로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또한 분석 방법의 개선안으로, 원통 전체를 분석하는 대신 양끝을 제외한 부분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어 영상의학적 분석을 시행하는 방안을 제시했고, 심사위원들께서는 이를 현실적인 대안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사진 1)


이 모든 과정은 귀중한 학습 기회였습니다. 특히 4개 그룹의 평균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일원배치 분산분석(one-way ANOVA)을 새롭게 학습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통계적 분석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향후 유사한 실험 설계의 통계 분석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사진 1. 연구의 시각화: 파워포인트로 직접 제작한 의학 일러스트. 복잡한 연구 내용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던 작업.



【 드디어 박사가 되던 날, 감사한 마음만 가득했다 】


마침내 저는 많은 선배 박사님들처럼 디펜스를 완료하고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통과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의국의 모든 대학원생 실험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신 안면환 교수님, 골대체 물질 제작과 실험을 가능하게 해주신 김석영 교수님, 마이크로 CT 분석을 도와주신 첨단의료복합단지의 김동규 박사님, 조직학적 분석을 지도해 주신 송인환 교수님, 그리고 조직학 슬라이드와 마이크로 CT 대조 분석에 도움을 준 친구 최창현 전문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이 연구의 핵심이 되어준 실험동물들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하며, 실험동물들을 정성껏 돌보아 주신 김대환 선생님께도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이 분들 외에도 모든 구성원들의 도움으로 저는 연구 가설을 성공적으로 입증할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서 보았던 하얀 머리의 도인 같은 '박사님'이라는 호칭을 30대 중반에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바로 그 '박사님'이 된 것입니다. 이제는 논문에 이름과 학위를 표기할 때 의사임을 나타내는 M.D. 뿐만 아니라, 의사이면서 박사학위 소지자임을 의미하는 M.D., Ph.D. 를 함께 표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순간이 정말 감격스러웠습니다.


사진 2. 어릴 때 상상하던 만화 속 박사님의 이미지.



【 의사에서 연구자로, 새로운 도전의 시작 】




박사학위 논문심사를 성공적으로 마친 후, 저는 이 연구를 단순히 학위논문으로만 남기기에는 아쉽다고 느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이 구글스칼라(Google Scholar)나 펍메드(PubMed)와 같은 논문 검색 엔진을 통해 연구 결과를 찾고 인용하는 것을 고려할 때, 이 연구를 SCI급 학술지에 게재하여 더 많은 연구자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실험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를 생체 내(in vivo)와 생체 외(in vitro) 실험으로 구분하여 정리했고, "Journal of Biomaterials Applications"라는 SCI급 저널에 in vivo와 in vitro로 각각 투고하여 심사 과정을 성공적으로 통과하고 출판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임상 연구가 아닌 기초 실험을 SCI급 저널에 논문으로 처음으로 출판하면서, 새로운 유형의 연구도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 앞으로의 연구가 임상 논문에만 국한되지 않고, 의학과 공학을 접목한 중개의학 분야까지 확장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임상의사를 넘어 의과학 연구자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 박사가 된 후 깨달은 진짜 연구자의 의미 】


어릴 적 만화에서 보았던 백발의 박사님처럼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리라는 기대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박사가 된 지금은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분야조차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 과정에서 이룬 제 연구 성과는 매우 좁은 전문 분야에서 아직 누구도 밝히지 않은 영역에 작은 발자취 하나를 남긴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박사란 자신이 세운 가설을 과학적 방법론으로 독자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 즉 독립적인 연구자로서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요.


박사학위는 끝이 아닌 진정한 연구의 시작점이었습니다. 이 과정은 제게 새로운 관점을 주었고, 앞으로는 임상의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의과학 융합연구를 통해 환자 치료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려 합니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한 걸음씩 차근차근 나아가며 의미 있는 연구를 이어나가겠습니다.



"전공의 의학박사가 들려주는 진짜 논문심사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