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의 첫 실험실 연구 일기
#의학연구 #동물실험 #실험동물 #골재생연구 #골대체물질 #전공의실험 #박사학위 #의학박사과정 #정형외과연구 #실험실일기 #연구자성장기 #의사과학자 #식품의약품안전처 #식약처 #마약류학술연구자 #첨단의료복합단지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마이크로CT #조직공학
전공의 수련과 대학원 과정을 병행하던 시절에 저를 포함하여 영남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중에서는 총 4명의 대학원 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대학원생들의 실험과 논문을 척추를 담당하시던 안면환 교수님께서 책임지고 맡아주셨습니다.
이전 글에서 언급하였던, 포항가속기연구소에서 진행했던 토끼 두개골 골대체물질 실험은 제 학위논문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실험은 의국의 다른 대학원생 선배님의 실험이었고, 저는 경험을 쌓기 위해 도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경험 덕분에 이번 제 박사학위 논문 실험을 원활히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드디어 저희 박사학위 논문을 위한 실험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두개골 말고 토끼 다리뼈, 다시 말해서 대퇴골과 경골에 골대체 물질을 이식하는 실험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전의 두개골 실험은 결손부위가 너무 큰 사이즈라서 골대체물질이 실제 뼈로 대체되는 것을 관찰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구멍이 뚫린 빈 원통 형태의 물질 안에 골대체 물질들을 가루 형태로 채워서 다리뼈에 이식하는 실험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사진 1) 실험을 진행하다 보면 경험이 쌓여서 조금 더 방법론이 진화하게 됩니다.
이 실험은 저의 학위논문을 위한 실험이었기 때문에 제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받기 위한 서류 작업을 준비하였습니다. 임상연구를 위한 윤리위원회 서류를 준비해 본 적은 꽤 있었지만, 동물실험을 위한 서류를 준비해 본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임상연구에 비해 동물실험을 위한 서류 작성은 결론적으로는 동물을 전부 안락사할 예정이기 때문에 조금 더 수월한 감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안락사해야 할 실험동물들이지만, 이 서류를 준비하면서 그래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실험동물을 희생하는 수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과정에 대해 서술을 꼭 했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연구자가 통계적 검정력 분석의 방법론을 이용하여 몇 마리의 동물실험이 필요하다고 예상된다는 서술을 꼭 해야 했었습니다.
동물을 마취시키기 위한 마취제 구매도 직접 진행해야 했습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서, 마취제를 구매하기 위해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식약처)로부터 마약류학술연구자 허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또 처음이라, 이곳저곳에 전화를 하면서 물어보고 서류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실험이 아니라면 살면서 식약처에 전화를 해볼 만한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전화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취제를 구매하기 위해 절차를 밟던 중 알게 된 사실은 마약류 약품들은 금고에 보관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병동 업무를 하면서 어렴풋이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물마취제도 그렇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었습니다. 동물 실험에서 마취제의 보관 및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마취제는 반드시 금고에 보관해야 하는데,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소량의 마취제만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법적으로 금고 구비는 필수였습니다.
제가 이 과정을 거치면서 느낀 점은 실제로 식약처에서 금고 보관 여부를 매일 감시하진 않겠지만, 이는 학자의 양심에 맡기더라도, 절차상에는 문제가 없는지 반드시 확인하겠다는 의지를 확인할 수가 있었습니다. 마약류 관리는 이렇게 엄격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는 흔히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라 더욱 흥미로웠습니다.
이제 실험을 위한 예산 집행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습니다. 동물 구매, 수술 기구, 약품, 금고, 영상 촬영 및 분석 등 실험의 각 단계마다 비용이 발생합니다. 다행히 같은 영남대학교 소속 연구실의 도움으로 일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영남대학교 신소재공학부 김석영 교수님께 골대체 물질을 제공받았고, 영남대학교 해부학교실 송인환 교수님께 조직분석을 무료로 제공받았습니다. 이 모든 도움은 안면환 교수님과의 인연 덕분이었고,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 외의 모든 활동에 발생하는 비용은 제가 부담하면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나중에 모든 학위과정이 끝나고 느낀 사실이지만, 신진 연구자가 연구비가 있었다면 이런 과정들도 연구비로 처리할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하지만, 정부든 대학이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대학병원 수련 중인 전공의에게 연구비를 지원해 줄 리가 만무합니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시작했습니다.
실험의 주 요지는 이미 입증된 골 대체 물질인 수산화아파타이트와 (hydroxyapatite, HA) 베타-트리칼슘포스페이트 (beta-tricalcium phosphate, β-TCP)에 추가적인 조작을 한 물질의 우수성을 체내 (in vivo)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β-TCP에 물유리 (water glass, WG)를 코팅한 물질이 원래 알려진 물질들보다 더 토끼의 체내에서 골 생성이 잘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실험은 총 8 마리 토끼를 대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토끼 무릎에 털을 깎은 다음, 정형외과 전공의가 실제 수술방에서 늘 하던 방식대로 토끼 다리의 소독을 진행하였습니다. 첫 수술의 집도는 안면환 교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범 뒤에 전공의 대학원생들도 수술을 집도하였습니다. 무릎 관절 위아래로 피부 절개를 시행하고, 치과용 드릴을 이용하여 구멍을 만들어서, 골대체 물질을 채운 원통을 삽입한 뒤 수술을 종료하였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매주 토끼들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었고, 몸무게를 쟀습니다. 전공의 업무 중간중간에 잠시 짬을 내어 병원 밖 실험동물실로 가는 길에 친구 전공의들을 만나기도 했습니다. 어디 가냐 했을 때 실험동물실에 간다고 하니까 의아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납니다. 전공의가 실험동물실에 갈 일이 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잘 관찰하면서 토끼들이 잘 생존하기를 기도하였지만, 관찰 도중에 2마리가 사망하였습니다. 총 8주 동안 관찰한 뒤에 안락사를 시킬 예정이었는데, 중간에 사망한 것은 아마도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 같았습니다.
이번 실험 역시 이전 두개골 실험과 마찬가지로 영남대학교병원 내 실험동물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 실험동물실은 매우 훌륭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또한 이 시설을 관리하시는 김대환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들은 전문적으로 동물관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 덕분에 실험을 진행하는데 어려움 없이 마무리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이한 점은 실험동물실의 건물 구조가 입니다. 이 건물은 언덕을 깎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건물의 1층이 실제로는 지하처럼 느껴지는 곳입니다. 실험동물실에서 들었던 이야기인데, 과학적으로 입증하기는 힘들지만 땅에 구멍을 파고 사는 실험쥐들이 다른 대학의 지상 위에 있는 실험동물실 보다도 이곳에서 정말 잘 생존한다는 말씀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 생각에는 이곳의 지하 환경과 선생님들의 세심한 관리 덕분에 실험동물의 생존율이 높은 것 같았습니다. 이런 완벽한 곳에서 여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실험을 진행하게 되어서 정말 감사하였습니다.
예정된 대로 8주 뒤에 실험동물들을 안락사하였습니다. 원래 계획이 영상의학적인 분석과 조직학적인 분석 모두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먼저 영상의학적 분석을 위해서는 지난번과 같이 포항가속기연구소의 SRCT와 다른 곳의 마이크로 CT 등을 고민하였었고, 최종적으로 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에 있는 마이크로 CT를 촬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직학적인 분석은 영남대학교 해부학교실에서 조직학적 분석을 시행하기로 하였습니다.
대구 첨단의료복합단지 (첨복)는 2009년에 첨단의료복합단지 선정을 두고 나의 고향 대구와 충북 오송이 동시에 선정된 의료단지로 전공의 수련 중에 준공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습니다. 새롭게 지은 건물에 새로운 장비들로 실험을 해볼 수 있다면 그 또한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대구 첨복 마이크로 CT촬영을 위해 미팅을 잡고 교수님과 방문하여 회의를 하였습니다. 언제 검체를 들고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잡고, 실제로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 실험을 도와주신 분은 위한 첨복 실험동물센터 김동규 박사님이었습니다. 마이크로 CT촬영을 진행하면서 박사님께 “이 실험이 제 학위 논문을 위한 실험”이라고 말씀드리니 저에게 “박사가 되기 위해서 많이 노력하시는 것 같다”라고 격려 말씀을 해주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촬영 후에 영상의학적 분석을 진행하면서 박사님을 귀찮게 하였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 3)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서는 송인환 교수님 팀에 소속된 연구원 분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제 영상 촬영을 마쳤으니 검체를 현미경 관찰용 조직 슬라이스로 잘라야 합니다. 그리고 현미경 사진으로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자료와 마이크로 CT를 비교하여 비슷한 조직학 사진을 찾는 과정을 추후에 거치게 됩니다. (사진 4) 이렇게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은 끝에 자료 수집이 끝났습니다.
이 긴 과정 중에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었고 그 많은 분들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분들도 학위과정을 그렇게 힘들게 거쳐오셨기에 박사가 되고자 하는 대학원생에게 그런 도움을 주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중한 실험 자료들을 분석하여 박사학위 학위논문 청구심사를 신청하였습니다. 저는 이 시절이 전공의 4년차 후반기였고, 전문의 시험공부와 학위논문청구심사를 동시에 진행하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두 가지 모두를 긴장감을 유지한 채로 최선을 다해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전공의의 첫 실험실 연구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