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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사과학자 류박사 Oct 10. 2024

대학원 수업은 알아서 듣는 것입니다

열정과 인내로 극복하는 의학 연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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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도전: 첫 대학원 수업 】


2015년 3월, 영남대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2년차대학원 1학기 신입생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설렘과 부담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공의 1년차와 달리, 2년차 부터는 수술방에 들어가서 수술을 준비하고 수술보조의로서 수술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수강신청한 과목들의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학기에는 기초공통 과목인 면역학, 전공과목인 성인정형외과학과 척추외과학, 그리고 필수 과목인 연구윤리를 수강 신청했습니다. 석사박사통합과정 수료를 위해서 전공과목 몇 학점 이상과 필수 연구윤리과목 등 수료 요건이 있었기에, 특별한 고민 없이 정해진 커리큘럼에 따라 수강신청을 했습니다.. 


세 번의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깨달은 점은, 대학원생 개개인의 수료나 졸업 요건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인이 직접 챙겨야 합니다. 잘 모를 때는 대학원 행정실에 방문 또는 서면으로 물어보고 졸업하는데 문제가 없는지 자주 확인을 해야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행정실 담당 직원분과 정말 많이 통화하고 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 전공의의 현실: 정해지지 않은 퇴근 시간 】


어떤 수업들은 매주 오후 6시 또는 7시경에 의과대학에서 현장강의로 진행되기도 하였습니다. 일반적인 직장 기준으로는 퇴근 후 수업에 참석할 수 있는 일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정형외과 전공의의 일과가 오후 6시에 딱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2015년 영남대학교 정형외과는 각 연차별로 한 팀으로 두세 분의 교수님께 수련을 받았습니다. 대체로 저년차는 병동을 담당하고 고년차는 수술방을 담당하였습니다. 수술이 약 6시에 끝나면, 이후에 수술 후 환자 회진을 돌고, 전공의가 다 모여서 인계를 헤어지는 일정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수술이 6시에 끝나면 일과는 대략 7~8시쯤 끝나는 일정이었습니다. 



【 수업을 좀 들으러 가도 될까요? 】


대학원 수업이 있던 어떤 하루, 수술실의 시계가 오후 5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10분 후면 대학원 수업이 시작되는데, 수술은 아직 한창이었습니다. 손에는 수술 도구를, 마음에는 무거운 고민을 들고 있었습니다. 대학원 수업에 참석을 해야 정상적인 성적을 받을 수가 있는데, 수업에 참석하려면 수술 중간에 상급자 전공의 또는 상급자 교수님께 말씀드리고 그 상황에서 이탈을 해야 했었습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2024년도의 사회 분위기였으면 6시까지 일과를 마치지 못한 시스템이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일을 줄이자고 모두가 공감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2015년도였습니다. 전공의가 대학원 수업권을 보장해달라고 주장하기가 조금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의국 선배이자 대학원생 선배인 전공의 선생님께 이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나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른 과 전공의에게 대리 출석을 몰래 부탁해 보라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 선배님 또한 본인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 같았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전공의의 졸업은 누구도 보장해주지 않는, 오로지 본인이 해결해야 할 과제였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가 당시에 용기를 내어 수술방에서 “교수님, 저는 대학원 수업이 있어서 나가봐도 될까요?”라고 말을 했다면, 아마도 같은 연차에 다른 전공의가 호출을 받아서 들어왔을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습니다. 예정된 수술이 끝나기 전에 갑자기 인력이 부족해지는 상황은 피해야 했고, 실제로 누군가 휴가를 갈 때도 이런 방식으로 시스템을 유지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아마도 쉽게 일이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 대학원 등록금 】


저는 1학기 입학금과 등록금을 592만 원을 납부를 하였습니다 (사진 1). 월급 2달치보다 조금 모자란 금액을 대학에 지불하고 이 과정에 입학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정당하게 배워야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등록금을 생각하며, 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사진 1. 2015년 대학원 등록금 납부 내역: 전공의의 열정과 투자



심지어 대학원생 학생이 다른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같은 학교법인의 뿌리를 둔 대학병원에서 수련받고 있는 전공의 신분이었습니다. 월급과 비교해 본다면 저렇게 큰 금액을 지불하고 대학원 과정을 수강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전공의의 수업권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니면 누구나 수업을 들을 수 있게, 아예 수업을 저녁 8시에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 의사에게 대학원은 필수가 아닙니다만 】


전공의 중에서 대학원 과정을 입학한 사람이 소수였기 때문에 다수의 대학원을 하지 않는 전공의 입장에서는 왜 대학원에 진학했냐고 오히려 핀잔을 줄 수도 있습니다. 본인 의지로 대학원에 입학한 것은 자유이지만, 그로 인해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 떠넘겨진다면 당연히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동료 간의 관계가 멀어졌을 것 같습니다. 


결국 저는 침묵을 선택했습니다.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생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했고, 결석이나 지각, 심지어 대리출석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저는 그때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이 문제가 학기 내내 반복될 거라고 생각하니 졸업 요건을 문제없이 채울 수 있을지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만약 저년차가 아니라 고년차였으면 문제를 제기했을 수도 있으나, 전공의 저년차 입장에서는 문제점을 발견하고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당시에 쉽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가장 쉬운 방법이었습니다. 



【 의사의 성장 동력: 대학원 과정의 의미 】


의사에게 대학원은 어떤 의미일까요? 현재 대한민국 의료를 세계 수준의 역량으로 끌어올린 가장 큰 두 가지는 가성비 좋은 의료시스템의료인들의 연구 역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만큼 연구역량은 의료를 발전시키는데 필수적입니다. 그 연구 역량을 발전시키는데 대학원 과정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공의 시절 말고 그 이후에 대학원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통한 과학적 연구방법론의 체득은 최대한 일찍 시작하는 것이 연구자의 길로 나아가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젊어서 여러 연구를 접해보아야 더 경험이 쌓여서 좋은 저널에 본인의 연구를 많이 발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가 의료의 발전에도 관심이 있다면 전공의 시절의 학술활동은 장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미래 의학을 위한 제안: 젊은 의사 연구 지원 】


전국의 많은 대학병원에서 수련을 받으면서 동시에 해당 대학의 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전공의들이 상당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학병원에서 모든 전공의의 일과를 6시 전에 마쳐주거나, 최소한 동 대학원에 진학한 전공의 대학원 생들을 현황을 잘 파악하여 그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업무를 다른 전공의로 대체하는 일차원 적인 방법으로는 본질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의 의료환경이 어떻게 바뀔지 쉽게 예측할 수는 없으나, 정부와 대학이 연구하는 의사 또는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기 위해 역량을 쏟고자 한다면 이런 사소한 시스템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치료를 잘하는 의사는 많지만, 치료와 연구 모두 뛰어난 의사는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첫 대학원 첫 학기에는 연구는 고사하고 학점을 취득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한 전공의의 작은 고민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가 우리나라 의료 연구 환경 개선의 시작점이 되면 좋겠습니다.



“열정과 인내로 극복하는 의학 연구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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