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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사과학자 류박사 Sep 26. 2024

전문의를 향한 마지막 여정: 전문의 시험 준비기

그렇게 저는 긴 전공의 시절을 견디고 전문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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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험생으로 돌아가다 】


2017년 12월, 전공의 4년차 막바지에 접어들며 전문의 시험 준비가 시작되었습니다. 의과대학 졸업 후 5년 만에 다시 수험생으로 돌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전문의 시험은 4년간의 전공의 수련을 마친 후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기 위한 국가 공인 시험입니다. 수능 공부와 의사국가고시 이후 오랜만에 다시 수험생이 되는 기분이었죠. 영남대학교병원에서는 각 과 4년차들을 위한 공부 공간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저는 정형외과 전공의 3명과 외과 전공의 1명과 함께 한 공간을 배정받았습니다.


당직용 침대 하나와 책상 4개가 있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의과대학 동기들과 함께여서 그런지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사진 1) 서로 모르는 부분을 물어보고 답해주며, 때로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깊이 있는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함께 식사를 하며 동고동락하는 시간은 힘든 공부 중에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습니다.


사진 1.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던 4년차 당직실 모습. 작은 공간이지만 함께 꿈을 향해 달려가는 동료들과의 추억이 깃든 곳입니다.



【 연구와 공부, 그 미묘한 차이 】


연구와 공부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꽤 다른 영역입니다. 공부가 기존 지식을 머릿속에 저장하는 활동이라면, 연구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창의적인 생산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공의 시절 임상논문을 작성할 때는 정형외과의 넓은 분야 중 아주 작은 주제 하나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습니다. 아직 연구가 덜 된 부분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입증하는 과정이었죠. 반면, 전문의 시험공부는 그와는 조금 다른 접근이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연구했던 특정 분야의 지식에 대해서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해 암기하는 정도면 충분했습니다. 더 이상의 깊은 탐구는 꼭 필요하지 않았죠. 넓은 분야를 상대적으로 얕은 깊이로, 하지만 중요한 것 위주로 암기하는 것이 관건이었습니다.



【 전문의 시험공부, 지식의 융합과 확장 】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제 전문분야 공부가 정말 재미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4년간의 수련 기간 동안 교수님들께서 외래에서 처방하거나 수술실에서 집도하시던 과정들이 어떤 정형외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는지 머릿속에서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과정이 즐거웠던 이유는 단순히 시험을 위한 공부가 아니라, 앞으로 정형외과 전문의로서 실제 임상에서 근거를 가지고 진료와 술기를 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을 쌓는 과정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연구를 통해 깊이를 더하고, 공부를 통해 넓이를 확장하는 이 균형 잡힌 접근이 의학의 발전과 환자 치료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더욱이 이 시기에 저는 전문의 시험공부와 함께 의학박사 학위논문 심사도 동시에 준비해야 했습니다. 공부하는 중간중간 학위논문의 완성도를 높이고, 여러 차례 심사위원 교수님들과 디펜스를 진행해야 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어떻게 두 가지를 병행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잠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전문의 시험공부와 학위논문 관련 업무에 매진했던 것은 분명합니다. 정신없는 나날이었지만, 철저한 시간 관리와 계획 덕분에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을 수 있었습니다.



【 논문점수 전국 1등 】


정형외과 전문의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필수 요건이 있습니다. 대한정형외과 학회나 유관학회에서 구연발표나 포스터 발표를 해야 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논문 점수를 획득해야 합니다. 논문 점수 계산 방식은 꽤 복잡한데, 간단히 말해 한 편당 3점이 부여되고 전공의 저자 수에 따라 점수가 나뉩니다.


저는 전공의 수련 기간 동안 총 14편의 논문을 출판하여 16.4점이라는 점수를 얻었습니다. (사진 2) 의국 지도교수님께서 제 논문점수가 그 해 전국 1등이라고 알려주셨을 때는 정말 뿌듯했습니다. 전문의 국가고시 시험 점수로는 1등과 거리가 멀었지만, 연구 실적으로나마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뻤습니다. 밤낮으로 논문을 쓰느라 고생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사진 2. 정형외과 학회에서 인정받은 논문 14편과 16.4점의 논문 점수. 4년간의 노력이 숫자로 인정받은 순간입니다.



【 호텔에서의 특별한 합숙공부 】


여러분들은 호텔에서 공부를 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전문의 시험이 다가오면서, 우리는 서울 영등포의 한 호텔에 모여 합숙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시험을 약 3일간 치르기 때문에, 미리 상경하여 호텔에서 마지막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 지역 대학병원의 전공의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보를 교환하기도 했습니다.


매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간 동안 공부를 하다 보니 호텔 측에서도 수험생들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도와주셨습니다. 책상과 탁상등을 준비해 주시는 등의 세심한 배려가 있었죠. (사진 3)


사진 3. 서울 호텔에서의 전문의 시험 준비 모습. 도시의 불빛 아래, 미래의 전문의들이 꿈을 향해 밤늦게까지 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일과는 단순했습니다. 호텔 지하 쇼핑몰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은 오로지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가끔 저녁에 맥주 한 잔으로 긴장을 풀기도 했지만, 저는 컨디션 관리를 위해 절제했습니다.


이 시기에 겪은 특별한 경험 중 하나는 서울의 혹독한 추위였습니다. 대구에서만 살아온 저에게 영하 12도의 한파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전문의 1차 시험을 치르기 위해 모든 수험생들이 호텔 로비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그 새벽,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를 맞닥뜨렸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살면서 이 정도 추위에 적응했지만, 당시의 그 놀라운 추위는 아직도 생생합니다.



【 미래를 꿈꾸다 】


전공의 수련 기간 내내 고민했던 것들이 이 공부 기간 동안 더욱 선명해졌습니다. 실용적인 의학 지식을 학습하는 과정이 흥미진진했고, 전문의가 된 후에도 계속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사실 평생 동안 공부가 늘 즐겁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 공부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죠. 하지만 30대에 하는 이 공부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즐거웠습니다. 아마도 의무감에서 하는 공부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을 학습하는 차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시기에 몇 가지 결심을 했고, 이후 수년간 실제로 실행에 옮겼습니다. 먼저,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는 다른 학문을 공부하고 연구하기 위해 또 다른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했습니다. 또한, 군 복무 중에 미국의사국가고시(USMLE) 공부를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미국에서 의료 행위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의학 공부를 더 할수록 더 나은 의료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들을 세우고 실제로 실행에 옮겼기에, 이 시기의 고민과 꿈들이 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추억입니다.


【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하며 】


힘들었던 4년간의 전공의 수련 끝에 저는 전문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의사들에게는 각자 다양한 삶의 길이 있고, 선택한 삶의 가치도 다릅니다. 어떤 이에게는 의사국가고시가, 또 다른 이에게는 전문의 시험이 인생의 마지막 시험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험들은 모두 인생의 한 챕터를 마무리 짓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새로운 챕터가 기다리고 있죠. 저에게 이 공부 기간은 또 다른 공부와 연구의 여정으로 안내해 주는 중간 과정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시기는 제 인생에 정말 필요했던 시간이었고,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고, 지금은 정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지금 제가 환자들을 진료할 때마다, 그 시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여러분도 힘든 시기를 겪고 계신다면, 그 시간들이 여러분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우리 모두 각자의 길에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긴 전공의 시절을 견디고 전문의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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