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종합병원의 핵심은 바이탈과(내과, 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정신건강의학과 등)의 역량입니다. 저와 같이 수술하는 과 입장에서는 이런 생명과 관련된 과의 든든한 지원이 없다면 마음 편히 진료를 할 수가 없습니다.
정형외과 의사로서 저희는 뼈를 어떻게 더 잘 맞추고, 연부조직을 뼈에 어떻게 잘 고정시킬 수 있을지 수술 기법적인 고민을 정말 많이 합니다. 골절 수술에서는 뼈를 고정할 때 어느 위치에 고정하는 것이 더 좋을지, 나사는 어느 위치에 박아야 할지 등을 고민하고, 힘줄 파열 수술에서는 힘줄을 뼈의 어느 위치에 고정할지, 어떤 방법으로 고정할지 등을 고민합니다. 이런 방법론 하나하나가 학술 논문의 주제들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외의 의학 전반적인 고민은 다른 과 선생님들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종합병원의 역량이 높아지려면 각 분야의 든든한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협의진료 체계는 환자 치료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의료를 분업하여 각 분야의 전문가가 자기 분야를 더 발전시키기 위한 취지입니다.
【 전공의, 병원의 숨은 영웅들 】
한편, 전국의 종합병원에서 전공의 선생님들은 병원의 숨은 영웅입니다. 환자분들이 입원하실 때는 전문의 선생님 이름으로 입원하시지만, 실제로 환자분을 전반적으로 돌보는 것은 대부분 전공의 선생님들입니다.
제가 수련을 받던 영남대학교병원에서는 응급실을 통해 내원하는 외상 환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오는 대로 입원시켜 수술을 진행했습니다. 당시에는 전공의 특별법이 없었기 때문에, 일과시간이 끝나도 수술이 끝나지 않으면 귀가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정규 수술 외에도 응급실을 통해 응급 수술이 늘 있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에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수술방에서 나올 수 없을 때가 많았습니다
전공의는 순환하면서 여러 분과의 팀으로 돌아가는데, 어떤 팀은 교수님 한분이 거의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수술과 회진을 진행해서 주말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많았습니다. 이런 열정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까지의 의료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 전공의와 전문의, 같은 길 다른 걸음 】
전공의와 전문의 선생님들은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지만, 때로는 다른 속도로 움직입니다. 전공의 선생님들의 급여는 정해져 있어 무리해서 열심히 일해도 최저시급도 안 되는 박봉의 급여는 변동이 없습니다. 반면 전문의 선생님들은 병원마다 다를 수 있으나, 대체로 대다수의 병원에서는 열심히 할수록 더 많은 성과급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전공의와 전문의 사이에 동상이몽이 발생하게 됩니다.
오직 경제학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전문의 선생님들은 본인의 능력이 되는 한 열심히 환자를 보려고 할 것입니다. 반면 전공의 선생님들은 일과시간을 넘겨가면서까지 일을 열심히 할 직접적인 동기가 부족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의사니까 당연히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일만 해서는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없습니다. 공부도 하고 휴식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쉬지 않고 계속 일을 하다 보면 의료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 종합병원의 톱니바퀴: 전공의의 역할 】
환자 한 분이 외래로 내원하여 검사를 받고, 수술이 결정됩니다. 수술 전 검사를 진행하고, 수술 날짜를 잡습니다. 수술 후에 건강히 퇴원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수술 후에 환자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하나하나의 모든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림 1)
그림 1. 현대 의료의 톱니바퀴: 끊임없이 돌아가는 병원 시스템과 그 중심에 선 의료진들
이런 톱니바퀴와 같은 업무 과정들을 매끄럽게 유지해 주는 데 전공의 선생님들의 역할이 정말 큽니다. 왜냐하면 다른 직역의 분들은 각자의 업무에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수술과 전문의는 수술에 집중하고, 병동 및 외래 간호사는 환자 간호에 집중합니다. 이렇게 각자의 역할에 하나라도 구멍이 나면 환자 돌봄에 문제가 생깁니다.
전공의 선생님들은 각자 능력치보다 120%씩 하면서 일을 합니다. 모든 업무 중에서 자기 환자를 돌보는 것이 1순위입니다.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협진입니다. 대형병원의 큰 존재 가치 중 하나도 타과 협진입니다. 의사 한 명이 할 수 있는 능력치보다, 여러 전문과 의사가 같이 할 수 있는 능력치가 훨씬 크기 때문입니다.
【 협진 체계의 중요성과 도전 】
각 수련병원의 의료커뮤니케이션 즉 의사전달 체계는 조금은 다를 수 있으나 어느 병원이나 유사합니다. 저년차 전공의 또는 간호사가 환자를 직접 돌보며, 어떤 임상적인 변동 상황이 생기면 고년차 전공의에게 연락이 가고 그다음 전문의에게 연락이 갑니다.
협진 체계도 유사합니다. 타과에 협진을 의뢰하면 저년차 전공의가 먼저 협진 상황을 확인하고, 고년차 전공의 또는 전문의에게 보고합니다. 그래서 전문의가 주요 결정을 내리는데, 이 과정이 보통 오전 또는 오후 회진 때 이루어집니다. 여러 의사가 의견을 교환하기 때문에, 이 의사 전달 체계에서 실수가 발생할 가능성이 줄어듭니다.
하지만 전공의는 기본적으로 자기 담당 환자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타과 협진은 어쩔 수 없이 중요도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그래서 회진할 때 한 번 놓치게 되면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환자 치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 고령 환자 치료, 협진의 중요성 】
고령 인구에서는 약한 충격에도 정형외과적인 골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고관절에 골절이 발생하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문헌에 따르면, 대퇴경부 골절 환자 중 수술을 받지 않은 분들의 30일 및 1년 사망률이 수술을 받은 분들보다 약 4배나 높다고 합니다. 이런 근거를 바탕으로 수술을 진행합니다. 하지만, 수술이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더라도 긴장을 놓을 수 없습니다.
이런 환자분들의 수술 후 관리는 정말 힘듭니다. 일단 고령 환자분들은 기본적으로 지병이 많으십니다. 그리고 전신마취 자체의 위험과 수술 중의 출혈로 인해 생체 활력 징후가 악화될 수 있습니다. 수술 후 병동 환자를 담당하는 정형외과 전공의는 긴장감을 가지고 환자를 돌봅니다.
지병이 있는 모든 과에 대체로 협진 의뢰를 합니다. 예를 들면, 정신건강의학적으로도 문제가 있으면 협진을 내기도 합니다. 자살 위험이 있는 환자를 일반병동에 입원시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수술 후 내과적 상태가 악화되어 정형외과에서 환자 돌봄이 무리가 된다고 판단된다면 타과에 전과를 의뢰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고령 환자의 치료에 있어서는 여러 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협진 체계가 원활히 작동할 때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 병원 내 인간관계와 협진의 어려움 】
제가 졸업한 학교와 수련병원은 유기적인 관계가 있다 보니, 여러 동아리 활동 등에서 많은 교수님들과 친분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축구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형, 동생 하던 관계였던 분이 주니어 교수님으로 부임하는 경우도 있어서, 직접 부탁드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형, 안녕하세요. 환자 한 분 좀 부탁드리려 왔습니다."라고 찾아가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의 협진 요청은 의료 현장의 복잡한 역학 관계로 인해 주의가 필요합니다. 해당과 전공의들도 거의 다 대학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인데, 왜 본인과 상의 없이 교수님을 직접 찾아가느냐고 불편해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은 전공의 동기가 "야, 너 왜 나한테 얘기도 없이 우리 교수님한테 갔어?"라고 따지듯 물어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업무의 효율성만 생각했지, 동료의 입장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협진 과정에서는 공식적인 절차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아무리 친분이 있더라도, 병원 내에서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누군가는 언짢아할 수도 있고, 이는 장기적으로 원활한 협진 체계를 해칠 수 있습니다.
환자 입장에서는 수술이 끝난다면 중환자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전문과로 옮겨 치료받을 수 있다면 더 좋습니다. 하지만 의뢰를 받는 과 입장에서는 중환자 한 명이 더 늘어나는 것이 정말 부담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형병원에서는 바이탈과의 역량에 따라 환자를 적극적으로 볼 수 있는 역량도 함께 올라갑니다. 조금 더 도전적인 치료를 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과 간의 갈등이 생길 수 있고, 이를 조율하는 것 또한 중요한 과제입니다. 반대로, 병원에서 바이탈과의 지원이 부족하다면 환자를 적극적으로 받을 수 없고 타 병원으로 전원을 해야 합니다.
【 협진의 중요성과 병원 내 위계 관계 】
대학에서 수익을 많이 내지 못하는 임상과의 존재가치도 바로 협진 때문입니다. 현대 의료에서는 여러 임상과가 동시에 관여하는 다학제 진료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모든 과가 도와줄 수 있는 병원의 시스템이 꼭 필요합니다. 이는 환자에게 최선의 치료를 제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여러 과가 같이 있는 대학병원 또는 종합병원에서는 환자 관련 의뢰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위계 관계가 형성됩니다. 의뢰를 많이 받는 과는 갑의 입장이 되고, 의뢰를 많이 하는 과는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환자 치료를 위한 불가피한 구조이지만, 때로는 과 간의 갈등을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의뢰를 했는데 회신이 늦어지면 상당히 난감합니다. 환자는 외래 날짜에 맞추어 오고, 수술도 날짜에 맞추어 진행되는데, 회신이 늦어지면 진행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도 전공의가 직접 해당과 교수님 또는 전문의에게 찾아가서 업무 처리를 좀 빨리 부탁드리곤 합니다.
【 병원 내 협력과 전문성의 중요성 】
결론적으로는 의뢰하는 부서나 의뢰받는 부서 모두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공생하는 관계입니다. 경중을 따질 수 없이 모두 병원에서 중요한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협진 체계는 환자 치료를 위한 업무상의 구조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조 속에서도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입니다.
각 과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전문가가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환자 처방, 동의서 받기, 상처 소독, 환자 이동, 수술 전 소독, 수술 자세 잡기, 수술 후 드레싱 등 모든 일을 담당하면 정작 중요한 수술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각자 맡은 역할에 집중할 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대학병원과 같은 종합병원의 의료 서비스는 하나의 거대한 협력 시스템입니다. 각 과의 전문의, 전공의, 간호사, 기타 의료진들이 모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의 원활한 소통과 협력, 그리고 각자의 전문성 발휘가 환자의 건강과 직결됩니다. 이러한 시스템을 더욱 발전시키고, 각 전문가가 자신의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앞으로의 의료계가 풀어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