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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사과학자 류박사 Sep 05. 2024

전공의의 첫 소송: 대학병원 복지 개선을 위한 도전기

작은 용기가 만든 큰 변화: 전공의가 경험한 복지 개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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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겨진 보석 같은 대학병원 복지 제도 】


대학병원의 복지 제도는 의료진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숨은 보석과도 같습니다. 출퇴근 교통비 지원부터 생일 축하금, 심지어 부모님 회갑 효도비까지, 복지제도는 직원들의 삶 구석구석을 세심하게 배려합니다. 이런 따뜻한 제도들 속에서 저는 한 가지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10만 원의 효도비를 계기로 시작된, 직장 문화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려는 한 젊은 의사의 도전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인턴 생활을 시작할 때, 병원의 다양하고 풍성한 복지 제도에 놀랐습니다. 출퇴근 교통비 지원, 병원 내 편의 시설 이용 쿠폰, 생일 축하금, 명절 효도비 등 직원들의 삶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혜택들이 많았죠. 이런 제도들은 바쁘고 스트레스 많은 의료진들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좋은 제도들을 더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알고 계시지만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복지 제도가 있지는 않나요?


그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부모님 회갑 효도비'였습니다. 부모님의 환갑을 맞아 자식으로서 효도를 할 때 병원에서 10만 원을 지원해 주는 제도였어요. 얼마나 따뜻한 마음에서 나온 제도인가요? 부모님을 공경하는 우리의 전통을 회사에서도 이어가려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 1)


그림 1. 효도비 지원 제도의 따뜻한 취지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젊은 자녀가 부모님께 선물을 드리는 모습은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세대 간의 사랑과 감사의 순환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이 제도에는 함정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만 60세 생신으로부터 1년 이내에 신청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거든요. 게다가 다른 복지와 달리 자동으로 지급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이 직접 신청해야 했죠. 입사 때 한 번 안내받은 후로는 지속적인 상기도 없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나중에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 바쁜 전공의 생활 속 잊혀진 복지 】


전공의 생활은 정말 바빴습니다. 환자를 돌보고, 수술을 배우고, 논문을 쓰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이었죠.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습니다.


밤늦게까지 병원에 남아 일하는 날도 많았고, 주말에도 당직을 서느라 개인 시간을 갖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입사할 때 들었던 복지 제도는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져 갔습니다.


어느 날 문득 부모님 중 한 분의 회갑이 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아, 맞다! 효도비를 신청해야 했는데...' 하고 총무팀에 달려갔지만, 이미 만 61세 2개월이 지난 후였어요. 안타깝게도 신청 기간이 지나 효도비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나이와 만 나이가 서로 일치하지 않아 혼란스러웠고, 이미 집에서 회갑 잔치를 다 치르고 난 뒤라 시기를 놓친 거죠. 전공의로서 바쁜 일상 속에서 이런 복지를 꼼꼼히 챙기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 동료들과 함께 꿈꾸는 변화 】


이런 일을 겪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혹시 다른 동료들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을까? 주변에 물어보니 놀랍게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꽤 많았습니다. 복지 제도는 있지만, 정작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던 거죠.


더 놀라운 것은 이 문제가 의사직종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간호사, 행정직원, 등 다양한 직종의 친분 있는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많은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분은 "일하느라 바빠서 부모님 생신도 깜빡할 때가 있는데, 이런 복지까지 챙기기는 힘들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학생 시절 학생회장을 맡았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동료들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하는 역할을 가끔 해왔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같은 일을 겪은 직원 분들이 저에게 항의해달라고 부탁했고, 저는 한번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동료들의 응원에 용기를 얻어, 저는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나서기로 했습니다. 비록 저는 졸국 후, 병원을 떠나겠지만, 후배들이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 소통의 벽을 넘어: 첫 법적 도전 】


시간이 날 때마다 총무팀을 찾아가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제안은 간단했습니다. 우리가 입사할 때 부모님의 생년월일을 포함한 개인 정보를 모두 제출했으니, 병원에서 이를 활용해 자동으로 복지를 챙겨줄 수 있지 않냐는 것이었죠.


"엑셀로 간단히 관리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요? 직원들의 복지를 더 적극적으로 챙겨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번은 조심스럽게 질문도 드렸습니다. "입사 시 제출한 부모님 생년월일 정보를 이런 복지에 활용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이 정보는 어떤 용도로 수집하신 건가요?"라고 물어보기도 하였습니다.


병원 측의 답변을 들으며, 이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지난 건에 대해서는 예산이 없어 지급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죠. 그때 든 생각은 '혹시 병원이 직원들이 이 제도를 모르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습니다.


지방 대학병원의 강한 위계질서 속에서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전공의 신분으로 병원을 상대로 공식적인 문제제기를 고려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 되는 결정이었죠. '내가 이렇게 해도 될까?', '혹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밀려왔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선배들도, 동기들도 겪었던 문제를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컸죠. 그러면서도 밤마다 '정형외과 교수님께 불려가 혼나는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자네가 무슨 의도로 이런 소란을 피우는 건가?"라는 질책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죠. 하지만 이런 두려움조차 변화를 위한 열정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날 밤을 고민한 끝에, 저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저는 인생 처음으로 소송을 결심했습니다.


법률 용어들과 씨름하며 소장을 작성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동시에 보람찼습니다. 이것이 단순히 10만 원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직장 문화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하니 힘이 났습니다. 주변의 의아한 시선도 있었지만, 동료들의 지지와 응원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진 1)


사진 1. 첫 소송의 순간: 전자소송 시스템에 기록된 나의 도전. 적은 금액이지만 큰 변화를 꿈꾸며 시작한 여정.



【 예상 밖의 중재자: 소통의 힘 】


소송을 제기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뜻밖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병원 경영진 교수님 중 한 분이셨습니다. 알고 보니 제가 학생회장 시절 알고 지내던 교수님이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 입장을 듣고 싶어 하셨고, 저는 솔직하게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받지 못한 돈이 아쉬운 게 아닙니다. 후배들이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수님은 제 말씀을 경청해 주셨고, 이 문제를 직접 해결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진심 어린 태도에 저는 소송을 취하하였습니다.



【 작은 도전이 만든 긍정적 파장 】


전문의가 되어 병원을 떠난 후, 저는 이 일이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 모르지만, 하지만 분명 어떤 변화가 있었으리라 믿습니다. 때로는 작은 목소리,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들어내기도 하니까요.


이 경험은 제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제안의 용기, 동료들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 그리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중요성을 배웠죠. 또한, 작은 변화가 어떻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도 깨달았습니다. 20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저에게는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 경험을 통한 지속적인 혁신 】


이제 저는 의료 현장에서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존의 불편함에 적당히 적응하는 대신, 항상 개선의 여지를 찾고 있죠. 환자 케어 개선과 의료진들의 근무 환경 개선은 물론이고, 더 효율적인 진료를 위한 전자의무기록(EMR) 시스템 개선 방안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수술실에서는 수술 기구의 개선사항을 지속적으로 제안하여 수술의 정확성과 효율성을 높이려 노력합니다.


더 나아가, 의료 인공지능 연구자로서 저는 항상 의료 현장의 불편함을 인공지능을 활용해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반복적이고 시간 소모적인 업무를 AI로 자동화할 수 있는 방법, 의사의 진단을 보조할 수 있는 AI 시스템 개발 등을 연구하며 의료의 질을 높이고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작은 변화와 연구들이 결국 환자에게 더 나은 의료 서비스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도 이런 숨은 개선점이나 발전이 필요한 제도가 있지는 않나요? 우리 모두가 조금씩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낸다면, 더 나은 직장 문화, 나아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변화는 항상 작은 질문과 관찰에서 시작됩니다. 일상의 불편함을 그저 받아들이지 말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을지 고민해 보세요. 여러분의 작은 도전이 어떤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어낼지, 저는 정말 기대됩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변화의 주체가 될 때, 우리 사회는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직장에도 이런 숨은 개선점이나 발전이 필요한 제도가 있지는 않나요?



"작은 용기가 만든 큰 변화: 전공의가 경험한 복지 개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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