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돌보는 그 이상의 다채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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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의사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신 적 있으신가요? 특히 수련 중인 전공의들의 삶은 어떨까요? 오늘은 제가 경험한 전공의 생활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힘든 순간도 있지만, 그 속에서 성장의 기회를 발견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전공의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전공의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와 관련된 업무이고, 그다음으로 연구 관련 업무, 마지막으로 기타 업무가 있습니다. 정말 수많은 일들이 있지만,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겠네요.
정형외과 전공의로서 제가 경험한 환자 관련 업무는 마치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았습니다. 매 연차마다 새로운 도전과 책임이 기다리고 있었죠.
저년차 때는 주로 수술 전후 환자 돌봄, 응급실 당직, 다른 과와의 협진 등을 담당했습니다. 주로 병동업무를 담당했습니다. 환자분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많았고, 검사 준비부터 교수님과의 회진, 수술 후 절차 예약까지 챙겼습니다.
고년차가 되면 수술 준비와 참여가 주된 업무가 됩니다. 인공관절 수술이라면 어떤 임플란트를 사용할지, 골절 수술이라면 어떤 플레이트나 골수정을 쓸지 교수님과 상의하고 준비합니다. 수술장에서 환자를 수술방에 모셔가고, 마취가 끝나면 수술 포지션을 잡은 다음에 수술을 할 수 있도록 소독을 하고 소독포를 덮는 일을 합니다. 준비가 완료되면 교수님께서 들어오셔서 수술을 시작합니다. 수술이 시작되면 전공의를 포함한 보조의사들은 수술 필드가 잘 보일 수 있도록 연부조직들을 잘 당기고 있거나 팔다리를 잘 고정하고 있는 역할을 합니다. 수술이 끝나면 연부조직 및 상처 봉합, 상처 소독과 덮는 업무 등을 합니다.
이렇게 4년간 차근차근 업무를 수행하면서 전문의로서의 역량을 키워갑니다. 전문의가 되면 본인이 감독자가 되어 다른 초보 의사를 가르칠 수 있는 역량이 길러지게 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달리기를 하듯, 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 성장해 나가는 거죠.
의사라는 직업 외에도 모든 직업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전공의 사이에서도 '일머리' (센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지시받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효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능력을 말하죠.
저년차 때는 성실하고 차분하며 우직한 성격의 전공의가 빠짐없이 일을 잘 해냅니다. 자신의 업무를 꼼꼼히 수행하기만 해도 평균 이상의 능력을 보여주는 셈이죠. 이렇게 4년 동안 성실히 일한다면 훌륭한 전문의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 특별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업무가 돌아가는 큰 그림을 볼 줄 알죠. 새로운 제안을 하기도 하고, 상급자와 교수님의 기분과 상황까지 살펴 일을 처리합니다. 예를 들어, 응급실에 새로운 수술 환자가 왔을 때, 어느 요일 몇 시쯤 수술을 하면 좋을지 환자의 상태, 여러 과의 상황, 우리 과의 사정까지 모두 고려해 보고를 올립니다. 이런 게 바로 일머리입니다.
고년차가 되면 수술 기구를 빠뜨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실력을 인정받습니다. 하지만 센스 있는 친구들은 한 발 더 나아가죠. 수술실에서 집도의가 다음에 무엇을 하려는지 예측하고, 그 부분을 더 잘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이런 능력은 가르치기 힘든 직관의 영역이에요. 수술실 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에 수술이 5개라면, 마취 상황이나 기구 상태를 고려해 가장 효율적인 수술 순서를 짤 수 있는 전공의가 바로 일머리가 있는 친구들이죠.
인턴 시절을 떠올리면 재미있는 추억도 있어요. 가끔 일손이 부족해 수술에 참여하게 될 때면, 늘 부족한 잠과의 싸움이 시작되곤 했죠. 특히 손 수술처럼 앉아서 하는 수술은 정말 힘들었어요. '차라리 서 있는 게 낫겠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졸음과 싸우느라 고생했죠. 한 번은 수술 기구를 잡은 채로 졸다가 교수님께 호되게 혼난 적도 있어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하지만 세월이 흘러 고년차가 되면서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 수술도 내가 배워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면서 수술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시작한 거죠. 어느 순간부터 수술자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성장해 가는 과정이 정말 신기하고 보람찼습니다.
결국 일머리의 핵심은 환자의 건강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상급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수련을 마치고 스스로를 돌아보니, 저는 동기들에 비해 꽤 성실하게 일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일머리는 부족했던 것 같아요. 이런 반성을 통해 전문의가 된 지금도 계속해서 배우고 성장하려 노력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전공의에게는 환자를 돌보는 일 외에도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바로 연구입니다. 각 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최소 논문 1편을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이는 전문의가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기도 하죠.
의학은 5-10년만 지나도 최신 경향이 크게 바뀌는 빠른 학문입니다. 그래서 전공의 시절에 논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써보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나중에 전문의가 되어서도 다른 논문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게 되는 거죠.
여기서 조금 더 학문에 뜻이 있는 사람들은 대학원에 진학해 더 많은 논문을 쓰면서 석사나 박사의 길을 걷기도 합니다. 저 역시 첫 임상논문을 경험하고 나서 연구에 더 큰 관심이 생겼어요. 동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글쓰기에 소질이 있다는 걸 깨달은 저는 결국 일반대학원 석사박사통합과정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진행했던 연구들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전공의의 일상에는 환자 진료와 연구 외에도 다양한 업무가 있습니다. 이런 '기타 업무'는 각 의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의국 생활을 원활하게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희 의국에서는 1년차 당직이 매일 저녁 식사를 주문하는 역할을 맡았어요. 오후 3시경부터 저녁 식사 인원을 파악해 4~5시까지 주문을 마무리해야 했죠. 또한 매일 당직일지를 작성해 그날의 입원, 퇴원, 수술, 응급실 내원 환자 명단 등을 정리했습니다.
의국에는 매년 열리는 특별한 행사들도 있어요. 입국식, 졸국식, 산행, 스승의 날 등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참여하는 것도 전공의의 몫이죠. (사진 1) 당직 전공의를 제외하고는 모든 전공의들이 준비하고 행사에 참여하였습니다. 이 모든 행사들의 철학은 들어가고 나가는 인원들에 대해 축하하고 환송해 주는 그런 행사입니다. 모든 행사 때마다 전문 진행 업체를 섭외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공의들이 이런 업무도 수행합니다.
가끔 우리 의국에서 중소규모의 학회를 개최할 때면 전공의들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집니다. 모든 학회에는 한 분야에 저명한 분들을 초청연자로 모셔와서 강의를 듣습니다. 이런 초청연자들을 동대구역에 모시러 가는 일, 학회 끝나고 회식장소에 교수님들을 모시고 가는 일, 회식이 끝나면 동대구역에 모셔다 드리는 일, 사진 찍는 일 등 거의 하루 종일 행사 진행을 돕습니다.
분기별로 있는 회식도 빼놓을 수 없는 의국 생활의 한 부분이에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모든 전공의가 참석해야 합니다. 회식 때는 전공의가 직접 준비할 일은 카메라를 챙기는 일 외에는 없지만, 자리를 지키며 선후배, 교수님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한 시간이죠.
솔직히 말씀드리면, 때로는 이런 잡다한 업무들이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었어요. '이미 할 일도 많은데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죠. 저년차 전공의 때는 회식을 가기 위해 일을 엄청 빨리 끝내야 하는 부담이 있고 그리고 가끔은 회식이 끝나고 돌아와서 일과시간에 못다 한 문서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들이 의국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리더십, 협동심, 의사소통 능력 등 의사로서 꼭 필요한 능력들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었죠.
여러분도 직장 생활을 하시면서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으실 것 같아요. 당장은 번거롭고 귀찮게 느껴지는 일들이 나중에 보면 우리를 성장시키는 소중한 기회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환자를 돌보는 그 이상의 다채로운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