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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사과학자 류박사 Jul 18. 2024

정형외과 의사의 첫걸음: 100일 당직

청춘의 도전: 정형외과 전공의로의 첫 발걸음

#전공의 #1년차 #막내 #100일당직


【 꿈의 시작, 정형외과 전공의로 】


2014년 3월 1일, 저는 영남대학교병원 정형외과 전공의 1년차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사진 1) 정형외과는 전국적으로 평균 이상의 경쟁률을 보이는 과 중 하나입니다. 이 과의 매력은 척추를 포함한 우리 몸의 팔다리 전체를 가장 전문적으로 다룬다는 점에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를 좋아해서 스포츠 선수들을 환자로 볼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면접에서 저는 학생 시절 국내 학술지에 1저자로 연구를 발표한 경험을 강점으로 말씀드렸습니다. 또한 의국에서 환자로 수술을 받은 경험도 여담으로 나누었죠. 이 면접에서 탈락하게 된다면 3년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국방의 의무 후에도 정형외과에 지원할 수 있었겠지만, 다른 동기들과 함께 전공의 과정을 밟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모교병원은 약 90%가 모교 졸업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환경이어서, 4년간 동기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정형외과 전공의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진 1. 새로운 여정의 시작을 상징하는 정형외과 전공의 당직복. 소속과 이름이 새겨진 이 옷은 의료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책임감을 담고 있습니다.


【 100일 당직, 정형외과 전공의의 성장 일기 】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도 잠시, 곧 '100일 당직'이라는 거대한 도전이 제 앞에 놓였습니다. 100일 당직은 말 그대로 100일 동안 병원을 떠나지 않고 지내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다행히 대학병원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작은 도시와 같았습니다. 숙식은 물론 개인위생까지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었죠.


전공의 1년차의 삶은 수술 참가를 제외한 정형외과의 모든 업무를 혼자 해내야 하는, 말 그대로 '도전의 연속'이었습니다. 회진, 입원 환자 처방과 상처 소독, 응급실과 병동 콜 받기, 수술 전 체크리스트 확인, 수술 일정과 환자 마취 가능 여부 확인, 타과 협진 확인 등 모든 업무를 담당해야 했죠.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건, 전공의 첫 인계를 해준 의국 1년 선배 심범진 형님의 말입니다. "응급실이나 입원 환자를 볼 때 다른 과와 상의할 일이 많을 텐데, 그때 넌 우리 과를 대표해 대화하는 거야." 비록 병원 직원 중에서 가장 막내 직원이지만 과를 대표해야 한다는 사실에 무거운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약 100일이 지나고, 의국에서 공식적으로 100일 당직은 끝났다고 공지가 내려왔습니다. 100일의 여정이 끝나고 처음 집으로 향하는 길, 저는 단순한 의대생에서 책임감 있는 의료인으로, 이론만 알던 일반의에서 특정 전공과목의 실전을 경험한 수련의로 한 단계 성장해 있었습니다. 



【 성장의 시간, 전문가를 향한 여정 】


첫 달, 제게 배정된 입원 환자 수는 하루 평균 50여 명에 달했습니다. 3일에 한 번씩 병동과 응급실 당직을 섰기에, 이론상으로는 3일 중 이틀은 늦은 밤에 잠깐 집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업무가 끝나지 않아 실제로는 외출이 불가능했죠.


제 동기가 당직일 때도, 제가 담당하는 환자의 병동 콜은 시간에 관계없이 직접 받았습니다. 이는 다음 날 오전 회진 때 환자 상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조창우, 박재우 동기들과의 전우애도 있었기에, 서로의 부담을 덜어주려 노력했습니다. (사진 2)


사진 2. 100일 당직의 여정을 함께 시작한 동기들과 함께. 서로를 의지하며 극복해 나갈 것입니다.


3월부터는 또 다른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1년차 3명이 돌아가며 근골격 해부학에 대해 교수님과 의국원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했죠. 업무와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일과가 끝나면 대략 오후 10시에서 자정쯤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새벽까지 4~5 시간 동안 팔, 다리, 척추의 근육과 신경, 정형외과적으로 중요한 사항들을 암기하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 과정은 3월부터 4월 초반까지 매일 계속되었습니다.


이 힘든 시간을 겪으며, 말콤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이 떠올랐습니다. 100일 당직은 단기간에 전문가를 만들기 위한 과정 같았습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니, 100일 동안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을 2400시간 동안 하여 약 24%의 시간을 달성한 셈이었습니다. 


이 집중적인 수련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3월 월급 362만원, 4월 257만원, 5월 349만원을 받았는데, 100일 연속 근무 시간을 고려하면 시간당 급여로 환산했을 때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습니다. 이는 전문성을 키우는 과정에서 감내해야 할 현실이었지만, 동시에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를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환자를 진료하는 실력도 눈에 띄게 향상되었습니다. 의사로서의 사명감과 더 나은 의료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으로 이 시간을 견뎌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기르는 것뿐만 아니라, 인내심과 헌신, 그리고 의료에 대한 열정을 더욱 깊이 키울 수 있었습니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더 강한 의지와 실력을 갖춘 의사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전공의 특별법 시행으로 근무 환경이 개선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변화였고, 앞으로 더 나은 의료 환경에서 젊은 의사들이 성장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7인의 스승, 다양한 의료 철학 】


정형외과 의국에는 일곱 분의 지도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각자 다른 전문 분야와 치료 철학 덕분에, 저는 다양한 치료 방식은 물론 전문의로서의 삶의 가치관까지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일곱 분의 교수님들은 마치 무지개의 일곱 빛깔처럼, 각자의 독특한 색채로 우리의 의료인 생활에 깊이와 풍성함을 더해주셨습니다.


크게 분류하자면, 척추, 하지, 상지를 치료하는 철학은 각각 뚜렷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예를 들면 척추와 하지는 사람이 직립보행을 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 더 적극적인 치료를 해야 하고, 상지는 상대적으로 조금 덜 적극적인 치료를 해도 되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런 치료의 관점뿐만 아니라, 교수님들 개개인의 성격이 치료 철학에 반영되어 저는 다양한 관점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은 업무에 적응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첫 담당 지도 교수님이셨던 손욱진 교수님은 의국에서 가장 많은 수술을 하시는 무릎관절 및 정형외과 외상 전문가셨습니다. 제가 아는 정형외과 하지 전문의 중에서 가장 빠르고 능숙하게 수술하시는 분이었습니다. 매주 열 명이 넘는 수술 환자가 입원하고, 응급실에서도 추가 환자가 끊임없이 들어오는 상황이었습니다. 매일 수십 명의 입원 환자를 봐야 했기에, 세세한 부분보다는 큰 문제없이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힘들었지만 서서히 적응해 나갔고, 4년 과정 중 1년차 생활에 무사히 안착했습니다. 그렇게 전공의 과정의 첫 해가 지나갔고, 때로는 더디게 느껴졌던 4년의 시간을 끝내 견뎌내며 전문의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이 시기를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그만큼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100일 당직은 단순히 병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의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책임감을 키우는 과정이었습니다. 환자들의 고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의사로서의 사명감을 깊이 느꼈고, 동료들과의 협력을 통해 팀워크의 중요성도 배웠습니다.


지금의 저를 있게 한 이 시간들을 생각하면, 힘들었던 순간보다는 감사함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앞으로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더 나은 의사,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100일 당직은 끝났지만, 의사로서의 성장은 계속됩니다.



“청춘의 도전: 정형외과 전공의로의 첫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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