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도전: 새내기 의사의 첫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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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일, 의사국가고시에 합격한 후 설레는 마음으로 모교인 영남대학교병원 인턴 의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긴 대학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직장인이 된 것이죠. 학생에서 직장인으로의 전환은 설레면서도 조금은 두려운 경험이었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더 이상 방학이 없다는 것이었죠. 처음에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새로운 삶의 장이 시작된다는 기대감으로 가득 찼습니다.
사실 인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의사로서 일을 시작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의사들이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 사회에 진출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 역시 이러한 관행을 따라 인턴 과정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더 넓고 깊은 의학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모교 병원을 선택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학교 동기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죠. 또한 제가 희망하는 정형외과 전공의 과정에 지원할 때 합격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도 고려했습니다. 수도권의 유명 병원들과 달리, 지방 소재 모교 병원은 대부분 자교 출신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어 인기 과의 경쟁이 덜 치열한 편입니다. 이는 저에게 큰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6년간 함께 공부하고 지냈던 동기들과 합숙 생활을 하며 일한다는 생각에 설레었습니다. 물론 갈등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거라 기대했죠. 학생 때 병원 실습 중 선배 인턴, 전공의들의 모습을 보며 꿈꿨던 그 생활이 드디어 시작된 것입니다. 이렇게 저의 인턴 생활은 설렘과 기대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경험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 마음이었습니다.
영남대병원 서관 12층에는 인턴 숙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각 방마다 4~6명이 생활할 수 있는 2층 침대가 놓여 있었죠. 교육수련부에서 임의로 배정해 준 룸메이트들과 함께 지내게 되었는데, 다행히 제게 친한 동기들이 배정되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사진 1)
대학 생활 동안 동기들과의 관계는 다채로웠습니다. 저는 대부분의 동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남들이 저를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숙소 배정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조금은 긴장되기도 했습니다.
처음 숙소에 짐을 풀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각자 배치된 과에서 바쁜 일과를 마치고 숙소에서 만날 때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대학 시절 MT에 온 것 같은 들뜬 기분이었죠.
지금은 우리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의로서 환자 진료와 연구에 매진하고 있지만, 그 당시엔 갓 대학을 졸업한 새내기 의사들이었습니다. 이 특별한 동거 생활은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힘든 인턴 생활 속에서도 룸메이트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 함께 나누는 야식,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는 시간들이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인턴 생활은 각자가 배치된 과에서 정신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특히 인기 과를 지원한 인턴들은 더욱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해당 과를 돌 때는 물론이고, 다른 과에 배치되어 있을 때도 언제 어디서 일이 넘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1년 내내 긴장 상태로 지내야 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일했고, 동기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가끔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때로는 혼자 감당하기 힘든 상황들이 생기곤 했습니다. 이럴 때 저는 가끔 숙소 동기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기쁘게도 대부분의 경우 동기들은 기꺼이 도와주었습니다. 저 또한 다른 동기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달려가 힘을 보탰습니다. 이런 상부상조의 정신이 전우애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과에 지원하고, 처한 상황도 달랐지만 근본적으로 생각하는 바는 비슷했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기를 함께 견디며 미래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인턴 생활은 마치 대학 생활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숙소 안에서의 생활만큼은 인턴 생활 중에서 즐거운 추억만 남아있습니다.
인턴 생활에서 가장 큰 도전 중 하나는 바로 새벽 알람과의 싸움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알람 소리에 잘 깨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알람이 울리면 즉각 깨어나 시간을 확인하고는 다시 잠들어버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인턴의 삶에서 이런 습관은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병원 일과는 새벽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6A'라 불리는 새벽 6시 이전 피검사는 인턴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새벽 5시부터 채혈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저는 나름의 전략을 세웠습니다. 당시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음악으로 알람음을 설정했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격투기 단체 선수 중 한 명의 입장곡을 알람음으로 설정했습니다. 이 요란한 음악이라면 분명 한 번에 깨어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 요란한 음악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10분 간격으로 두 번 정도 알람을 듣고 나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알람이 울릴 때마다 "아, 이건 아니야. 조금만 더 자야 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몸이 따라가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저의 알람 사투로 인해 같은 방의 동기들도 함께 고통받았습니다. 요란한 알람 소리에 모두가 함께 깨는 일이 빈번했죠. 물론 매일 그런 것은 아니고 바로바로 기상할 때가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인턴 생활이 막바지에 접어들면서, 우리 모두의 마음은 점점 더 무거워졌습니다. 각자 원하는 전공과에 지원하여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이 나는 시기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은 우리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남자 인턴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갈림길이었습니다.
만약 원하는 과에 합격하지 못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 입대를 해야 했습니다. 3년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난 후, 다시 전공의 과정을 시작하거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이 선택의 순간은 우리의 3년,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로였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군 복무를 먼저 마치고 전공의 과정을 밟는 것이 인생을 길게 봤을 때 그리 뒤처지는 선택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더 넓은 시야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당시의 우리에게는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동기들이 전공의로서 전문성을 쌓아가는 동안 혼자만 군 복무를 하게 된다면 느낄 상대적 박탈감과 뒤처짐에 대한 두려움이 컸습니다. 이는 단순히 3년이라는 시간의 차이를 넘어서는 심리적 부담이었죠.
결과적으로, 우리 방 4명 중 3명은 원하는 과에 합격했고, 1명은 아쉽게 탈락했습니다. 탈락한 친구는 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돌아와 전공의 과정을 시작했죠. 각자의 길은 달랐지만, 모두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지금 그 시절을 돌아보면, 참 많은 감정이 교차합니다.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괴로운 순간들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기억에 남는 건 즐거웠던 추억들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통은 잊히고 좋은 기억만 남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가 봅니다. 이 동기들과 더불어 몇몇의 다른 친한 동기들과 함께, 전문의가 되고 나서 1박 2일로 MT를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사진 2) 전문의가 된 동기들과의 만남은 인턴 시절과는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인턴 생활은 의사로서의 첫걸음이자, 성인으로서 사회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힘들고 고된 나날도 있었지만, 동기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지금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의사로서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키울 수 있었고, 앞으로의 의료인 생활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청춘의 도전: 새내기 의사의 첫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