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걸었던 청춘, 정형외과 의사의 꿈을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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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부터 축구는 제 삶의 큰 부분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방학 때에는 늘 학교 운동장에서 일과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대구의 더운 여름, 다니던 초등학교에 고무타이어 위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본 기억이 아직도 선합니. 학교 운동장에 있으면 여러 그룹의 친구 또는 형, 동생들이 와서 갖가지 운동을 다 같이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서 축구를 하는 것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의과대학에 입학하고, 여러 동아리가 있었지만 저는 축구동아리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때 조금 놀랐던 점은 전국의 각 의과대학에 축구동아리가 다 있었고, 이 축구동아리들이 여름에 같은 대회를 준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꽤 잘 조직화된 대회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여름 의과대학 축구대회인 메디컬리그는 구글에 검색해 보면 간략하게 소개되어 있는 대회로, 전국 40여 개 의과대학이 참가합니다. 제가 속한 영남대학교 의과대학 축구동아리는 경상도 지역 예선에 참가하여 2등 안에 들어야 전국대회 토너먼트인 8강 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세대로서, 학교의 이름을 걸고 지역예선을 거쳐 전국대회에 나간다는 것은 아직도 가슴 설레는 일이었습니다. 만화에서 보던 그 열정과 도전을 직접 경험할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었습니다. 의학 공부의 힘든 일상 속에서 메디컬리그는 공부 외의 꿈과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의예과 1학년이었던 제가 동아리에 가입할 당시, 선배들은 이미 전국대회에서 수차례 우승을 거두었고 인원수도 많은 동아리였습니다. 하지만, 저의 의예과 동기들은 2년 뒤에 입학할 의학전문대학원 동기들과 졸업을 같이할 예정인 기수였고, 그래서 학생 수가 예년에 비해 절반이었습니다. 학생 수가 적어서 그런지 축구동아리에는 선수 3명만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의대 축구동아리에 가입하던 날, 제 인생이 바뀔 줄은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축구는 단순한 취미를 넘어 제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습니다
의예과 시절인 2007년과 2008년, 영남대학교 축구동아리는 예선을 무사히 통과하고 전국대회에서 두 번 연속 결승에 진출하여 한 번은 우승을 차지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2008년 예과 2학년 때는 전국대회 참가를 위해 KTX를 타고 서울로 가서 쌍문역 근처 축구장까지 갔던 기억이 납니다. 결승전에서는 경상도 예선 결승에서도 만났던 인제대학교 팀과 다시 맞붙었습니다.
지역예선에서는 경쟁 관계였지만 전국대회 결승에서 만나게 되어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사이가 되었고, 대회 후에는 함께 기념사진도 찍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입학정원이 많은 의과대학일수록 축구 실력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인원수가 많으니 축구 잘하는 학생들이 더 많이 선발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의학과 2학년이 되어서는 제가 축구동아리 주장을 맡아 팀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공부만 하던 의대생이 축구를 할 줄은 아는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비슷한 또래의 레벨에서의 스포츠는 생각보다 정말 치열합니다. 그 무렵부터 인제대학교가 예선과 본선에서 점점 두각을 나타내더니 우리 학교보다 좋은 성적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2010년부터 영남대학교는 도전자의 입장에서 대회에 임하게 되었죠. 이번 대회에서는 2009년 전국대회 우승팀이었던 인제대학교가 2위 안에 들 것이라 예상되었고, 영남대학교 역시 2위 안에 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경상도 지역 예선은 9개 팀이 2개 조로 나뉘어 각 조 1, 2위 팀이 4강에 진출하고, 결승에 오른 2개 팀이 전국대회에 나가는 방식이었습니다. 2010년 예선 첫날 마지막 경기였던 인제대와의 경기. 우리는 0:1로 끌려가다 2:1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인제대는 탈락하고 우리는 4강행 또는 전국대회 진출을 노려볼 수 있는 유리한 상황. 하지만 날이 어두워지면서 공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방심한 상황에서 실점을 하며 결국 2:2 무승부.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의 절망감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의학과 3학년 이후부터는 대회 참가에 좀 더 여유를 갖고 즐겁게 임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 1)
매년 여름이 되면 메디컬리그를 준비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더운 대구의 뜨거운 여름 하늘 아래, 발바닥이 뜨거워지는 운동장에서 훈련에 매진했습니다. 메디컬리그를 준비하다가 정말 너무 더울 때는, 40개 의과대학에서 모두가 이 대회를 준비할 텐데 열사병으로 쓰러지는 학생도 있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대구에서 이렇게 극한의 더위 속에서 훈련하니, 시합 날 폭염이 온다면 우리가 제일 강하지 않을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여름방학 중 약 3주간 훈련했고, 주 3-4일 정도 모이는 일정이었습니다. 보통 오전 9시경 모여 오후 1-2시까지 훈련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주장을 맡았을 때는 제가 힘들어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훈련이 막바지에 이를 때면, 이 대회를 준비하는 모든 의과대학 축구동아리 학생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더위에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지만,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축구를 하며 부상도 여러 번 당했습니다. 의예과 때 넘어져 다친 어깨가 계속 아파왔고, 축구 중 어깨가 빠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을 때는 직접 어깨를 집어넣기도 했죠. 도저히 방치할 수 없을 것 같아 의예과 2학년 때 모교병원 정형외과 견주관절 전문의이신 서재성 교수님께 진료를 받고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환자의 입장이 되어보니, 의사의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몸소 느꼈습니다. 정말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당시엔 훗날 제가 그 스승님께 견주관절을 배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더 나아가, 공공병원에서 견주관절 전문의로 진료를 보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죠. 축구로 인한 부상은 어깨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의학과 1학년 때는 경기 중 볼을 걷어차려다 실수로 상대방이 저의 얼굴을 가격했고, 그 충격으로 코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결국 모교병원 성형외과 김용하 교수님께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축구 때문에 병원신세를 지는 것을 매우 걱정하셨습니다. 하지만 부상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저는 축구가 좋았습니다. 어쩌면 이런 축구 사랑과 부상 경험이 정형외과 의사의 꿈을 갖게 된 밑거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축구 선수 박지성은 제 유년시절의 영웅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중학교 시절, 그가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터뜨린 결승골에 온 나라가 들썩였습니다. 저 역시 그날 밤잠을 설쳤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고등학교 때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자, 저는 너무나 자랑스러웠습니다. 비록 의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매진해야 했기에 경기를 볼 여유는 없었지만, 그의 소식은 틈틈이 찾아보곤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즐겨하던 EA스포츠사의 피파 시리즈 축구 게임에서 맨유는 항상 커버를 장식하는 팀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팀이었는데, 그 팀에 한국 선수가 입단했다는 사실이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박지성 선수와 함께 뛰던 호날두는 당대 최고의 선수였고, 이후 10여 년간 세계 축구계를 평정했습니다. 비록 2019년 그가 한국을 떠나며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선수로서의 위대한 업적만큼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호날두에 대해 또 한 가지 인상 깊었던 점은, 그가 꾸준한 헌혈을 위해 몸에 문신 하나 새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저 축구를 사랑하는 학생이었지만, 이 기사를 보고 저 또한 정기적으로 헌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어쩌면 그때의 다짐이 오늘날 의사로서 살아가는 데 작은 영향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어릴 적부터 축구와 축구 선수들을 동경하며 자란 저는, 막연하게나마 스포츠와 관련된 의사의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의학과 4학년이 되어 진로를 고민할 즈음, 저는 정형외과 의사가 되어 운동선수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정형외과 의사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고 모교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뒤, 저는 여러 학회나 사적 모임에서 비슷한 연령대의 동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저와 같은 동기로 정형외과의 길을 선택한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 기억을 더듬어 보면, 같은 대회에 참가했었던 인연을 가끔 만나기도 합니다. 어쩌면 저와 같은 축구 좋아하는 의대생들 사이에선 정형외과를 택하는 게 흔한 루트인 걸까요? 여하튼 그런 동료들을 보면서, 제가 정형외과를 택한 건 축복 중 하나였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좋아하는 일, 보람 있는 일, 제 적성에 딱 맞는 일을 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막 의사로서의 삶을 시작한 저는, 앞으로도 이 길을 걸으며 축구를 사랑하는 의사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축구장에서 배운 열정과 팀워크의 정신으로, 이제는 수술실에서 환자들의 건강을 위해 뛰고 있습니다. 메디컬리그에서의 추억은 제가 정형외과 의사로서 매일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졸업 후에도 축구에 대한 열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응원하는 팀이 없더라도 몇 달에 한 번씩 K리그 경기를 보러 여러 도시에 여행 가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고, 그 도시를 즐기는 것은 저에게 큰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여행은 단순히 축구 관람을 넘어 새로운 경험과 휴식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가끔씩 찾아오는 이 특별한 시간들은 의사과학자로서의 바쁜 일상 속에서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소중한 순간이 되고 있습니다.
“축구에 걸었던 청춘, 정형외과 의사의 꿈을 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