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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함 Jul 04. 2023

협동조합은 주거 문제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소셜디벨로퍼 그룹 더함은 ‘공간을 통해 우리 삶을 더 이롭게’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부동산 영역 전반에서 혁신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공간과 사람의 연결을 고민하며 지속가능한 개발, 운영 방식을 제안한 결과, 국내 최초의 아파트형 마을공동체 위스테이를 비롯한 다양한 수요자 기반의 공간이 탄생했습니다.

부동산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에 없던 ‘새로운 판’을 짜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기에 더함의 방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질문하고 검증하는 과정과 노력이 필수적인데요. 디벨로퍼 기업인 더함이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지속하는 이유, 그리고 더함의 사업을 대상으로 한 인상 깊은 연구들을 소개합니다.


모든 것이 상품화되어 버린 시대를 바라보며 한탄하지만, 이 촘촘한 그물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형 농/축산업에 저항하기 위해 모든 식재료를 직접 길러 자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고도로 상품화된 의료시스템에 저항하기 위해 자가치유 방식만을 시도해 볼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이러한 영역에 수요자들이 직접 뛰어들어 공급자(기업)와 수요자(소비자) 간의 불균형을 비롯한 다양한 문제를 해소하고자 고안해 낸 제도적 틀이 바로 ‘협동조합’입니다.


앞선 글에서, 고도로 상품화된 시장, 복지 재원에 한계가 존재하는 국가가 개인의 자산이나 안전을 지켜내는 데 실패한 공백으로부터 ‘커먼즈의 실천’이 태동하게 된 맥락을 살핀 바 있는데요. ‘협동조합’은 이러한 커먼즈의 실천 방식 중 하나로,[1]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가치와 원칙, 규정을 두고 운영되는 조직체입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에서는 협동조합을 아래와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통해, 그들 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자발적으로 결합한 사람들의 자율적인 결사체이다.” A co-operative is an autonomous association of persons united voluntarily to meet their comm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needs and aspirations through a jointly-owned and democratically-controlled enterprise. (국제협동조합연맹 홈페이지 참조)





세계 곳곳에 설립된 다양한 협동조합은 겉보기에는 달라 보일지라도, 그 안에는 ‘추구하는 가치(자율), 주체(자발적인 결사체), 목적(공통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필요와 염원을 충족하고자), 운영방식(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 등의 면에서 공통된 규칙과 코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모든 협동조합은 구성원들이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맞닥뜨리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사업을 영위해 가고 있는데요. 이러한 협동조합의 원리에 따르면, 어떠한 사회 문제이든 협동조합과 만날 수 있고, 이는 실제 100년 넘는 역사를 통해 증명되어 왔습니다.


한편, 최근 몇 년간 우리 모두에게 가장 고민인 동시에, 가장 필요한 요소로 ‘주택’ 문제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집은 삶의 가장 기초적인 바탕이 되어야 함에도, 어느샌가 주객이 전도되어 경제 활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 가고 있는데요. “집은 사는 것(buying)이 아닌 사는 곳(living)”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의미 그대로 실현되려면, 공급자와 수요자가 철저히 분리되어 ‘판매 상품’으로만 존재하는 현실을 바꾸어 낼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상품화 문제에 대해, 실효적인 대안 중 하나가 되고 있는 ‘협동조합’의 운영 방식을 주거 현실에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이론적, 실증적 정리가 필요할 테고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임대주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오늘 소개 드릴 연구는 주택산업연구원에서 2019년에 수행한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장기 민간임대주택 제도도입 연구>입니다.[2] 더함의 구성원들이 공동 필진(초빙연구원)으로 참여했던 이 연구는 주택의 양적 공급 확대(16년 기준 주택보급률 102.6%)에도 불구하고 3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의 재고율은 4.1%(16년 기준) 수준에 불과한 현실, 더욱이 임차가구의 주거안정성이 여전히 취약한 현실―특히, 민간임대 시장은 거주기간이 짧고 임차인 권리보호 장치가 미흡 ― 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연구의 핵심 질문은 사회적가치를 지향하고 공공성을 강화하는, 장기 거주 가능한 새로운 민간임대 공급정책은 어떠한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인데요. 공공임대주택의 제한된 공급물량과 민간임대차 시장의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제도를 기초로,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합니다.


‘장기간 거주 가능성’, ‘공동주택 단지 내 공동체 복원’, ‘다양한 계층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소셜믹스’ 등을 민간임대주택 제도 내에 녹여내기 위해, 연구자들은 국내외 다양한 곳에서 실험되고 있는 ‘주택협동조합’의 사례들을 조사하고 분석하는데요(‘주택협동조합’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성공적으로 정착된 어포더블 하우징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러한 과업들을 통해, 장기 거주 가능한 민간임대주택 사업 모델에 반영되어야 할 핵심 요소들을 도출해 냅니다.



국내외 주택협동조합의 사례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이 연구의 핵심 개념인 협동조합주택은 자금 조달 또는 건설 방식의 측면에서 주택협동조합을 통해 공급·운영되는 주택을 말합니다. 국제협동조합연맹(International Co-operative Alliance, ICA)의 정의에 따르면, 주택협동조합은 “공동으로 소유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면서 주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한 법적 조직체”인데요. 통상 주택협동조합에 조합원으로 가입한 입주자는 주택의 계획 및 건설은 물론 이후 운영단계에도 참여합니다. 이는 「주택법」을 근거로 하여, 자금 운용에 있어서 최소한의 의사결정만 진행하는 주택조합(지역주택조합, 직장주택조합, 리모델링주택조합)과는 구분됩니다.


이 연구는 특히 스웨덴, 덴마크, 캐나다, 일본 등 국내외 다양한 주택협동조합 사례를 통해 한국의 제도에 현실화할 방안과 인사이트를 길어 올리고 있는데요. 협동조합을 주택 문제에 접목시키는 것이 결코 허황되거나, 보편화되기 어려운 것이 아님을 실제 사례들을 통해 증명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2012년 말 기준으로 유럽 인구의 약 10% 정도가 협동조합주택에 거주할 정도로, 유럽에서는 꽤 보편화된 모델이라 할 수 있는데요. 주택협동조합은 시장의 주택공급 기능과 국민의 주거비 지불능력이 약화된 시점에 중요한 주택공급책 역할을 수행했으며 각국은 현지 실정에 맞는 주택협동조합과 관련된 법, 제도를 정립해 왔습니다.


좀 더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는 국내 주택협동조합의 사례에서는 사업규모, 조합원 자격 및 모집방식, 소유/운영주체, 임대자격 등의 요소들을 대조 분석하고 있는데요. 사업 기획 및 조합원 모집 과정에서부터 운영에 이르기까지, 조합원의 참여의무를 강조하며, 적정 주거비 실현을 포함한 공공성을 실현하기 위한 프로세스를 디테일하게 마련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 국내 협동조합주택 사례 시사점 (본 연구의 55쪽 수록 자료)



이러한 국내외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예컨대 이런 것입니다. (i) 주택협동조합 모델이 각지 실정에 맞게 충분히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 (ii) 그리고 주택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 자체가 보다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 말이지요. 즉, 주택난을 ‘공급과 수요의 문제’로 바라보고 접근할 것이 아니라, ‘사업 구조와 거버넌스의 문제’로 바라보고 그에 맞는 대안적 거버넌스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각 사례들에서 공통되게 수립하는 거버넌스는 바로 ‘PSPP’(Public-Social-Private Partnership), 곧 공공-소셜-민간 파트너십인데요. 주택난의 해결을 위해 공공에만 부담을 가중시키거나, 민간 시장에만 내맡길 것이 아니라, 적정한 사업성과 공공성의 접점을 찾으며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소셜섹터가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주택공급의 프로세스와는 차별되는 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구의 앞선 내용들을 통해, 주택 문제에 ‘협동조합’을 접목시키는 것이 결코 이상에 그치는 일이 아님을 확인하였으니, 이제는 ‘어떻게’ 이를 국내 관계법과 제도에 맞게 현실화할 것인지가 관건이겠습니다. 협동조합이라는 비히클(vehicle)을 장기간 거주 가능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에 접목하는 구체적 사업모델에 대한 설명은 다음 글에 계속 이어집니다.  


*이 글은 2편(링크)으로 이어집니다.





[1]  “70년대 들어 사회적협동조합은 스스로를 “복지국가가 책임지지 못하는 공익(collective interest)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하여 자율적으로 조직된 사람들의 집단”으로 규정하며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 갔다.” (김신양,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협동조합: 사회적협동조합>, <<생협 평론>>, 2012년 여름호(7호), 24쪽)

[2] 주택산업연구원,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장기 민간임대주택 제도도입 연구>, L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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