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편. 순정씨, 괜찮아요?
3화를 쓴 이후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이 며칠이 지나갔다.
지금의 나에 대해 쓰려면 반드시 아빠와의 이야기, 그 시절에 대해 쓰고 넘어가야 하는데
나의 기억이 맞나, 기억의 그물을 끌어올려 하나하나 뜯어보며 생각을 했다.
이상한 나의 아빠는 충실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 아빠 때문에 엄마가 살아야 했던 엄마의 삶이 나는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우리 엄마 순정씨는 어릴 적부터 내가 보아 온 가장 부지런하고 가장 성실한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하며 멋진 프라다 원피스를 입고 유럽과 일본으로 디자인 박람회를 다니고 ,
취미생활인 꽃꽂이도 열심히 하면서 내 결혼식 화관이랑 아이들 돌잔치 꽃을 다 맡아주었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서 내 도시락을 매일 두 개씩 싸주었고
밤 열두 시에는 반드시 독서실로 나를 데리러 오곤 했다.
그리고 오래도록 아파서 일어나지 못했던 외할머니를 요양병원이 아닌 집에서 돌아가실 때까지 모셨다.
순정씨는 나의 씩씩한 엄마이면서 할머니의 다정한 막내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늘 놀랍다.
한 인간이 어떻게 혼자서 저 일을 다 해낼 수 있었던 걸까?
엄마는 아빠에 대해 늘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거야,
그리고 엄마도 엄마의 인생을 흘러가는 방향대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거야.”
하지만 내가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그때의 순정씨 나이가 되니
경험하지 않아도 많은 일들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순정씨는 과연 괜찮았을까.
그리고 나의 기억은 모두 다 맞는 걸까.
나는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지워버리고 즐거운 순간들을 최대한 오래오래 기억하며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쓰는 참 속 편한 사람이다.
그래서 같은 상황도 늘 혼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는 듯하지만,
나는 나의 그런 성격이 좋다.
분명 이상한 아빠와, 너무 부지런하고 바쁜 엄마 사이에서 자라면서
나 자신도 힘든 순간이 많았을 텐데, 그로 인해 힘들었던 순간들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이상한 아빠덕에 내가 경험한 좀 남다른 세상과 부지런한 엄마의 사랑을 받은 덕에
나의 어린 시절이 반짝반짝 찬란했던 것 같이 기억이 된다.
지난 글을 쓰고 나서 엄마와 아빠에 대한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와 이야기는 그동안 내가 기억 저 멀리 던져두었던 많은 순간을 야금야금 다시 건져 올렸다.
예상대로 나는 좋은 기억, 내가 생각하기에 아빠가 멋졌던 순간들만을 내 기억에 저장해 두고 살고 있었다.
며칠 째 생각이 많아서 이 이야기를 계속해 나갈까, 말아야 할까.
조금 심각한 고민이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