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래서 나는 김해인과 결혼했다 epsode1
이미 그저 그런 대학을 자퇴한 나는 가고 싶다고 생각한 대학
딱 한 군데 영화과에만 원서를 썼다.
지금 생각하니 미친 짓이었다.
경쟁률은 무려 40:1이 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연극 영화과 입시도 치열하기 짝이 없는 세계였다.
내가 가을에 그저 그런 학교를 뛰쳐나와 특별한 준비 없이 엄청난 경쟁률을 뚫었을 때, 모두들 비결을 물었다.
준비도 없었고 비결도 없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면접을 보는 순간, 나는 합격이야!! 확신이 들었달까...
면접에 나온 질문은 내가 면접 전 날, 우연히 맥도널드에서 마주한 광경을 보고 밤새 머리 터지도록 생각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그 생각에 잠도 못 자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으니 면접관이 질문을 하는 순간, 일초의 망설임 없이 이야기를 시작해 15분 동안 세 사람의 면접관들과 신나게 대화를 나누며 웃을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15분은 내 인생의 짜릿한 한 순간이었다.
입학을 하고 면접관 중 한 분이 담당 교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면접 당시의 이야기를 나누며
“저는 정말 운이 좋았어요.” 이야기를 했더니
“그냥 운이 좋아서,라는 이야기는 앞으로는 절대 하지 말아라.
늘 그에 대한 대비와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기회인 것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살아라.”
말씀해 주셨다.
그 말은 내가 살면서 가슴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삶의 기준 중 하나가 되어주었다.
겨우 영화과에 입학한 나는 그때부터 어떻게든 더 예술가처럼 보이고 싶어서 안달복달했다.
누가 보아도 예술하는 사람이구나, 세상 사람들이 알아봐 주길 바라며 학교와 학과가 등짝 가득 커다랗게 새겨진 촌스러운 과잠바를 맨날 입고 굳이 카메라를 손에 들고 전철을 탔다.
현실감각 떨어지고 겉멋에 취한 유치한 이십 대의 나였지만 ,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어쩐지 귀엽잖아.'너그러운 생각이 들곤 한다.
김해인씨와 나는 영화과 동기로 처음 만났다.
나와 나이가 같은 삼수생 (?)이 동기 중에는 5명이 있었고
신기하게 모두들 멀쩡하게 다니던 대학을 뛰쳐나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선언을 한 친구들이었다.
나(김은혜)와 김해인씨는 이름 때문에 학번도 앞뒤로 쪼르륵 붙어서
과제를 늘 함께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는 영화과 안에서 연출 전공, 김해인은 촬영 전공.
나이도 같고 선택한 전공도 그렇고 과제 함께하기 딱 좋은 사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참 달라도 너무 달랐다.
영화가 너무 좋아 그저 밤새워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해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감정적이고 단순한 영화광인 나와는 다르게 김해인씨는 이미 프로의 세계에 있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울타리를 뛰쳐나올 때 가족의 박수와 응원을 받았지만
김해인씨는 영화는 딴따라의 일이라며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집을 나와 영화 현장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당시 엄청난 흥행을 한 공동 경비 구역 JSA의 조명부로 영화를 시작한 김해인 씨는
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바빴다.
밤새워 현장에서 일을 하고 첫 차를 타고 학교에 와서 수업을 듣고 과제 회의에 참여하곤 했다.
늘 땀 냄새와 발 냄새, 술 냄새까지 풍기는 단벌 신사,
게다가 구름이라도 타고 있는 것처럼 매 순간이 늘 설레고 행복한 나와는 달리
김해인 씨는 모든 일에 심드렁했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마음만 가졌을 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나와 달리
자신의 길을 이미 가고 있는 친구라니!
나는 그게 참 싫으면서도 부럽고 멋지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더 솔직히 어딘지 모르게 프로의 물을 먹어 거들먹거리는 게 재수 없네, 생각하기도 했었다.
첨부터 김해인 씨를 좋아하지도 않았고 당연히 연애는 꿈도 안 꾸던 사이였고
내가 싫어하는 스타일에 속했다는 것을 이제야 처음으로 고백을 해본다.
난 다정다정 포근한 사람을 좋아하는데
김해인씨는 몸에 다정이라는 유전자는 1%도 없는 사람처럼 삐딱하고 딱딱했다.
게다가 김해인 씨의 이상형은 나처럼 방실방실 웃으며 방방방 뛰어다니는 사람이 아닌
어딘지 우울하고 성숙한 연상이었다.
크리스마스에 좋아하는 누나에게 고백을 하네마네,
둘이 시나리오 강의 시간에 나란히 앉아 노트에 그런 이야기를 적으며 시시덕거리는, 우리는 그런 사이었다.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잔뜩 안겨주던 대학을 졸업하며 나는 런던으로 떠났다.
그리고 김해인 씨는 그 무렵 한 학기를 남기고 군대를 갔다. 꽤나 늦은 나이의 입대였다.
그렇게 각자 서로의 길을 찾아갈 때만 해도 우리가 다시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