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그때부터 지금까지
프리랜서의 가장 좋은 점을 고르라면 바로 자유로운 시간 관리!
다양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 즐거움 하나로 직업은 있지만 직장은 없는 이 생활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영화나 드라마 한 편을 끝내면 최소한 한 달 정도의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다.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 꽁꽁 매이기 이 전에는 우리는 대부분 그 시간에 길고 짧은 여행을 했다.
늘 해외여행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많은 여행을 그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촬영장소로 떠나곤 했는데 그건 김해인 씨의 가족 사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촬영의 여운이 사라지지 않은 장소들을 찾아가는 여행은 우리 가족끼리 특별한 추억을 나누어 가지는 일은 우리 가족의 전통과도 같은 일이 되었다.
과묵한 스타일인 김해인 씨는 촬영 장소로 떠나는 여행에서는 이 세상 최고의 수다쟁이가 된다.
장소를 처음 봤을 때의 소감, 이 장소를 어떻게 디자인하고 세팅할지 구상하던 이야기,
즐거운 이야기, 그리고 힘들었던 이야기, 배우와의 에피소드…
대부분 자기 자랑이어서 응응 응~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이야기도 많지만 우리는 최대한 감탄을 하고 가끔은 위로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밥 집도 꼭 촬영 중 방문했던 밥집에 간다.
솔직히 더 맛있는 밥집도 많지만, 맛보다는 추억을 공유하는 여행이기에 맛없으면 이렇게 맛없는 밥을 먹느라 고생했네? 맛있으면 이렇게 맛있는 밥 먹으며 일했으니 행복했겠어! 이런 뻔한 수다를 떠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잠든 밤중에는 그 지역에서 나오는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아이들의 이야기아 아닌 우리 둘의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둘이 가장 할 말 많은 그런 사이로 나이 들자고 약속을 했지만,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자라고 또 결혼 연차가 쌓일수록 나와 김해인 씨가 별 볼일 없는 수다를 떠는 일은 자꾸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일부러 자꾸 자리를 만드는 수밖에.
모든 관계는 저절로 자라나지 않는다. 부부 역시.
가장 가까운 사이인 것 같은 부부 역시 끊임없이 가꾸고 보살피지 않으면 금세 낡아버릴 수 있으니 잘 가꾸어 가야하는 것이다.
촬영부의 막내를 막 벗어나고 세컨이 되었을 때쯔음.
촬영이 끝난 직 후 촬영 장소였던 전라도의 염전으로 여행을 떠났다.
염전이라면 바다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 염전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염전에서의 촬영은 첨이여서 헌참을 주변울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차에 돌아왔더니 아직 촬영 짐도 정리되지 않는 차 안에서는 촬영 때 사용했던 장갑이 나왔다.
무거운 짐을 들일이 많던 그 시절의 조수 김해인 씨는 작품 한 두 개만 끝내도 장갑에 구멍이 나서 자주 장갑을 바꾸어야 했다.
차 안에서 나온 장갑은 땀에 절어 빳빳해지고 구멍도 여기저기 나 있었다.
“이건 왜 안 버리고 가지고 있어?”
가슴이 찌르르해진 나는 괜히 이렇게 핀잔을 주었다.
“기억하려고.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그리고 내가 감독이 되어서도 조수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지. 기억하려고”
그 말에 나는 가슴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불만 많은 사람 같은 김해인 씨지만 속은 다정하구나, 어쩐지 안심이 되는 순간이었던 것 같다.
*
십여 년이 지나 올해 가을 그 염전에 다시 다녀왔다.
염전으로 가는 길은 이제 큰 길이 지나가고 있어서 가기도 쉬워졌고 제법 관광지가 되어서 염전 앞에는 커다란 카페와 식당도 여럿 생겼다.
그리고 이제는 김해인 씨도 그때 마음 깊이 꼭꼭 다짐하던 촬영감독이 되어있었다.
염전 앞에서 우리는 그 시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기분이 제법 멋져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 나를 보며 김해인 씨가 이야기했다.
“그건 자기가 나의 밑바닥부터 모든 순간을 다 봤기 때문이야.”
대학 1학년 때 만나 결혼하고 땀 묻은 돈 30만 원 열정페이부터 지금까지.
서로 가장 이뻤던 시절을 기억하고있고 , 그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을 알고 있는 사람과 함께 살며 나이 들어가는 일은 어릴 시절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