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달콤한 나의 도시 episode1 .
최강희와 지현우 주연의 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를 참 좋아했다.
친한 친구가 그 드라마의 오디션을 보고 떨어졌는데 그 친구와 첫 회를 함께 보며 실눈을 뜨고 째려보았던 바로 그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
드라마를 보다가 김해인 씨가 이야기했다.
지현우 불쌍해. 영화를 하는 사람은 시간도 , 돈도 없고 결국 애인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밥 해주고 노래 불러주기 뿐이잖아.
( 지현우는 영화를 하고 싶어서 학교를 휴학하고 연출부 막내로 슬레이트를 치는 휴학생으로 나왔다.)
대체 왜 영화를 하는 사람은 그렇게 가난하지?
대체 뭐가 좋아서 방구석을 굴러다니며 방바닥 긁으면서도 영화가 좋다고 꿈을 놓지 못하는 거지?
영화하면 가난하다, 이게 공식처럼 따라붙던 시절, 대체 영화가 무엇이길래 우리의 꿈과 청춘을 던져서 달려들었던 것일까.
영화가 너무 좋아서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서 삼삼오오 모여서 날이 밝은 줄도 모르고 목마른 사람이 갈등을 달래듯 영화를 보고, 영화를 이야기하고 , 영화를 만들다 보니 이십 대가 지나갔다.
누군가의 눈에는 한심해 보였을지 모르는 청춘이지만 꿈꾸는 이들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이 참 축복처럼 느껴졌다. 꿈에 도달하지 못해 좌절하는 날들이 더 많았지만 난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내가 이십대로 다시 돌아간다면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것인가, 가끔은 고민하지만 또 대답은 yes!
2013가을 ,런던에서 돌아온 며칠 후 김해인 씨는 4개월의 일정으로 중국드라마의 한국 스탭이 되어 중국으로 떠났다.
중국에서의 첫 촬영은 달콤한 나의 도시 중국판이었다.
상하이에서 장비를 살펴보고 준비를 해서 중국의 남부 혜주( 후이저우)에서 촬영이 예정되어 있었다.
당시 중국은 한국드라마 바람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한국 스타일의 의상, 메이크업, 촬영을 선호하여 한국 스태프를 적극적으로 고용했다.
그렇게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의 미풍이 불기 시작할 때, 한국에서는 경험한 적 없는 영화계 불황이 닥쳐오고 있었다.
소문처럼 떠돌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가 그 무렵 수면위로 떠오른 것이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암흑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누가 보아도 두 팔 휘휘 휘두르며 블랙리스트 맨 앞 줄을 차지할 것 같은 김해인 씨는 그 무시무시한 검은 바람이 불어오는 그 시간, 중국으로 떠났다.
생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했다.
하지만 블랙리스트의 검은 바람 이전에도 힘든 시간은 존재했다.
MB 정권 시절,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수많은 대본이 난도질당했고 그로 인해 수많은 영화인이 현장을 떠나갔다. 우리는 그 시절의 우리들을 스스로 MB 난민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