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그놈의 슬럼프

엄마의 노트

by 은혜

입시와 슬럼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여름방학이 지나면서
주희가 깊은 슬럼프로 끝없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끼고 있었다.

9월. 아직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던 일요일 저녁.

주희가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도망치듯 미술학원을 빠져나갔다고 했다.

핸드폰도 없이, 새로 산 딱딱한 슬리퍼를 신은 채로.


입시가 막바지로 향하던 무렵, 나는 매일 아침 주희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학원 앞으로 데리러 갔다. 밤이면 학원 앞은 나와 비슷한 부모들의 차로 작은 전쟁터가 되곤 했다.
편의점 밥과 학원 근처 분식집 음식에 지친 아이를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 보냈다.

그날따라 주희는 지갑도 책상 위에 올려둔 채 나갔다.

돈 한 푼 없이 핸드폰도 없이 주희는 어디로 간 걸까.


중학교 3학년, 지독한 사춘기 끝에 주희가 맨발로 집을 뛰쳐나갔던 밤이 떠올랐다.

나는 늦은 밤까지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를 찾고 또 찾았다.
터질 듯한 가슴을 부여잡고 맨발로 어딘가로 뛰어갔을 주희를 떠올리면 가슴이 서늘하게 내려앉았다.

머릿속에 그 날밤의 불안이 떠올라 가슴이 요동을 쳐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분명 이번에도 아이는 별 일 없이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마음이란 늘 머리와는 따로 놀아서 마음을 마구 어지럽히곤 한다.


두어 시간 뒤, 주희는 집으로 돌아왔다.

학원이 있는 홍대에서 집까지 걸어왔다고 했다.

새 슬리퍼를 맨발에 신고 걸어온 탓에 발은 온통까지고 물집이 잡혀 엉망이었다.

우선 발을 씻고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상처는 생각보다 크고 깊어서 뒤로고 오래도록 말썽을 부렸다.

그리고 입시를 마친 지금도 그 발의 흉터는 그대로 남아 발이 온통 얼룩덜룩하다.

그저 흉터가 아닌, 내가 대신 걸어줄 수 없었던 아이의 시간의 흔적이라는 생각에.

도망치고 싶었지만, 결국 다시 돌아온 아이의 마음 같아서.

아이의 발을 볼 때마다 지금도 가슴이 저릿저릿하다.





그날, 학원을 뛰쳐나와 걷던 주희의 노트


03. 실기와 공부,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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