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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영혼이 자유로운 소나무

[옛 그림 속 나무 이야기]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꽃과 나무는 본래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빛깔, 화려한 자태, 좋은 향기 등으로 보는 이들의 시각과 후각을 즐겁게 합니다. 또 실용성과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렇듯 꽃과 나무를 가꾸고 키우는 일은 우리의 생활을 더욱 활기차고 풍요롭게 해주기도 합니다. 비교적 많은 기록이 전해지는 조선 시대에도 집 주위에 원림(園林)을 만들고 그 안에 꽃과 나무를 가꾸었는데요. 사람은 늘 자연을 동경했고 그것을 곁에 두고자 했습니다. 이런 점에 착안하여 옛 그림 속에 등장하는 꽃과 나무를 단순히 소재나 감상물로서뿐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미와 가치, 또는 당시의 문화와 취미의 향유 등을 음미해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마침 기회가 되어 조경가로서, 궁궐과 왕릉에서 해설하고 있는 역사커뮤니케이터로서의 시각으로 ‘옛 그림 나무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 소나무입니다. 소나무는 왕실에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선호했던 나무입니다. 실제로 우리나라 산천에는 소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목재와 열매, 껍질까지 여러 용도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햇볕을 좋아하는 극양수(極陽樹)이지만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소나무는 바위 틈이나 절벽 위 등에도 뿌리를 내리며 자라기에 억척스러움, 끈기, 근성,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 푸른 솔가지를 금줄에 꽂아 아이의 탄생을 알렸고, 소나무 열매, 껍질을 먹고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 관에 담겨 소나무가 자라는 묘역에 묻혔습니다. 그래서 소나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우리와 함께하는 나무로 알려져 왔습니다. 왕실에서도 소나무는 관재(棺材)로, 궁궐 건축의 자재로, 능침 주변의 도래솔 등 여러 용도로 활용되어 소나무를 보호하는 것이 나라의 중요한 산림 정책이었습니다.


하나의 소재가 오랜 시간 중요한 상징성을 가지면서 문화 속에서 끊임없이 사랑받은 예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소나무는 옛 그림, 도자기, 금속공예품, 목공예품 등에서 주된 소재와 장식 문양으로 등장합니다. ‘옛 그림 속 나무 이야기’를 통해 소나무의 조형미를 감상하고, 선조들의 소나무를 향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소나무가 그려진 옛 그림 중에는 화성(畵聖)이라 일컫는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76세인 1751년 7월 중순쯤 큰비가 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그의 그림 중에서는 가장 큽니다.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종이에 수묵담채, 79.2x138.2㎝, 국립중앙박물관

잘 알려져 있듯이 인왕산은 한양 풍수의 중심을 이루는 내사산, 즉 4대 진산인 북쪽의 백악산(북악산), 남쪽의 목멱산(남산), 서쪽의 타락산(낙산)과 더불어 서쪽의 진산 중 하나입니다. 이 작품에는 커다란 바위 봉우리들과 울창한 수풀, 몇 채의 건물이 등장합니다. 무겁고 웅장한 시커먼 암봉의 산등성이 아래로 하얀 연운(煙雲)이 가득히 피어올라 산의 중턱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 아래쪽으로는 울창한 소나무와 활엽수 숲에 둘러싸인 건물들이 보입니다.


국토 대부분의 산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그렇듯 인왕산의 소나무 역시 커다란 바위에 군데군데 붙어 삽니다. 화강암 바위가 풍화된 굵은 모래흙은 척박하고 메말라서 소나무처럼 햇빛을 좋아하고 생명력이 강한 나무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작품 속의 인왕산은 온통 소나무 산처럼 보입니다. 10여 군데 소나무 숲이 있고 약간씩 농담의 차이도 찾을 수 있는데요. 각각의 위치에 따라 나무가 잘 자라고 못 자람을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왼쪽의 수성동계곡 쪽 소나무 숲이 가장 진하고 싱싱한데요. 인왕산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계곡 중에는 가장 길어서 그 주변은 비교적 땅이 깊고 비옥하기 때문입니다.


물기 가득 머금은 검은 바위가 시선을 압도합니다. 한껏 분위기가 신령스럽습니다. 화면 아래에는 우거진 숲 사이로 집을 내려다보는 '부감법'으로 그렸는데요. 한 화면에 다각도의 시점을 이용해 화면을 시원하면서도 꽉 차게 연출했습니다. 특히 거칠고 힘이 센 산과 바위는 부드럽고 풍성한 숲과 안개의 강약에 맞추어 조화롭게 배치되었습니다.

"인왕제색도"에 나타난 위치

산 아래의 계곡에는 비 온 뒤의 풍광을 강조하는 듯 정선은 붓 한 번 대지 않고 텅 빈 여백으로 남겨 두었지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자욱한 안개가 그림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텅 빈 여백이 굳세고 무거운 암봉들을 가뿐히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는 음과 양이 이룬 조화의 세계입니다. 어쩌면 음과 양으로 분리될 수 있는 단순함에 소나무와 활엽수로 이루어진 숲을 두어 조화와 변화를 이끌어내는 듯 합니다.


옛 그림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소나무는 버드나무에 이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나무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몇 회차에 걸쳐 얘기 나누려 합니다. 다음 회차도 흥미롭고 유익한 칼럼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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