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작가 열전 ⑩]
불완전하지만 희망을 놓을 수 없는 인생의 신비를 그리다
나누리는 '숲의 화가'다. 초기 작품들부터 최근 작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오직 숲을 그려 왔다. 그런데 그가 그린 숲은 현실의 숲이 아니다. 마치 상상이나 꿈결에서나 목격할 수 있는 듯 오묘하기만 하다. 형태가 흐릿한 나무들 사이로 초록 계곡물이 흐르고, 그 위로 붉은 빛의 하늘이 펼쳐진다. 또한, 붉은 하늘 아래 쓰러진 고목과 어린 나무들이 어우러져 기묘한 풍경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몽환적이고 불안하고 신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이 장면들은 생명이 넘치는 일반적인 숲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지만 감상자들은 그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제 개인의 삶은 물론 인간 세계 자체가 불완전합니다. 행복을 추구하지만, 고통과 슬픔이 끊임없이 따라다닙니다. 겉보기엔 완벽하지만 그 내부엔 늘 좌절의 그림자가 드리워집니다. 신이 창조한 에덴동산은 생명이 영원이 지속되는 완벽한 곳입니다. 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에덴동산과 대비되는, 불완전한 인간의 숲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숲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2016년 경이다. 어려서부터 앓던 병 때문에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청소년과 청년 시절을 보낸 작가에게 유일한 희망은 그림이었다. 그래서 초기 연작 <흐르는 숲>엔 그런 작가의 상황과 내면이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 작가는 하늘을 늘 붉게 그렸다. 그가 묘사한 붉은 하늘엔 저녁놀이 주는 안락함과는 확연히 다른 비현실성이 담겨있다. 또한, 숲은 앙상한 겨울 나무와 잎 무성한 여름 나무가 혼재돼 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인생의 단면을 드러낸 것이다. 그가 그린 숲엔 흘러내리는 금빛 물감이 덧칠돼 있다. 작가는 녹아내리는, 온전하지 않은 세계를 그런 방식으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특이한 점은 나누리의 그림 대부분엔 늘 선명한 초록빛 계곡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제가 그린 숲은 제 내면처럼 불안과 혼란과 그리고 신비가 혼재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생명의 근원인 물을 늘 선명한 초록으로 그렸습니다. 우리 삶과 세계가 완전하지 않다 해도 희망과 생명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그림에 담아낸 것입니다."
올해 나누리가 발표한 <유연하고 초연한> 연작이나 <어떤 가능성>과 같은 작품들은 숲을 주제로 한 작업이지만 기존의 그림들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버드나무 잎은 더 무성하고 푸르름이 풍부해졌다. 화사한 색의 잎으로 덮힌 나무가 주는 발랄함은 과거의 숲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이다.
"몇 년 전 기적과 같은 일이 제게 일어났습니다. 건강을 회복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생명과 희망에 대한 경험이 붓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숲 작업에선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채색에서 더욱 다채로운 변화를 시도할 계획입니다."
나누리(b.1988)
학력
2022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 전공 석사
2019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학부 서양화전공 학사
전시
2024 개인전 <가장 고유한 가능성>, 마리나갤러리, 고양
2019 개인전 <흐름>, 갤러리더인, 서울
2023 단체전 <For Life>, 갤러리1898, 서울
2023 단체전 <어떤 움직임, 봄>, 마리나갤러리, 고양
2020 단체전 <모두의 평화>, 갤러리 1898, 서울
2017 단체전 <나를 이끄시는 빛> 갤러리1898, 서울
2016 단체전 <공간 호흡 숨 고르기> 갤러리 웰, 서울
수상
2024 고양 아티스트 365, 고양우수작가
2020 아트청업빌리지 선정작가
2017 이 작품을 주목한다 선정작가
소장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서울병원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 부속 목동병원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