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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중국의 도자기는 세계를 매료시킨 첨단 기술이었다

[최영식의 도자관 탐방기 ①]

최영식 기자의 자금성 도자관 탐방기 
자금성


동서 760m, 남북 960m, 면적 72만㎡, 건물 980채로 구성되어 한 해 2천만 명이 방문하는 곳이 있다. 중국 북경에 있는 자금성(紫禁城)이다. 중국 국내에서는 '고궁(故宮)'이라 부르는 자금성은  세계에서 현존하는 궁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다. 1421년 명나라 영락제부터 1924년 청나라 선퉁제까지 5백년 동안 명·청 두 왕조 24명의 황제가 이곳에서 중국을 통치했다.

'오문'으로 입장하는 관광객들

수많은 한국 관광객이 자금성을 찾는다. 대부분은 자금성 입구인 ‘오문(午門)’을 지나자마자 만나는 정전 태화전(太和殿)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달린다. 늦으면 사진을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태화전으로 직진할 때, 우리 답사팀은 중국 도자기를 보기 위해 왼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사진보다 도자기!"

자금성 안내도. '오문'을 지나면 왼쪽에 '도자관'이 있다.
'베이징 관광국'의 '도자관' 소개 홈페이지 화면

거기에 무엇이 있을까? 바로 수천 년부터 내려 오는 중국 도자기를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도자관(陶瓷館)’이 있기 때문이다. 청나라 황실의 성대한 코스 요리 ‘만한전석(滿漢全席)’을 한자리에서 즐기듯이, 도자기의 만한전석이  문화적 식욕을 자극하며 우리를 맞이한다. 자금성 사진은 인터넷에도 많이 있지만 이 도자기들은 지금 여기서만 볼 수 있다.

'무영전' 정면 모습


'무영전'의 '도자관' 표지

현재는 도자기를 전시하는 도자관으로 쓰이지만  정식 명칭은 ‘무영전(武英殿)’이다. 동쪽에 있는 ‘문화전’과 짝을 이루도록 지어진 전각으로 명나라 때는 황제가 정무를 보거나 대신들을 접견하던 장소였다. 그런 점에서 ‘무영전’을 현재 도자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도자가 갖는 정신 문명의 상징성을  보여준다. 1644년 자금성을 점령한 이자성이 바로 이곳 무영전에서 황제에 올랐다.


중국 도자(陶瓷)는 당나라 이후 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탁월한 제조 기술과 예술성은 곧 많은 국가의 도자 생산에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미국이 첨단 기술과 혁신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처럼, 당시 중국의 도자기는 그 시대 기술의 정점이자 문화적 자부심이었다. 애플의 혁신적인 제품들이 세계인의 생활을 변화시키고, 미국의 우주 과학이 인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가듯, 중국의 도자기는 생활용품을 넘어 세계를 놀라게 하고 매료시킨 기술과 예술의 결정체였다.


이 점에서 도자관은 단순히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미적 공간을 넘어, 중국의 역사와 기술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다. 도자관은 중국 고궁박물원이 소장한 35만 건의 도자 문물 중에서 400여 작품을 선정해서 시대 순으로 전시를 한다. 한 장소에서 수천 년 중국도자사를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는 ‘체계성’과 위작의 염려없이 감상할 수 있는 ‘신뢰성’은 이 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체험이다. 이제 도자관 안으로 들어가 보자.

'도자관' 내부


'도자관' 내부


도자관은 중국 도자기를 10개 시대로 구분해서 전시하고 있다. 맨 처음 신석기 시대로 시작해서 마지막 1940년대 민국 시대(民國時代)로 이어진다. 이렇게 시대별로 도자관을 쭉 따라가면 중국 도자기의 흐름과 변천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 중국 도자기의 체계적인 교과서이다.

신석기 시대 안내문

 

민국 시대 안내문

작품 하나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가치를 지닌 국보급 도자기를 마주하는 순간 눈은 럭셔리의 진수를 경험한다.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는 없지만, 국보급 도자기는 그 존재만으로도 우리의 정신 세계를 한 단계 높여준다.

중국에서 흙과 불을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그릇을 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부터다. 신석기를 대표하는 도기는 기원전 5천 년경부터 3천 년경 사이, 황하 중류와 그 서북쪽의 하남성 앙소, 섬서성 반파 등을  중심으로 성행한 앙소(仰韶) 문화의 채도(彩陶)다. 이후 하상주(夏商周)로 대표되는 중국 청동기 시대에는 도기의 제작 기술이 크게 진보하였다. 회도의 제작이 증가하였고 백도와 흑도도 부분적으로 만들어졌다.

채도


흑도, 백도

중국의 분열기인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를 지나, 수(隋), 당(唐)시기에는 경제력의 성장, 서역과의 교류, 기술적 발전을 바탕으로 화려하고 장식적인 자기 문화가 발전했다. 당나라 시기는 중국 문화의 융성기였으며 도자기 역시 이 시기에 큰 발전을 이루었다. 당대 도자기는 다양한 색채와 유려한 곡선으로 장식되어 있다. 이는 당나라의 개방적이고 번영하는 사회를 반영한다. 특히 '당삼채(唐三彩)'라 불리는 삼색 도자기는 그 독특한 색상과 아름다움으로 유명하다. 당삼채는 주로 묘지에 매장된 유물(명기明器, 도용陶俑)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과 장례 문화의 중요성을 나타낸다. 삼채란 이름은 이 도자기가 주로 녹색, 노란색, 백색 등 세 가지 색상으로 장식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유약은 철분, 구리, 코발트 등의 금속 산화물을 사용해 색을 냈다.

'당삼채' 안내문과 도용


'당삼채' 도용


'당삼채' 도용


2편으로 이어집니다.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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