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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일리아트 Jul 25. 2024

삶의 파편을 요리하는 작가 - 정하슬린

[청년 작가 열전 ⑪]

시간의 축을 엿볼 수 있는 회화를 그리다


 사람의 삶의 파편을 한껏 끌어모아 정성껏 요리한다면 그 음식은 그에게 어떤 풍미를 전해줄까. 맛과 향의 깊이, 입안에서 춤을 추는 듯한 식감, 음식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 뒤 서서히 온몸에 퍼지는 잔잔한 여운. 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건 아마 그 사람이 살아온 세상의 크기일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쓴맛이 강하고, 누군가는 시큼하면서도 달콤할 것이다. 또 어쩌면 그렇기에 더욱 삶의 다양한 맛을 경험하기 위한 모험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닐까. 이번 청년 작가 열전은 자신만의 요리를 캔버스 위에 펼치는 작가 정하슬린을 만난다.

정하슬린 작가

- 자기소개 부탁드린다.


서울에서 평면 작업을 하는 정하슬린입니다. ‘이미지와 물질 사이에 있는 회화가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바탕으로 시간 축을 유추할 수 있는 회화에 관심을 두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 작품을 보면서 매력적인 퍼즐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처럼 색, 재료, 레이어, 프레임을 활용하여 본연의 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방식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평소 요리 매체에 관심을 가져왔다. 음식을 먹을 때 단맛, 신맛, 짠맛 같은 맛의 층들과 식감 같은 것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다. 이와 같이 회화의 조건(프레임, 레이어, 지지체)들과 재료(색, 캔버스천, 미디엄 등)의 가능성을 충분히 연구하고 배합해 각 요소의 층들이 결과까지 도달하는 데에 신경 쓰며 작업하고 있다. 과정이자 결과인 작업, 감상자들이 작업을 마주해 층의 시각적 단서들을 통해 작업의 과정들, 작업자의 시간을 유추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KICHE_POWDER, installation view

- 이러한 작업 방식으로 탄생한 작품이 작가 개인에게는 어떤 의미를 주고, 관객에게는 어떤 의미를 줄 것으로 기대하는지 설명 부탁드린다.


수많은 중간 유통과정으로 이뤄진 사회에서 실존하는 신체를 인식하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과정까지를 보는 이에게 전달하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감각이라 믿는다. 캔버스는 나에게 작업이 이뤄지는 공간이면서 과거와 현재, 예술과 일상, 나와 타인을 잇는 매개이자, 색, 붓질, 패턴 등 갖가지 회화의 재료와 조건들로 층층의 맛을 내고 조화를 이루도록 맛의 (조형적) 균형점을 찾는 플랫폼이다.

Rhubarb Pie_1, 2024, Acrylic and oil on canvas, 60x50cm

- 작품 속 이미지들은 작가의 삶에 주된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들인지? 혹은 작가의 삶이 작품에 강하게 녹아든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지?


작업이 추상과 구상 속에 위치하도록 의도한다. 감상자가 그림 앞에서 ‘이게 뭐지?’하며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을 지을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첫눈엔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작업도 제목과 함께하면 풍부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하는 작업 중 ‘Napkin Fold’ 시리즈는 식사 자리를 장식하는 48가지의 냅킨 접는 방법에 대해 다룬 빈티지 서적을 보고 하게 되었다. 요리뿐만 아니라, 주변 부의 냅킨, 접시와 같은 요소들까지 그 길어야 2시간 남짓의 식사 자리의 분위기를 위해 장식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최근엔 회화의 재료들을 케이크 스크래퍼와 같은 도구를 사용해 식탁보 패턴을 만든다거나, 자수 도안들, 요리와 관련된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주제로 가져오고 있다.

Napkin Fold_Blue Cheese, 2024, Acrylic and oil on canvas, 65x53x5cm

- 평소 취미로 무엇을 하고, 작품 활동의 영감은 어디서 받는가.


평소에 취미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꼭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만이 작업이 아니라, 평소 일상생활에서의 경험과 감각들을 세심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모아 꾸러미로 만들어 작업으로 가져오려고 한다. 또한 과거의 그릇, 의류, 위빙과 같은 수공예품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 당시의 장식적 유행과 같은 시대상과 옛날 기술의 한계로 인한 표현 방식을 통해서도 영감을 받는다.


- 지금의 작업 방식에 변화를 주고 싶은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내 작업 주제를 회화 매체뿐만이 아니라 다른 매체로도 확장해 보고 싶다. 작업 주제가 도자, 요리, 판화와 같이 회화와 다른 매체로 옮겨갔을 때 각 매체의 언어로 어떻게 변화될지 궁금하다.

Napkin Fold_Clover, 2024, Acrylic and oil on canvas, 91x91cm

- 과거의 예술가 중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지? 그리고 만약 그 사람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생각인가.


좋아하는 예술가는 많지만 가장 많이 배운 예술가는 이탈리아의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이다. 브루노 무나리는 자신의 주제를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확장하고, 심지어 이론서와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으로도 풀어냈는데, 이러한 확장과 도전이 나에게 작업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KICHE_POWDER, installation view

- 마지막으로 데일리아트에 바라는 점 한 말씀 부탁드린다.


주로 작업실과 집만 왔다 갔다 하며 작업하다 보니 이런 기회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게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 이제 독자가 되어 다른 작가들의 기사들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 앞으로 데일리아트에 쌓일 이야기들이 기대된다.


정하슬린(b.1994)


학력

2014-2020 조형예술 예술사과정 졸업,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서울  

2017 Graphic Studio (판화와 드로잉), Academy of Fine art in Prague, Czech  


개인전

2020. 06   《Lorem Ipsum》, 킵 인 터치, 서울

2019 . 09  《Modern Touch to Salad》, 레인보우큐브, 서울


단체전

2024.07 《Powder》, 갤러리 기체, 서울

2023.07  《 Discovery: 12 Contemporary Artists From Korea》, Rockefeller Center, NY, USA

2022.11  《Reality》, 교보문고 광화문, 서울

2022.10  《Combination! : 컬렉션과 아카이브》, 픽셀카운팅, 서울

2021. 10  《Living Relation》, 남산 둘레길, 서울

2021. 01  《너무 작은 심장》, 교보문고 광화문, 서울

2020. 09  《팁과 요령 : 오늘 당신의 눈은 어떤 세계를 보게 될까요?》, 김세중 미술관, 서울

2020. 09  《10Pictures》, WESS, 서울


선정

2022.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사업 선정

2020. 서울문화재단 Re:Search 지원사업 선정

2020. Karts On-Road 지원 사업 선정, 한국예술종합학교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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