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떤 렌즈를 가지고 있나"
형슬우 감독, <병구> 리뷰
사랑은 어떤 방식으로든 삶에 균열을 만든다. 우리는 그것으로 인해 삶이 와르르 무너지면 어쩌나 걱정하기도 하지만, 균열의 틈새로 쏟아지는 반란한 빛을 마주하면 ‘저것이 내 숨통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형슬우 감독의 <병구>는 바로 그런 이야기다. 균열을 만드는 ‘병구’와 저항하는 ‘민지’의 로맨스.
서사의 얼개는 이렇다. 취업 준비생인 민지는 자취방 가구를 함께 옮겨줄 사람을 찾고 있다. 수소문 끝에 유일하게 시간이 맞는 대학 동창 ‘병구’가 그녀를 돕기로 한다. 당장 집으로 가겠다는 병구와는 달리 민지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다. 병구는 소위 말하는 “애는 착해”의 표본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패션 센스도 없고, 취업도 못 한 백수에, 눈치는 꽝이지만 ‘착한’ 병구. 결국 그녀는 병구를 부르기로 하지만, 그녀의 걱정대로 병구는 집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그러더니 대뜸 밥부터 먹자고 하며 곧바로 짜파게티를 끓여 먹고는 민지의 침대에 누워 낮잠까지 잔다.
우여곡절 끝에 일을 마친 병구는 나가다 말고 민지에게 약봉투를 건넨다. “너 4월만 되면 꽃가루 알레르기 심해지지 않냐”고 하며. 예상치 못한 병구의 행동에 민지는 창문을 열고, 바깥에서도 여전히 허둥대는 병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재채기를 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병구
민지와 병구는 미리 맞춘 것도 아닌데 둘 다 회색 상의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다. 커플티라도 입은 건가 싶을 정도다. 하지만 이들을 ‘운명’으로 묶어줄 법한 요소는 민지에게 병구가 ‘절대 만나면 안 될 사람’이라는 생각을 심어줄 뿐이다. 민지에게 같은 옷은 둘의 같은 처지인 ‘백수’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옛날부터 민지를 짝사랑했던 병구의 임무는 자신의 사랑을 ‘운명’으로 만드는 일이다. 민지로 하여금 자신을 운명으로 믿게 하는 일이다.
병구는 민지의 집을 마구 헤집는다. 괜히 서랍장을 열어보기도 하고, 냉장고를 뒤지기도 하고, 민지의 빗으로 자신의 머리를 빗어보기도 한다. 병구의 집을 ‘어지럽히는’ 행동은 민지의 평온한 삶을 뒤흔드는 행동이다. 지금 취업 준비생이기에 사랑에 빠질 여유가 없는 민지의 삶을 비집고 들어갈 공간을 찾는 행동이다. 앞서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삶에 균열을 만들어 놓는다고. 이런 맥락에서 보면, 병구를 어쩌면 어느 날 불쑥 민지의 삶에 찾아온 ‘사랑’ 그 자체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 사랑은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
아무튼 민지는 “일이나 하자”라고 하지만 병구는 기어코 방을 헤집어놓더니 대뜸 “밥부터 먹자”고 한다. 병구에게 일이란 민지와 밥을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밥을 먹으며 민지를 흔들어 놓아야 한다. 병구의 이런 행동은 민지의 평온한 삶에 ‘균열’이었지만, 그 균열의 틈으로 민지는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자신의 생활이 정돈 안 된 냉장고처럼 어쩐지 복잡하다는 것을. 병구는 그런 민지에게 “냉장고 좀 치우고 살자. 이따가 장도 같이 보자”라고 한다. 자신과 함께라면 복잡한 민지의 삶을 정돈해 줄 수 있다는 듯이.
그러더니 병구는 대학 시절 이야기를 하며 민지를 과거로 데려간다. 자신의 이름을 처음 불러준 사람이 ‘민지’였음을 말하고, 인기투표에서 나온 민지의 1표가 자신의 것이었노라고 말한다. 병구는 민지의 꽉 막힌 ‘백수의 삶’이라는 방의 창문을 열게 하는 사람이다. 극 중에서도 침대를 옮기다가 힘을 잘못 줘서 방귀를 뀌고 만 병구가 뻘쭘해하며 화장실로 도망가자 민지는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연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민지는 알레르기 약을 주고 돌아가는 병구를 보기 위해 ‘창문을 연다.’ 민지의 창문을 여는 행동은 현실의 갑갑한 상황을 ‘꽃가루’로 상징되는 사랑의 힘을 빌어 환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민지의 동창들은 모두 취업에 성공했지만 그녀는 아직 백수다. 동창들이 가구 옮기는 것을 도와달라는 민지의 요청을 거부한 이유는 그들이 이런 ‘사소한’ 일에 쓸 시간이 없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런 민지 옆에 그녀와 같은 ‘옷’을 입고 있는 병구가 운명처럼 있다. 그런 병구의 존재는 민지 방의 창문을 활짝 열게 한다. 그리고 그 창문을 통해 사랑의 ‘꽃가루’가 들어온다. 민지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 재채기를 한다. 마침내 민지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는 말처럼.
당신은 어떤 렌즈를
이제 사랑에 빠진 민지는 병구가 돌아가고 난 집안 풍경을 본다. 잠든 병구를 때려서 깨우기 위해 사용했던 하트 방석은 이제 나뒹굴지 않고 그녀의 집 중앙에 걸려 있다. 깔끔해진 집, 정돈된 냉장고, 병구가 남기고 간 온기. 그녀는 이제 깨닫는다. 자신이 병구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그녀가 사랑의 렌즈로 세상을 보기 전에는 병구의 존재는 거추장스럽고 우스운 존재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랑의 렌즈를 눈앞에 가져다 놓는 순간, 병구는 놀랍도록 자상한 남자로 변모한다. ‘집을 어지럽힌다’고 생각했던 병구의 행동은 자신을 애써 도와주기 위해 물심양면 힘을 쓰는 병구의 자상함으로, ‘우스운 사람’이라는 병구에 대한 편견은 자신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힘쓰는 병구의 ‘유머러스함’으로, ‘허둥대는 병구의 모습’은 ‘어딘가 귀여워 보이는’ 병구의 모습으로 변모한다.
그녀의 집에는 또 하나의 놀라운 변화가 생긴다. 커다란 창문이 있었음에도 어두웠던 그녀의 집이 환해진 것이다. 그녀는 영화에서 시종일관 인상을 쓰고 있다. 툭하면 짜증을 내고, 병구의 모든 행동을 못마땅해 한다. 이는 그녀가 사랑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카메라는 의도적으로 집안에 빛이 더 환하게 들어오도록 세팅한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한 빛이 들어온다. 그렇다. 사랑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은 이처럼 눈부신 일이다.
다시 서사의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민지는 가구를 옮겨줄 대상을 찾고 있다. 이를 다시 말하면 그녀는 어지럽고 정돈되지 않은 자신의 삶을 안정시켜줄 누군가를 찾고 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녀가 전화를 걸었던 순서는 그녀가 선망하고 바라왔던 대상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백수’이고, 인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기에 후보에서 밀리고 밀려 후보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병구에게 전화를 걸 수밖에 없다.그녀는 병구와 연락이 닿고도 “잘못 걸었다”며 전화를 끊으려 한다.
하지만 병구는, 비록 민지가 바라왔던 대상은 아니었지만(민지가 병구에게 품었던 막연한 거리감과 편견으로 인해), 민지의 삶을 안정시켜줄 충분한 사람이었다. 사랑의 렌즈로 보니 이만한 사람이 없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민지는 곧 운명처럼 찾아와 사랑의 렌즈를 선물해 준 병구에게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집에 잘 들어갔느냐고.”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