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이 매년 연말 전국 교수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여 투표로 선정하는 사자성어가 있다. 올해의 사자성어는 도량발호(跳梁跋扈)이다. 사자성어 선정 투표 마감일이 비상계엄 선포일 전인 2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이 단어가 뽑혔다는 것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하루 뒤를 예견한 듯한 결과가 아닌가 말이다.
이미 갈 데까지 갔음을 교수 사회에서도 다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비상계엄의 헛발질은 그 끝을 장식한 극악무도의 표현형일 뿐이었던 것이다. 교수들은 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하면서 윤 대통령( 이 단어를 쓰기 싫지만 아직 명목은 유지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쳐주자)을 지목했다. "권력자는 국민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데 권력을 선용해야 함에도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뭐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사례를 들지 않아도 다 안다. 뭐가 잘못되어 있어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말이다. 당사자와 주변 똘마니들만 모른다. 세상 참 희한하다. 주변에서 아무리 알려주고 경고를 해도 듣지 못한다. 내로남불이고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이다. 모르니, 하는 일이 그 수준밖에 안 됨을 눈치챌 수 있다.
그래도 자기는 충정을 다해 국가와 민족,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밤잠 못 자고 고민하고 어떻게든 국가의 위세를 높이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데 몰라주고 있다고 원망할 것이다. 자기의 노력을 헐뜯기만 하는 놈들 때문에 잘하는 일도 있는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할 것이다. 십분 이해가 간다. 그전에 같은 길을 가다 쫓겨간 어떤 사람도 똑같았다.
사람마다 자기가 있을 자리가 있고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하지만 피의자 조지고 겁박해서 진술 받고 폭탄주 한잔 하면서 피로를 푸는 기질을 연마해 온 사람이 있을 자리는 아닌 것만이 분명하다. 비상계엄 헛발질이 모든 불확실을 확실로 증명을 했다. 한심한 작자를 다시는 들먹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쓰다 보니 또 여기까지 왔다. 다시 한번 반성한다. 그런데 자꾸 지적질하고 싶은 울컥거림은 뭔가?
"반론과 이견을 제기하되, 상대를 증오하는 말과 글, 단어는 삼가 가려 쓰는 게 좋겠다." 필자를 아끼고 좋아해 주는 많은 분들의 조언이다. 너무도 고마운 배려이다. 그럼에도 촌철살인의 단어로 시퍼렇게 표현해야 속이 시원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늘만 용서해 주시길…. 그 감정을 대신하는 단어가 바로 교수들이 선정한 '도량발호'이다.
상대방을 조지는 고단수의 표현이다. 처단한다느니, 범죄자의 소굴이라느니, 파렴치한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한다느니, 이런 하수의 언어와는 수준이 다르다. 역시 먹물의 표현과 비유가 더 고상하다.
우리 사회는 언제나 희망에 찬 사자성어를 받아 들 수 있을까? 요원하지만 희망은 있을까? 세상 사는 게 만만치 않고 윤회의 사이클 돌듯이 반복될 테니 좋은 날도 반드시 오리라 확신한다. 어둠이 있으면 그 장막을 걷는 밝음도 오듯이 기필코 그 밝음을 맞이해 볼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숨죽여 있으면 안 된다. 두 눈 부릅뜨고 잘못을 지적하고 고쳐서 바로 가게 해야 한다. 힘들게 쌓아오고 지켜온 우리의 역사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져서는 안 된다. 후안무치(厚顔無恥 , 낯이 두꺼워 부끄러움을 모른다)의 시대를 걷어내고 고복격양(鼓腹擊壤 , 태평한 세월을 즐김)의 시대가 반드시 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갖자. 희망이 없으면 현실이 무너진다. 그런 일이 없도록 마음을 다잡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일상의 리흘라] 도량발호(跳梁跋扈,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 < 일상의 리흘라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페이스북(으)로 기사보내기 트위터(으)로 기사보내기 카카오톡(으)로 기사보내기
출처 : 데일리아트 Daily Art(https://www.d-ar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