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일리아트 Dec 26. 2024

[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⑮]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나쁜 그녀들 세상을 매혹하다


조용한 미국의 교외 마을, 한 남자가 땀 흘리며 조깅하고 있습니다. 근육질의 훤칠한 몸매, 푸른 눈에 날렵한 콧날을 지닌 이 남자. 완벽해 보이는 그에게 사실은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 문제로 인해 8개월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방금 퇴원했습니다. 정신병원에서 보낸 시간 동안 얻은 것도 있습니다. 지인들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살을 빼고 근육을 만들었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드는 법. 긍정적인 마음 역시 장착했습니다. 문제는 ‘정신력’으로 모든 문제를 극복하려 마음먹은 나머지, 병원에서 준 약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뭐든지 열심히 최선을 다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면 한 줄기 빛(silver lining)을 찾을 수 있어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2013)’에 등장하는 주인공 패트릭(브래들리 쿠퍼)이 한 말입니다실버라이닝(silver lining)이란 어두운 구름이 햇볕을 투과하며 테두리가 하얗게 빛나는 현상을 지칭합니다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합니다플레이북(playbook)은 스포츠 게임에서 쓰는 작전을 그린 도면을 뜻합니다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늘 무언가를 획득하려고 머릿속에 자신만의 도면을 그립니다그들의 플레이북은 과연 그들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요.

(패트릭)이 정신줄을 놓은 데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일하던 팻은 어느 날 평소보다 일찍 귀가합니다마침 아내는 샤워 중입니다그녀에게 접근하는데 세상에나……알몸의 아내가 알몸의 사내와 껴안고 있습니다아내의 내연남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 교사입니다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 아닙니까그런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팻은 사내를 때려눕힙니다그러나 아내에 대한 사랑의 마음은 쉽게 식지 않습니다어릴 때부터 그에게 잠재해 있었던 조울증이 트리거(촉발 원인)를 만납니다재결합을 위해 애쓰다가 아내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받고 맙니다망상마저 심해진 팻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됩니다.

사실 팻과 아내의 관계는 이미 삐걱대고 있었습니다아내는 팻을 뜯어고치려 합니다나태한 태도와 급한 성격늘 자기 관리에 실패하는 팻의 모습을 아내는 받아들이지 못합니다자기가 원하는 완벽한’ 배우자로 그를 바꾸고 싶습니다그러나 상대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랑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그런데도 팻은 아내가 원하는 완벽한’ 남자가 되면 아내를 되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부정적인 마음을 버리고 열심히 노오력하면 세상에 이룰 수 없는 일이 없다고요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란 그토록 단순한 것이 아닙니다자기개발서의 조언을 따르고 육체를 건강하게 가꾸고 평온한 마음을 얻으면 마법처럼 문제가 사라질까요?

여전히 팻은 미친 듯한’ 행동으로 사람들을 질겁하게 합니다누구나 원하는 로맨틱한 결말이 아니라는 이유로 한밤중에 헤밍웨이의 소설을 창으로 집어던집니다깨진 유리창처럼 그의 마음도 산산이 부서집니다아내와의 결혼식 비디오를 부모님이 숨겼다며 소동을 부려 온 동네 사람들을 깨웁니다그런데도 팻은 자신이 정말 미쳤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가끔 보이는 과격한 모습은 그저 예외적 사건이라 치부합니다더 노력하면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그러나 완벽이란 기준은 절대 충족할 수 없기에완벽해지려는 사람은 언제나 만족할 수 없는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팻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팻에게 만만치 않은 상대가 나타납니다. ‘이 구역의 미친년을 자처하는 티파니는 입이 걸고 욱하는 성격입니다얼마 전에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청상과부이기도 합니다상실의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무언가에 탐닉합니다술이나 약물에 의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티파니가 선택한 방법은 남자들과의 무분별한 성행위입니다그들이 처음 만난 날은 직장 동료 모두와 잤다는 이유로 티파니가 해고당한 날입니다그들은 첫 만남부터 서로 옥신각신합니다자신과 잠자리를 갖자며 유혹하는 티파니에게서 팻은 도망칩니다.

그들의 신경전이 계속됩니다. 팻은 티파니와 그녀의 언니 빅토리아가 아내의 친구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티파니와 친구가 되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아내에게 좋은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여기게 됩니다. 아내에게 편지를 전해달라는 팻에게 티파니는 조건을 제시합니다. 자신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대회에 출전하자는 것입니다. 팻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과연 그들의 계획은 성공할까요?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섬세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들을 조망합니다그들은 다소 과격하고 제멋대로이고 말썽을 일으키지만예민하고 세심하고 직관적인 사람들이기도 합니다자신이 고통을 겪었기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압니다자신과 같은 이들을 돕는 일에도 적극적입니다팻이 정신병원에서 사귄 친구 대니는 산만하다는 문제점이 있지만다른 사람을 즐겁게 하는데 재능을 발휘합니다팻은 불안정하고 집착이 심하지만꽤 관대한 면이 있습니다티파니는 자신의 마음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마저 잘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은 정상적인 사람과 비정상적인 사람의 경계에 관해 날카롭게 질문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팻의 아버지는 스포츠 도박에 중독되었는데 온갖 징크스를 맹신합니다리모콘을 두는 방법마저 통제하려는 강박증 환자이기도 합니다팻의 친구 로니는 행복하고 부유한 가정의 가장으로 보입니다그러나 그는 완벽주의자인 아내의 잔소리와 양육 스트레스로 질식할 정도로 불안한 상태입니다팻의 형은 겉으로는 잘난 사람일지는 몰라도 늘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마음의 안정을 얻는 못난이입니다현대인들은 정도는 다르지만 모두 크고 작은 신경증이나 가벼운 정신증에 노출되어 있습니다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 완벽하게 정상적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⑮]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티파니 < 스크린 밖으로 나온 악녀들 < 칼럼 < 기사본문 - 데일리아트 Daily Ar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