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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Aug 01. 2020

#아들과함께새로움찾기_9

여행 속 너를 바라보며

무더위가 아직 한창이지만

승후의 어린이집 방학을 맞이해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증도에 다녀왔다.
작년부터 승후가 이동이 수월해지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이제는 자신만만하다.

사실 여행길 이라기보다는 시골에 계시는 부모님께
잠시나마 승후와 함께 하는 시간을 전하고
누나네 식구들과도 함께 놀이를 즐기며
오랜만에 고향의 바람도 느끼고

나름 가열찬 계획을 세우곤 하지만
막상 내려가서는 이것저것 챙겨하는 엄마 노릇과
문만 열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조용한 섬마을이 주는 기적에
3박 4일이 하루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래도 언제나 따뜻하게 반겨주는 가족과
풍성하게 서로를 위하는 고슬고슬한 마음은

늘 그 자리에 있기에
앞으로도 꾸준히 승후와 함께하는 여행을 다짐해본다.

승후는 멀미가 심한 편이다.
하여 이번에는 퇴근 후 바로 출발하기보다는
하루 일정을 늦추어 잠을 푹 자고 가기로 했다.
출발역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안정을 할 수 있게
아내와 장인 댁에서 기차역까지 동행해주었다.

희망찬 동행 길에 승후에 대한 걱정도 잠시
어느새 기차역에 도착해서는 인사할 겨를도 없이
승후를 안고 역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최대한 엄마와의 마주침을 덜 하기 위해
미리 세워둔 전략으로 승후의 마음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것은 바로
에스컬레이터와 자판기

전 날 아내는
“기차역에서 승후가 엄마를 찾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나는 당당하게
“승후의 시선을 끌 수 있는 게 많으니 너무 걱정 마”
나의 전략을 이야기해주었고 방법은 주효하였다.

자판기와 에스컬레이터는

평소 승후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이며
모든 승후 또래의 아이들에게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시선을 잠시 두고

에스컬레이터 오르고 내리기를
네다섯 번 반복하니 열차에 오를 시간이 되었다.

사이좋게 출발해보자

사이좋게 사진을 찍고 좋아하는 과자, 젤리, 음료수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될 유튜브로

고난의 시간을 버티다 보면
슬슬 ‘배 좀 채웠으니 나가놉시다’ 표정이 나온다.
신발을 신고 객실 밖에 나가 열차를 순찰한다.


만나는 이에게 흥겹게 인사하고 여기저기 간섭을 하다
또다시 만난 자판기에 미소 짓더니

내 주머니를 털기 시작한다.
먹지도 않을 것을 두 어개 뽑다 보니

이러다 전 재산을 털릴 것 만 같아
서둘러 자리를 뜬다.




종착지에 도착했다.
탈 없이 종착지에 도착한 것은

여행의 절반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작년 이맘때쯤 어마 무시한 떼를 쓰는 승후 덕분에
기차 안에서 탈진할뻔한 아찔한 기억이 있기에
훨씬 안정적인 모습으로 기차를 타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어깨가 으쓱해진다.


손을 꼭 잡고 안전하게 우리를 인도해준

기차에 인사를 전하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나와 계신다.


고향은 목포에서 1시간가량은

더 들어가야 있는 곳이기에
마중을 나와 주셨는데 오랜만에 보았을 얼굴임에도
승후는 냉큼 달려가 할머니에게 안긴다.

타지에서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할머니가 얼마나 반가웠을꼬
그렇게 꼬옥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고서야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낀다.
 
시골에 도착하니 어느 때 보다 푸른 하늘과

잠자리 떼가 반긴다.


장마기간이라 이렇게 좋은 날씨는 예상하지 못했기에
서둘러 바닷가에 나가 그렇게 노래를 부르던

꽃게를 찾아보고 할머니가 있는 밭에 나가

수박도 따 보고
내가 어린 시절 뚜벅뚜벅 걸었던 길을

승후가 채워주기 시작한다.

애플수박을 맛보자

힘찬 발걸음 속에 아련한 마음이 전해지면서
승후와 함께 하는 이 시간은 늘 새로운 이야기로 가득 찬
한 편의 작품이 되는 일상을 탄생시킨다.

내가 고스란히 간직한 곳곳의 추억들은
승후가 다시금 예쁜 색의 물감으로 덧칠을 한다.

꿈을 꾸고 세상을 바라보고

일련의 성장과정을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서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지만
나는 승후의 손을 다시 한번 꼭 잡고

나의 이야기를 전한


“저 건 깨금이라는 거야 어렸을 적에 많이 먹었단다”
“저 갯벌의 모습은 예전에는 구불구불했었단다”
“저곳에는 엄청나게 많은 물고기가 잡혔지”
나는 갯벌에서 지렁이를 잡아 낚시를 했지”
“이 곳은 돌담길이었는데 돌담 아래에는 개구리도 있고 올챙이도 있었단다”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마음 한가득 울리지만
뜀박질에 능숙한 승후는 이내 곧 도망가고 만다.

곰곰이 생각도 해보고 이것저것 만져도 보며
함께 갯벌에 발을 담그고 예쁜 조개를 찾아

바닷물에 씻겨도 보고
모래 위 동그랗게 모래를 토해놓은 게를 쫒아도 보고
함께 나눈 이야기를 마음에 심고 나니
유난히 아름다운 고향의 석양이 승후의 눈에 녹아있다.



잠자는 게 조금은 불편했는지 두어 번 새벽에 깬다.
승후의 콧물이 조금은 걱정이 되긴 하지만
다행히 낮에는 해가 떠주어 물놀이를 했다.

아내가 미리 챙겨둔 수영복에는 관심도 없고
자연인처럼 옷을 다 벗고는 풀장에 들어간다.
2층에 할아버지가 마련해준 작은 풀장에 조카들과 함께 즐거운 바람이 전해주는 노래를 함께 부르다가
물도 먹어보고 작은 손으로 헤엄도 쳐보고

몰래 쉬도 해보고 개구쟁이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시원한 물놀이를 뒤로하고
매형이 언덕에 떼를 지어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보고 잠자리채를 사 오셨다.
너도나도 손에 쥐려 안간힘을 쓴다.


승후에게 잠자리채로 바닷가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는
짱뚱어를 잡아주었더니 팔딱팔딱 뛰는 물고기의

모습이 그리도 좋았던지 잡고 또 잡고

집에 들어가지 않을 기세다.

2개뿐인 잠자리채를 눈물과 설움으로 겨우 차지하고

5살 조카 형에게 빼앗기고는 펑펑 울고 만다.
곧 집 앞 화단에 물을 줘보고자 하니 흔쾌히 웃으며

꽃 밭에 물을 뿌린다.

나비를 찾고, 거미를 찾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고양이들,
싱그럽다 못해 그간 쌓인 마음의 녹을 쓸어주는 새들의 지저귐, 들풀의 숨소리,
그 어떤 현악기도 흉내 내지 못할

이름 모를 곤충의 나지막한 속삭임
그렇게 모든곳들의 생동력이

과연 아름답다 못해 장엄하다.

이 곳에 승후가 배우고 느낄 많은 것들이
앞으로는 더욱 풍족할 것임에
승후가 정립해야 하는 가치관과 신념에는
행운과 길잡이가 존재할 것이다.

공간이 승후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살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해주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바람으로 그치지 않고 몸소 느끼고 습득하도록
함께 손을 잡아주고 경청해주는 것이 나의 몫


그렇게 저물어간 하루 속에

나는 승후에게 어떤 의미였으며
엄마 아빠와 함께한 하루는

승후에게 어떻게 투영되었으며

함께 관찰해주고 생각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
어려운 일이겠지만 일상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큰 선물이 될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되었다.
아침 일찍 목포로 나가서는 가족의 뜨거운 배웅을

뒤로하고 이내 피곤했는지
열차 안에서 바로 잠이 들었다.

잘 때만큼은 천사라
뽀뽀를 해주고 싶고 이리저리 불편한 곳은 없는지

살펴본다.
고생한 얼굴과 까맣게 탄 얼굴 속에서

행복과 즐거움이 엿보인다.

엷게 미소 띤 승후의 찰나 속에
3박 4일간 아름다운 추억을 나눈 가족,
작고 소소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주신

배려와 사랑이 가득하다.

추석 때 또 만나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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