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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규 Jan 15. 2021

#아들과함께새로움찾기_13

재촉하지 않는 기다림

2020년 11월 14일

승후의 천일을 기념하여

오랜만에 가족사진을 찍었다.

아들의 성장과 가정에 소중함을 기록하는

평범한 일상이

어찌하다 이렇게 어려운 일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이른 아침 외출 길이 설렘으로 다가온다.


몇 달 전부터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현재의 의미를 담으려 사진관을 찾았는데

이른 시간 방문해서 인지 가게는 아직 오픈전이다.     


제법 쌀쌀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늦가을 햇빛이 묘하게 조화롭다.

사진관 앞 소담하게 차려진 만물상 가게..

승후의 눈길을 사로잡은 초록색깔 뱀 인형에

이내  지갑이 열린다.


모든 걸 바라보며 반짝이는 승후의  음흉한 눈빛과

제지하지 못하는 아빠의 손짓에

아내의 불편한 눈빛이 묘하게 무섭다.


불편함을 뒤로하고

인천 개항장 야간행사 준비로 바쁜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다.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하는 아침 공기와

유난히 신이 난 승후의 웃음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가득하다.


옛 추억 가득히 손짓하는 오락실에도 들려본다.

대소의 개념 없이 환전되는 지폐 속에

올라가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승후의 입꼬리에 정신을 팔다

아내의 거듭되는 성화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꽤나 많은 동전을 삼켰다.


오락에 빠진 모자지간

코로나가 잠시 풀린 그때 즈음

미뤄둔 회사 행사로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지만

그 시간을 가족과 함께 나눌 수 없었다는 것은

매우 서글픈 일이다.

     

승후가 우리에게로 온 지 천 일째 되는 날.

그동안 천  이라는 시간을 함께 나누며

자랑스럽게 성장한 아들의 일대기가

하나하나 생생하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행복이 담긴 모습을 담는 것은 욕심낼 만하다.


오랜만에 아내와도 함께 개항장 거리를 걸으니

아내에게도 잘해주지 못한 마음이 하나하나 생생하다.    

 

사진관에 들어서니 낯선 풍경과

덕한 사진사가 웃음을 끌어낸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승후가 걱정되긴 하지만

이리 안고 저리도 안아보고 목마도 태워보고

카메라 셔터 소리에 웃어도 보고

아내를 바라보며 웃음도 지어본다.

     

재촉하지 않았지만 승후는 어느새 천일동안 성장해 있다.

단단히 부여잡고 바라볼 줄 알고

기다릴 줄 알며 이야기를 들을 줄 안다.   

  

부모의 모습을 따라 하고 아직은 응석받이 행동에

세심한 관찰과 관심이 필요한 아이이지만

지금껏 큰 사고 없이 씩씩하게 자라준 것에

비로소 부모가 되어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그렇게 사진을 고르는 내내

찰나의 순간에 담긴 우리의 모습에

자꾸 웃음이 난다.

사진관 앞에서 산 뱀 인형을 들고 뛰는 모습

신나게 웃는 아내의 모습

멋쩍은 듯 엉성하기 짝이 없는 나의 웃음은

내가 봐도 별로다.

    

승후가 가장 활짝 웃고

우리네 모습이 가장 밝게 물든 사진을 몇 장 고르고

사진관을 나선다.

 

흑백에 담긴 우리의 모습

가용할수있는 모든 공간을 동원해 기억해두고

행복에 담긴 우리의 모습을

가장 보기 좋은 공간에 펼쳐두니

내심 '오길 잘했다'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더욱 깊숙한 가슴속에 스며 녹인다.

    

담기는 모든 것에 웃음을 선사하는 아들

흥미로운 세계에 두고 온 시선들을

승후가 기억할 수 있도록

모든 순간을 담아 보고 싶다.


오랜만에 외출에 점심을 먹고 집에 향한다.

식당 뒤편 연못에 앉은 작은 금붕어들과

먹성 좋은 승후가 한참을 함께한다.

    

사진을 찍으며

오락실에서 동전 뽑기로 뽑은 소라피리도 불어보고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 뽀로로도 함께하니

밥맛도 일품인 듯 배불리 먹고서는 든든하게 퇴장한다.

     

오늘 하루는

천일동안 고생해준 아내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무색한 숫자만큼 쌓여가는

승후와의 추억에도 감사하다.

     

최근 감사하며 살아가자는 다짐들이

힘에 부치는 날이 많지만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을

어서 오라 재촉하지 말자.


그렇게 내 자리에서

내가 해 나가야 할 일들을 해 나가다 보면

변함없이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사람은

여전히 그 곳에있다.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되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끌어안 듯

기다림 속에서 그렇게 모두는 성장하는 것이다.

     

천일동안

이가 나고 몸이 크고 머리가 자라고

가장 많은 신체적, 정서적 격변의 시기를 겪었을

승후 역시

천일의 기적을 올곧게 기다렸을 것이다.


말없이 묵묵히 성장해온 승후의 용기와 도전이

빛을 잃지 않도록

오늘 함께한 사진처럼

마음 깊은 감사와 보살핌을 액자에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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